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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8경

기사입력 2018-02-05 13:52

▲궁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빨래했다는 빨래터가 남아 있다(박혜경 동년기자)
▲궁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빨래했다는 빨래터가 남아 있다(박혜경 동년기자)
호가 춘곡(春谷)인 고희동 가옥을 지나 올라가다 보면 빨래골을 만나게 된다. 약간 지하에 있는 개구멍받이처럼 생긴 곳에서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옛날 궁녀들이 그곳에서 머리도 감고 세수도 했단다. 궁녀들이 비누 대신 곡물을 사용해 늘 뿌연 뜨물이 흘러나왔는데 사람들은 그 물에 빨래를 했고 그 뒤 빨래골이라 불려왔다 한다.

곡물로 머리를 감았다니 궁녀들의 호사를 알 수 있었고 예쁜 모습으로 왕의 눈에 들어보려는 암투가 느껴지기도 했다. 흘러내려오는 물로 동네 사람들이 비누 없이 빨래를 했다고 하니 민초들의 가난한 생활이 상상이 되었고 빨래터의 정겨운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바로 위쪽으로는 숙종의 총애를 받았던 장희빈이 살았다는 집이 있었다. 그렇게 세도를 부리던 장희빈도 사약을 마시고 죽었으니 인생무상이 따로 없다. 그렇게나 아름다웠던 장희빈이 살았던 집이라니 다시 한 번 들여다보았다.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돌다가 삼해 소주 공방에 들어갔다. 마당에서는 소주를 만들려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니 간단한 차와 직접 만든 편강, 김부각 등을 팔았다. 북촌민예관도 함께 있었는데 무형문화재 김복곤 악기장의 가야금이나 아쟁, 대금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또 옆방에는 백남준 씨의 조형 작품들이 있었다.

계동에서 원서동을 지나 가회동 11길의 오르내림이 심한 골목에 다다르니 3경이 바로 눈앞이다. 포토존에서 멀리 남산타워가 보였다. 오늘은 날씨가 좀 흐려서 희미한 실루엣만 보였지만 날씨가 좋으면 타워가 선명하게 보여 많은 관광객들이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고 한다.

그윽한 정취를 가지고 있는 한옥들을 감상하며 4경을 지나 5경에 이르니 벽과 지붕이 맞닿을 듯 즐비한 한옥 골목이 나타났다. 이곳에서는 전봇대나 전선이 보이지 않는 점이 특색이다. 주택업자가 모두 지하로 파묻어 분양했다고 한다. 외관은 고칠 수 없어 예전 모습 그대로이지만 집 안은 다 현대식으로 고친 한옥들이라 한다.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니 취운정(翠雲停)이라는 한옥이 나왔다. 이곳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살던 집이라고 한다. 지금은 게스트하우스로 사용되고 있으며 하루 숙박료가 140만 원이라니 보통사람은 하룻밤 지낼 엄두를 못 낼 것 같다.

6경에서도 남산타워가 보이는 포토존이 있는데 그 옆 유서 깊은 중앙고등학교는 ‘겨울연가’를 촬영지로 일본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고 찾아온다고 한다. 필자가 대학생 때 좋아했던 남자 친구도 중앙고등학교 출신이었다. 학교 앞에 서니 그 시절이 생각나고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슬쩍 궁금해져서 속으로 픽 웃음이 났다. ‘잘 살고 있겠지, 뭐’ 하면서.

▲7경의 북촌 전망대에서 본 경복궁(박혜경 동년기자)
▲7경의 북촌 전망대에서 본 경복궁(박혜경 동년기자)

7경의 북촌 전망대에서는 멋진 기와지붕들 너머로 백악산과 인왕산 사이의 청와대와 경복궁이 보였다. 8경은 삼청동으로 내려가는 가파른 계단이어서 필자 일행은 정독도서관 쪽으로 내려왔다. 정독 도서관은 옛 경기고등학교 자리로 이전에는 사육신 중 한 분인 성삼문이 이 근처에 살았다 한다. 또 조선시대 총포를 만들었던 ‘화기도감 터’였다고도 한다.

오늘 탐방한 북촌 8경에서 우리나라 한옥의 지붕 곡선과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이렇게 보존되고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더 많은 분들이 전문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우리의 한옥마을을 찾아 아름다움을 느껴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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