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를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이끈 시니어들의 경제 영웅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그가 남긴 미술품 컬렉션을 전시할 '이건희 미술관(가칭)' 후보지가 서울로 결정됐다. 현재 송현동 부지와 용산 두 곳 중 하나를 최종 위치로 결정하는 일만 남았다.
고 이건희 회장에 대한 금관문화훈장 추서도 추진된다. 금관문화훈장은 문화훈장 중 최고 등급이다.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 세계적인 대가거나 문화적으로 큰 공로를 세운 이에게 수여한다.
지난 4월 삼성가 유가족이 2만3000여 점에 달하는 ‘이건희 컬렉션’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기증한 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위한 활동으로 몇 개월 동안 전국이 뜨겁게 달아 올랐다. 그리고 7월에 최종 지역을 서울로 확정했다.
이건희 미술관 부지가 서울로 정해지자 지역민들의 문화 향유권과 관광 활성화를 내세웠던 지자체들의 반발이 잇달았다. 이에 대해 이건희 미술관 부지를 선정한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는 박물관과 미술관의 실질적 역할을 고려해 서울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는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연 브리핑에서 ‘기증품의 통합적 관리·조사·연구시스템 구축’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김영나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유화부터 불상, 도자기까지 다양한 미술품을 보존·관리·전시하기 위해서는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경험이 필요하다”면서 “인력의 한계로 국립중앙도서관 같은 다른 전문기관 협업도 필요하다. 기증품이 서울에 있어야 여러 가지로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용산이나 송현동에 이건희 미술관이 지어지면 연계할 수 있는 문화 인프라가 많다. 송현동 부지 주위에는 경복궁과 인사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있다. 15일에는 서울공예박물관도 개관한다. 가까운 삼청동 부근에 수십 개 미술 갤러리가 있고, 창덕궁·덕수궁·남대문까지 문화 자원이 풍부하다.
용산에서 후보지에 오른 땅은 용산가족공원 내 문체부 소유지다. 국립중앙박물관 바로 옆이고, 국립한글박물관과도 가깝다. 이건희 컬렉션의 일부를 기증했다고 할 만한 삼성미술관 리움이 용산구 한남동에 있다. 리움 말고도 아모레퍼시픽 미술관과 2022년 개관 예정인 용산역사박물관 등 20여 개 박물관과 미술관이 모여 있다. 문체부는 “용산 부지는 정부 땅이어서 별도 부지 매입비가 들지 않는다”고 밝혔다.
송현동 부지는 서울시와 대한항공이 갈등을 빚었던 곳이다. 2008년 이 부지를 인수한 대한항공은 최고급 호텔을 지을 계획이었지만 인허가를 놓고 박원순 시장 시절 서울시와 갈등을 빚었다. 현재 이 부지는 서울시로 소유권을 이전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대한항공으로부터 땅을 사고, LH는 서울시 사유지와 이 부지를 맞바꿀 계획이다.
후보지는 두 곳이지만 현재 송현동 건립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 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는 “송현동이 도시 중심지라 따로 진입로를 만들 필요가 없는 데다 젊은이들도 많이 즐기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건희 미술관처럼 개인 기증을 계기로 정부가 나서 별도 시설을 만드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동안 국립중앙박물관은 ‘이홍근실’ 같이 기증자 이름을 딴 전시실을 운영해왔다. 고미술과 근현대미술을 한데 아우르는 국가 문화시설이 생기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문체부는 2028년께 이건희 미술관이 건립될 것으로 보고 있다. 황희 장관은 브리핑에서 “올해 2억 원 정도 예산으로 용역을 시작했다. 건축비는 지금 나올 수 없지만 1000억 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부지 비용은 들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달 21일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은 각각 ‘국가 기증 이건희 기증품 특별 공개전’을 동시 개막하고, 내년 4월 1주년 특별전을 연다. 내년 하반기부터는 연 3회 이상 지역별 대표 박물관·미술관 순회 전시를 이어서 추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