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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초원과 말

기사입력 2017-06-19 16:25

[함철훈의 사진 이야기]

▲몽골초원(함철훈 사진가)
▲몽골초원(함철훈 사진가)

‘몽골’ 하면 내 머리엔 초원과 말이 떠오른다.

요즘이 그렇다. 맑은 개울물이 흐르고 동산과 구릉에는 긴 겨울을 이겨낸 풀들의 환호성이 온갖 색으로 피어나고 있다. 그 꽃의 색과 들풀의 향기는 그 동산 안으로 들어가 본 사람만이 안다. 멀리 소문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제일 좋은 방법은 말을 타고 들어가 보는 것이다. 몽골의 부드러운 구릉을 거닐고, 개울을 건너는 데는 말 이상 좋은 게 없다. 말 위에서 내려다보는 풀밭은 그 색과 향기로 어지럽다. 사륜구동차로 언덕을 올라 원하는 들판 가운데 서서 사람 키 높이로 사방을 둘러볼 수도 있지만, 원하는 곳으로 말을 몰아 말 등에 앉아 느끼는 각도와는 사뭇 다르다. 수시로 일렁이는 바람에 묻어오는 허브 향이 감지되면 나도 모르게 그 방향으로 말머리를 돌리게 된다.

물론 몽골에도 깊은 숲과 높은 산이 많지만, 지금 얘기하는 몽골 초원과 연결된 부드러운 산에는 대부분 땅바닥을 기는 발목 높이의 풀과 꽃들이 땅을 촘촘히 덮는다. 가끔 키 큰 풀이 눈에 띄지만 커봐야 무릎을 넘진 않으니 두세 살배기 아기와 손잡고 걷기에도 아무 무리가 없는 꽃동산이다. 평화 그 자체가 가득 전해진다. 더구나 조금만 들어가면 주위에 아무도 없다. 초록 잎에 적당한 높이의 색과 모양의 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다. 저절로 입에서 새어 나오는 감탄사와 신음을 막을 수 없다. 견디지 못하고 말 세우기를 여러 번 되풀이하다 결국 말에서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말 등에서 덩어리 덩어리로 보기 아까운 군락으로 피어 있는 가냘프고 부드러운 녀석들을 만나면 어쩔 수 없다.

초원에 들어서면 꽃은 작고 시간은 많다. 지금 몽골의 초원은 어디라도 바닥이 깨끗해 무릎을 꿇을 수 있고, 엎드릴 수도 있다. 흙이 옷에 묻지 않을 정도다. 가까이 볼수록 체취가 느껴진다. 내려다볼 때와 눈높이를 맞추었을 때의 모습 차이만큼 심장이 귀 앞에서 뛴다. 사진을 하며 알게 된 이 땅에 어울리는 말이 있다.

“내 몸을 낮추니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이 땅의 주인은 이 땅의 아름다움을 본 사람입니다”

거기에서 조금 더 들어가고 싶다.

“꽃을 본다는 것은 세상을 보고 하늘을 본다는 것이다. 꽃을 오래 본다는 것은 우주를 가까이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꽃에는 같은 꽃이라 해도 비교되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기에 바람이 불면 제각기 언제라도 흔들리는 것이다. 그런데 모두 하나같이 당당하다. 아무리 작은 꽃도 우연히 핀 것은 없다. 만약 저 작은 한 송이가 없었다면 이 우주는 그만큼 완성되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 그렇게 꽃은 구체적이지 않은 추상이다. 추상의 끝자리인 바람과 냄새에 어질병이 인다. 말에 올라타 ‘추~’ 바람 소리를 내며 튼실한 말 엉덩이를 때린다.

말을 달리게 할 때는 어지러움을 견딜 수 없을 때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색과 향을 맡기 위해 잠시 바람을 쐬는 공간이 시작된다. 어느 만큼의 속도가 지나면서 눈썹이 느껴지며 말과 바람을 탄다. 귀에는 바람을 넘어서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며 후끈한 열기가 안장으로부터 올라온다. 말은 더 달리려 한다. 그때 능선 오르막길로 몰면 말의 거친 숨소리와 땀으로 젖어드는 공기가 느껴진다. 호흡을 조절하며 올라선 능선 꼭대기에 서서 바라보는 초원의 하늘과 구름이 한눈에 들어온다. 겨우 말 하나의 위치만큼 높아졌을 뿐인데 그 풍광은 많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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