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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받고 싶은 사람

기사입력 2017-09-05 11:08

우리 집 아파트 11층에 대학 선배 언니가 산다. 필자보다 8년이나 학번이 빠르니 나이도 꽤 들었는데 어떻게 관리를 했는지 필자랑 친구처럼 보여서 아파트 부녀회라도 열리면 다들 비결 좀 알려달라고 한마디씩 한다.

선배는 남편과 사이좋기로 소문이 났고 늘 다정하다. 노후대책도 연금이나 이자 수입으로 아주 튼튼히 해놓은 것 같다. 남편이 은퇴한 지는 오래되었는데 그동안 수고했으니 남은 인생 편하게 쉬게 하고 싶다며 재취업 같은 건 생각도 하지 말라 하고 두 사람이 철마다 여행 다니고 운동도 하고 좋은 음식 먹으러 다닌단다.

보통 남편들이 은퇴시기가 되면 노후 걱정과 불안감으로 부부싸움이 늘기도 하고 부담스러워진다. 물론 선배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노후대책을 마련해놓고 있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두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본받을 만하다.

선배가 남편에게 하는 말투나 태도는 필자처럼 무뚝뚝하지 않고 언제나 상냥하다. 남편을 부를 때도 “여보~~오” 하며 뒷마디의 톤이 올라가니 필자처럼 애교 없는 사람은 따라 할 수도 없다. 하도 사이가 좋아 보여 남편이 미울 때가 한 번도 없었느냐고 물어보았다. 미울 때가 왜 없었겠냐며 그래도 상대편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니 미운 생각이 없어지더라고 했다. 현명하게 사는 선배가 존경스러웠다.

언젠가 선배와 김치공장 견학을 갔다 오던 날이었다. 김치공장에서 우리가 직접 만든 김치는 택배로 보내준다 해서 그날 만든 겉절이 1kg 정도만 들고 왔다. 동네 어귀쯤 오자 선배가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상냥한 코맹맹이 소리로 “여보~ 다녀왔어요. 지금 주민센터 앞 지나고 있어요~” 했다.

김치공장 견학 간 것을 알고 있었던 선배 남편이 아마 우리가 무거운 김치를 들고 오는 걸로 알았는지 마중을 나오겠다고 하는 것 같았다. 만든 김치는 택배로 받을 거니까 무거운 건 없으니 힘들게 나오지 말라고 선배는 말했다.

필자 남편은 지방에 일 때문에 내려가 전화할 사람도 없었는데 다정하게 전화하는 선배를 보니 간질거리기도 했지만 부럽기도 했다. 힘드니까 나오지 말라고 재차 말하는 선배의 얼굴은 남편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대로 나타나듯 발그레하니 참 예뻐 보였다.

버스에서 내리는데 저만큼에서 선배 남편이 걸어오고 있었다. 외출하고 오는 아내를 마중 나온 것이다.

“ 아이, 무거운 짐 없으니 나오지 말랬더니…” 하면서도 언니는 아주 기쁜 표정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앞서서 걸어가는 두 사람을 보니 정말 다정해 보이고 보기 좋았다. 작은 일에서도 서로 배려하고 아껴주는 모습이었다.

선배를 보면서 ‘나도 남편에게 저렇게 말 한마디라도 다정하게 해줘야지’ 하는 다짐을 해보지만 작심삼일이다. 선배 부부처럼 살려면 서로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도 많은 시간을 같이 살아왔고 앞으로도 함께 보내야 한다. 선배네 부부가 좋아 보인다고 부러워만 하지 말고 필자도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선배처럼 한 번 더 생각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배워야 할 것 같다. 인생 후반기를 선배네 부부처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생의 롤 모델이 될 만하다는 부러운 생각이 들게 하는 부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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