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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혐오 기획] 혐오에 떠밀린 노인들의 퇴적 공간 '탑골공원'

기사입력 2022-07-01 08:38

좋아서 아니라 갈 곳 없어 모여… "부정적 시선 피해 숨은 것"

▲탑골공원에 홀로 앉아 시름을 달래고 있는 노인(이지혜 기자 jyelee@)
▲탑골공원에 홀로 앉아 시름을 달래고 있는 노인(이지혜 기자 jyelee@)

부머 리무버(Boomer Remover). 베이비붐 세대를 없애겠다는 조롱과 혐오가 담긴 표현으로, 최근 미국 젊은이 사이에 유행어로 번지고 있다. 노년층 부양에 대한 부담과 정치 성향에 대한 반감 등이 표출된 단어다. 우리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틀딱, 연금충, 앵그리실버 등 노인을 향한 혐오 표현은 날로 생겨난다. 혐오 어린 말과 눈초리를 피해 노인들은 저마다의 퇴적 공간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 곁에서 노인은 사라졌고, 혐오만이 남았다.

“노인을 떠올렸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편견과 선입견은?” 나문희 주연의 영화 ‘수상한 그녀’의 도입부, 노인복지학 교수가 학생들에게 묻는다. 주름, 검버섯, 쾨쾨한 냄새, 두꺼운 얼굴…. 다소 부정적인 단어가 쏟아지던 중 한 학생은 “탑골공원”이라 답한다. 그곳에 가면 노인이 많다는 게 이유다. ‘퇴적 공간’의 저자 故 오근재 전 홍익대 교수는 ‘탑골공원’을 일컬어 “사회에서 쓸모를 인정받지 못해 잉여적 존재가 되어가는 인간군이 하구의 삼각주처럼 퇴적된 공간”이라 했다. 언제부턴가 노인을 상징하는 마중물이 돼버린 그곳, 탑골공원을 찾았다.


파라다이스 or 디스토피아 ‘탑골공원’

비가 내린 탓인지 탑골공원 안팎은 조용했다. 평소라면 벤치에 누워 오수를 즐기거나 담벼락 주위에 모여 장기를 뒀을 테다. 몇몇 노인만이 팔각정에 앉아 시름을 달래고 있었다. 파고다공원 시절 노인들은 이곳에 모여 술을 마시며 시국 토론을 하고 만담을 펼쳤다. 그러나 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쌓이며 그들의 행위는 규제 대상이 됐고, 그렇게 노인들은 표정을 잃어갔다.

▲탑골공원 입구 바둑, 장기, 흡연, 음주 등을 금하는 안내문(이지혜 기자 jyelee@)
▲탑골공원 입구 바둑, 장기, 흡연, 음주 등을 금하는 안내문(이지혜 기자 jyelee@)

▲평소라면 장기를 두는 노인들로 가득했겠지만 비가 온 탓에 한산한 탑골공원 주변 장기판 테이블들(이지혜 기자 jyelee@)
▲평소라면 장기를 두는 노인들로 가득했겠지만 비가 온 탓에 한산한 탑골공원 주변 장기판 테이블들(이지혜 기자 jyelee@)

▲비를 피해 모여든 탑골공원 인근 노인들(이지혜 기자 jyelee@)
▲비를 피해 모여든 탑골공원 인근 노인들(이지혜 기자 jyelee@)

공원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코로나19 영향도 있고, 이젠 노인끼리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근재 교수는 “얼핏 탑골공원은 노인들의 파라다이스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그곳이 현실의 냉혹함에 밀려 퇴적된 노인들의 공간이라면 디스토피아일 것”이라 말한 바 있다. 공원을 찾은 한 70대 노인은 토로한다. “누가 우릴 환영하나. 깨끗이 입어도 냄새난다고 싫어하지. 여기도 재미없다. 말은 안 섞지만, 그냥 저 노인네도 그래서 왔겠구나, 동병상련을 느끼는 거다.”

▲탑골공원에 찾은 노인들이 팔각정에 앉아 있다. 서로 멀찍이 떨어져 앉아 말을 걸지도 않고 조용하다.(이지혜 기자 jyelee@)
▲탑골공원에 찾은 노인들이 팔각정에 앉아 있다. 서로 멀찍이 떨어져 앉아 말을 걸지도 않고 조용하다.(이지혜 기자 jyelee@)


세대 간 혐오의 순간

“여긴 키오스크가 없네? 할아버지들이 많아서인가?”, “비 때문인지, 저분들(노인) 때문인지 꿉꿉한 냄새나.”, “주문도 안 하고 자리만 죽치네.” 탑골공원 근처의 한 패스트푸드점. 점심시간이라 인근 학원 학생들이 주문을 위해 줄을 서 있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소나기 탓에 유독 노인들이 많았던 터다. 몇몇 학생은 노인들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을 내비쳤다. 매장 직원은 “비 오는 날 그나마 여기 안 오시면 또 어디를 가실까. 한편으론 다행스럽다. 딱히 그분들이 해를 끼치는 건 아닌데, 젊은 사람들은 피하고 불편해한다. 이해는 간다”라면서도 그 이유를 묻자 말을 아꼈다.

▲종로3가 인근 패스트푸드점은 젊은층보다는 노인층이 주 고객이다.(이지혜 기자 jyelee@)
▲종로3가 인근 패스트푸드점은 젊은층보다는 노인층이 주 고객이다.(이지혜 기자 jyelee@)


혐오의 은신처

지하철 종로3가역 1번 출구. 탑골공원으로 향하는 길, 건너편 출구 계단에 노인들이 줄지어 앉아 있다. “짝! 짝!” 수신호처럼 이따금 박수도 친다. 기이한 풍경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물었다. “다들 뭘 기다리시나요?” 노인 왈. “그냥 노는 거야! 소꿉장난.(웃음)” IMF 당시 실직 후 줄곧 이곳을 찾았다는 그는 비가 오거나 너무 덥거나 추우면 이렇게 지하철역에 앉아 논다고 했다. 기왕 놀 거면 마주 보고 모여 앉지 그러느냐 물으니, 서로 알지도 못하고 그냥 그것이 편하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 “다들 (노인) 싫어하잖아. 생쥐처럼 알아서들 숨은 거야.”

▲지하철 종로3가 역 1번 출구 건너편 계단에 줄지어 앉은 노인들의 모습.(이지혜 기자 jyelee@)
▲지하철 종로3가 역 1번 출구 건너편 계단에 줄지어 앉은 노인들의 모습.(이지혜 기자 jyelee@)


(국가인권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60대 이상 고령자에게 혐오 표현을 들은 후 반응을 물은 조사에서 ‘사람이나 장소를 피한다’라고 응답한 이는 80.7%로 나타났다. 혐오의 시선과 마주하지 않기 위해 노인들은 사람을 피하고, 자신들만의 공간을 찾아 나선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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