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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사랑이 대단했던 장모님

기사입력 2017-10-20 20:26

아내와는 연애결혼을 했다. 서로 결혼을 약속하고 장차 장인장모가 될 어른들에게 인사 가기로 했다. 서울근교라 하지만 당시만 해도 시외버스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한 시간이나 가야하는 거리였다. 시골동네라 결혼 안한 남녀가 같이 다니는 것이 금기시 되었던 시절이다. 혼자 찾아가야 했다. 아내를 통해 어디서 무슨 버스를 타고 어디쯤 내려 어떤 집으로 찾아오라는 약도 까지는 받았다.

    

처음 방문인지라 잔뜩 긴장하고 어색한 양복에 백화수복 정종을 한 병 들고 갔다. 동네사람들이 밭에서 일하면서 저 총각이 어느 집으로 들어가는지 눈 여겨 보고 있었다. 나는 동네사람들의 시선은 아예 모르고 약도를 몇 번 드려다 보면서 장차 처갓집이 될 집을 찾는데 열중했다. 시집갈 과년한 처녀가 있는 집에 총각행색의 남자가 찾아가니 누구네 집 곧 혼사가 있을 모양이라는 소문이 금방 동네에 돌 것은 뻔했다. 

    

장모님이 서둘러서 소문을 진정시키기 위해 서울조카가 다녀갔다고 거짓말을 했다. 아직 부모님들이 만나서 정식 약혼을 하지 않았기에 혹 결혼이 성사되지 않으면 딸의 혼사 길이 막힌다고 애써 소문을 차단하려고 했다. 동네사람들이야 새신랑감이 다녀가는 것 같다는 의심은 들었지만 당사자가 아니라니 그렇게 믿는 척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 양가 부모님이 만나서 혼인하기로 결정하기 전까지는 예비 사위의 출입을 금지 시켰다. 물론 밖에서는 아내와 자유롭게 데이트를 즐겼지만 처갓집 동네에는 얼씬도 할 수 없었다.

    

결혼하고 장모님은 아내가 외동딸이기에 사위인 나에게 신경을 많이 썼다. 사위 몸보신 해준다고 개를 한 마리 잡아서 통째로 들고 왔다. 혼자서 한 달간 개고기를 먹는데 큰 고역이었다. 한번은 처갓집에 갔는데 사위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자 온 동네를 뒤져서 어느 집에서 박카스 한 병을 구해 와서 나보고 먹으라고 주기도 했다 또 다른 사건은 아내의 외할머니 즉 장모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일이다.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는 교통이 불편한 곳이었고 자가용차가 귀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문상을 갔더니 우리사위 차 태워 보내야 한다고 문상객들에게 자가용차를 갖고 온 사람을 찾아다녔다. 장모님 정성에 고맙기도 했지만 자가용 없는 사위 체면에 참 창피하기도 했다. 

    

장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장모님 사랑이 하나하나 떠오르면서 슬픔이 복 받혀 올라왔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나왔다. 돌아가신 장모님 손을 잡고 한참을 울었다. 세상에 사위가 저렇게 슬피 울다니! 문상 온 동네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부모자식 간은 하늘도 어쩌지 못하는 천륜이 있다. 자식으로서 또는 부모로서 해야 할 도리가 있지만 그보다 앞서 사랑과 존경심이 있어야 한다, 부모와 자식 간의 무한한 사랑과 존경심은 손익계산서가 필요 없이 그냥 주고 느껴야 한다. 자식을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매질하여 죽이기도 하고 부모를 모시기 힘들다고 버리기도 했다는 신문방송을 보면서 사랑과 존경심이 메말라 가고 있음을 한탄 한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부모기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베풀어준 사랑에 목 놓아 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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