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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이 된 작은 결혼식

기사입력 2020-08-26 09:15

(사진 최은주 시니어기자)
(사진 최은주 시니어기자)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전국에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선포되었다. 당장 이달 말에 예정된 시누이 딸 결혼식이 걱정됐다. 하객 50인 이상이 모이는 실내 결혼식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시누이네는, 지난봄 코로나19 때문에 결혼식을 한 번 연기했다. 코로나19와 공존해 살면서 결혼식을 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다가 8월 말로 어렵게 날짜를 다시 잡았다. 그리고 외국에 사는 사돈댁과, 큰딸 부부가 결혼식 참석을 위해 귀국해 자가 격리 중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고민 끝에 직계 가족만 모이는 스몰웨딩으로 전환했다고 한다.

이효리-이상순, 이나영-원빈이 작은 결혼식을 올리자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스몰웨딩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결혼 당사자들은 형식보다는 의미를 살린 작은 결혼식을 선호했고, 역시 허례허식이 가득한 결혼식을 비판하며 자녀의 결혼식은 작은 결혼식으로 치르겠다는 부모들도 늘어났다. 하지만 양가 의견을 맞춰야 하고, 예식장은 최소 보증인원을 요구하고, 그동안 뿌린 축의금이 생각나는 등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는 사이 스몰웨딩의 인기도 시들해졌다.

그러나 이 시국엔 작게 치르지 않으면 결혼식이 불가능하다. 화려한 화환이 끝없이 이어지는 결혼식장,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러 밀려드는 사람들과 연회장에 하객들이 꽉 들어찬 모습이 미풍양속처럼 여겨졌던 건 이젠 과거가 됐다. 우리 사회가 언제 쯤 안전해질지 미지수이니 봄에 미룬 결혼을 가을엔 할 수 있을까? 내년 봄은 과연 안전할까? 결혼식 날짜를 정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 되었다. 코로나19의 소용돌이 속에 정신없이 맞이한 게 결혼식뿐일까?

우리 가족은 지난봄에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가 생사의 순간을 넘나들 때, 형제들은 장례를 가족장으로 간소하게 치르기로 결정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장례식장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불편해진 탓도 있지만 우리끼리 슬프지 않게 아버지를 배웅하고 싶은 생각도 컸다. 이북에서 월남한 아버지가 이 땅에 이룬 직계가족 단 13명이 모여 가족장을 치렀다. 조문은 물론, 조화나 조의금도 일절 받지 않았다. 코로나19 초기여서, 기어코 조문을 해야 한다는 지인들과 전화기를 들고 입씨름을 하는 게 힘이 들었지만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음악을 틀어놓고 아버지 얘기를 주고받으며 가족끼리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조문을 받지 않는 간소한 장례를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장례를 치르고 나서 우리 가족들은 코로나19가 준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고, 간소 장례 예찬자가 되었다.

이젠 결혼식이든 장례식이든 작게 하고 안전하게 치르는 게 일반화됐다. 인륜지대사를 정성을 다해 준비해야 하는 건 맞지만 코로나19 시대에는 작게 치르는 게 뉴노멀이 된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굳이 찾아가 축하를 해주는 것보다 ‘건강’과 ‘안전’을 빌어주는 게 지금 우리에겐 더 중요하다. 전염병 위험에 노출된 우리들이 이 땅에서 공존하며 살아가기 위해선 변화된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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