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로 남편에겐 질냄비에 끓인 스트로가노프와 구운 생선 그리고 고기 감자조림에 나무 수저를 준다. ‘감자’라는 말만 들어도 속이 더부룩해지는 아내는 바삭하게 구운 빵에 직접 만든 블루베리 잼을 발라서 먹는다. 그리고 후식으로 뜰에서 딴 과일을 먹는다. 서로의 소소한 차이를 존중하며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노부부의 일상이 화면 가득 잔잔하다.
우리가 일과 삶을 일치시키며 살기란 그저 마음뿐이기 십상이다. 결혼한 지 65년이 된 건축가 츠바타 슈이치와 아내 츠바타 히데코는 각각 90세와 87세. 이 둘의 나이를 합치면 무려 177이다. 노부부는 숲으로 둘러싸인 15평의 삼나무 단층집을 짓고 50년째 살고 있다. 50가지의 과일, 70가지의 채소를 키우고 그것으로 소박하고 정갈한 음식을 매일 만들어 먹는다.
‘집은 삶의 보석상자여야 한다’는 자막과 함께 땀과 노동의 실천으로 차근차근 빚어낸 슈이치와 히데코 부부의 조용한 일상을 보여준다. 과일이 익어가듯, 인생은 오래 익을수록 맛있다고 말하는 일본 영화 `인생 후르츠(Life Is Fruity)`다.
이 영화는 백발 노부부의 자연 친화적인 일상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다. KBS ‘인간극장’과 비슷한 형식으로 2년 동안 그들을 촬영한 것인데 일본에서도 많은 호응을 얻은 작품이다. 이 영화엔 최근에 세상을 떠난 일본의 국민 어머니라 불리는 ‘키키 키린’의 진정성 있는 나레이션이 감동을 더한다.
도쿄대 요트 부원이었던 남편 슈이치는 부원들과 아내 히데코의 200년 전통의 양조장에서 잠깐 신세를 지게 되면서 부부의 인연이 시작된다. 건축가인 슈이치는 대학 졸업 이후 일본 주택 공단에 들어가서 나고야의 ‘고조지 뉴타운 계획’을 맡았다. 하지만 그가 계획했던 숲과 어우러지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계획이 무산되자 슈이치는 땅을 사서 자연과 공존하는 작은 삼나무 집을 지어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기 시작한 것이다.
슈이치와 히데코의 정원에 매달린 많은 이름표는 그들이 진정 자연과 함께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한다. 정원 앞 웅덩이 같은 수반 옆에 `작은 새들의 옹달샘- 와서 마셔요`라는 글이 고맙다. `작약- 미인이려나`, `여름밀감-마멀레이드가 될 거야` 푯말은 애교스럽다.
노인을 주제로 한 영화가 이토록 생기 있고 창의적이라니. 오랜 시간 함께한 부부에게서 기복이 심한 희로애락이나 자극적인 에피소드는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자연 속 부부의 인생 미학은 더없이 아름답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면서 억지 부리지 않는다. 아내 히데코의 선한 눈빛과 미소는 나쁜 말은 입에 담지 말아야 한다는 그녀의 생각과 어울린다. 담백하게 담아낸 그들의 일상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어떻게 사는 것이 나이를 잘 먹어가는 것인가’ 고령화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화두가 되는 말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주거환경 등 그 방법을 여러모로 생각하게 되었다. 노후대책 중 하나로 쉽사리 귀촌이나 귀농을 떠올리곤 하지만 절대 만만하지 않은 일이다. 자연 속에서 땀과 함께 실천하는 삶이 자리 잡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마치 과일이 익어가듯, 맛있게 영글어가는 노부부의 모습에서 ‘인생 후르츠’라는 제목이 탄생한 것처럼 말이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를 맺는다. 차근차근 천천히…"
엔딩 크레딧을 보면서 ‘한 번 더 볼까?’하는 생각이 들게 한 영화 ‘인생 후르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