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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노후는 내가 결정한다! 임의후견과 유언, 그리고 신탁 이야기

기사입력 2019-08-19 14:41

상속과 증여 톺아보기 #2

A(85세) 씨는 경기도 양평에서 2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22세 때 직업군인과 결혼했고, 배우자가 베트남전쟁에 참전해 모은 돈을 부동산에 투자해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자녀는 없고 배우자가 2000년에 사망한 후 홀로 생활해왔다. 노년이 외롭기는 했지만, 배우자가 남긴 부동산과 금융자산으로 경제적 어려움은 없었다.

그런데 고혈압과 당뇨를 앓아오던 A 씨에게 2009년 가벼운 뇌출혈이 발생했고 이때부터 인지장애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평소 왕래도 자주 없었던 형제와 조카들이 서로 A 씨를 돌보겠다고 나섰다. 결국 A 씨의 큰 남동생 아들인 B(63세) 씨가 자신의 집으로 A 씨를 데려갔다. 문제는 그 후 A 씨의 재산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다른 가족들, 특히 A 씨의 막내 여동생 C(78세) 씨는 2015년에 대표로 성년후견신청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씨의 부동산 대부분이 B 씨와 그의 아내, 자녀들 명의로 증여가 이루어졌고, 50여억 원에 달하던 정기예금 등 금융자산도 20여억 원밖에 남아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가사조사보고서에 의하면, 그 당시 A 씨는 전라남도에 위치한 요양원 8인실에서 홀로 지냈고, 찾아오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A 씨의 가족들이 후견개시 여부와 후견인 선정에 관해 법정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중에 C 씨가 돌연 재판 신청을 취하한 것이다. 알고 보니 C 씨는 남은 금융자산 20여억 원을 자신 앞으로 빼돌리는 조건으로 B씨와 타협을 했다. 또 근거 자료를 남기기 위해 A 씨 명의의 증여계약서를 허위로 작성했으며, 효력을 인정받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똑같은 내용의, 즉 유산을 물려준다는 A 씨 명의의 유언장까지 작성했다.

C 씨와 B 씨의 이 같은 밀약을 알게 된 나머지 가족들은 A 씨의 증여계약서와 유언이 무효임을 주장하는 소송을 제기한 뒤 다시 성년후견신청을 했다. 이후 2년여 동안의 공방 끝에 A 씨에 대한 성년후견이 개시된다는 재판은 확정되었지만, 증여계약서와 유언 무효 소송이 진행되던 중 A 씨가 사망했다.

재산을 두고 가족과 친척들이 이전투구를 벌이는 사건은 종종 일어난다. 재산을 독식하기 위해 조카 중 한 사람을 아무도 모르게 양자로 만든 경우도 있다. 상속 순서로 따지면, 직계비속(자녀, 손자 등), 직계존속(부모, 조부모 등), 배우자가 없을 경우 방계혈족(형제자매)이 순위가 된다. 만일 형제자매까지 모두 사망했다면 그 자녀, 즉 A 씨의 조카들에게 상속권이 생긴다. 법정상속분으로 보면, 조카가 15명일 경우 15분의 1씩 상속받는다. 그런데 양자가 되거나 생전증여 또는 유증 방법으로 A 씨의 재산을 독차지(유류분은 별론)할 수도 있다.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평안하게 노년을 살려면 지금 당장 준비해야 한다. A 씨와 같은 불행을 겪지 않으려면, 다음 세 가지를 반드시 고려하자.

첫째, 임의후견계약 체결이다. 정신적인 문제가 생길 경우를 대비해, 믿을 만한 사람을 후견인으로 정해두고, 그 후견인에게 어떤 권한을 줄지에 대해 미리 계약을 해두는 것이다. 이 계약은 공정증서로 체결되어 법원의 후견등기부에 등기해둔다. 시간이 흘러 실제로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후견인의 업무는 시작되고, 법원에서는 임의후견감독인을 선임해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신변과 재산을 잘 돌보고 있는지 살핀다.

둘째, 유언장 작성이다. 사후에 재산을 어떻게 분배하고 처분할지 자신의 의사에 따라 미리 결정해두는 것이다. 유언은 유언자의 사망 시점에 효력이 발생한다. 따라서 사망 전까지는 미리 준비해둔 유언을 철회하거나 변경할 수 있다. 다만 유언은 법에서 정한 형식을 따라야 한다. 민법은 자필증서, 공정증서, 비밀증서, 녹음, 구수증서(유언자가 말로 하고 증인이 받아 적어 작성한 증서)와 같은 5가지 형태의 유언을 인정한다. 사전에 관련 정보를 검색해보거나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

셋째, 신탁계약 체결이다. 신탁은 신탁자(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가 수탁자(재산의 소유권을 넘겨받는 사람, 보통은 신탁회사)에게 소유권을 넘기되, 넘긴 재산을 신탁자가 정한 목적을 위해서만 처분되도록 하는 제도다. 쉽게 말하면, 재산의 명의는 넘기되 실질적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재산을 사용하도록 하는 체결이다. 재산(부동산이나 예금, 주식 등)을 신탁회사에 맡기면서, 신탁자가 생존해 있는 동안에는 재산으로부터 나오는 이익(임대료, 이자, 배당소득 등)은 가져가되 사후에는 신탁자가 지정한 사람이 수익자가 되도록 정해둘 수도 있는데, 이 경우 유언을 대체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자녀(수익자)가 특정 학교에 입학할 것, 결혼이나 출산을 할 것, 일정 기간 직장을 가질 것 등을 수익 분배 조건으로 해둘 수도 있다.

임의후견, 유언, 신탁의 장점은 노후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갖는다는 데 있다. 이들 제도를 활용하면 혹여 정신적 장애를 겪게 될 때에도 사회나 가족으로부터 법률적·경제적으로 격리되거나 보호 또는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

김성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2002년부터 판사로 활동. 2015년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한정후견개시사건을 담당했고, 2018년부터 2019년 2월까지는 상속재산분할사건, 이혼과 재산분할 등에 관한 가사항소사건을 담당하는 합의부 재판장을 역임했다. 2019년부터 법무법인 율촌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상속, 후견, 가사 분야에 있어서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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