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년기자 페이지] 내 자식 혼사열전
책상 위에 놓은 휴대폰이 윙윙대더니 친구가 왔다.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친구는 아파트 가격이 왜 이렇게 비싼지 모르겠다며 툴툴거린다. 시내에 커다란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친구가 뜬금없이 왜 아파트 타령일까. 알고 보니 딸이 결혼을 한단다. 필자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왜? 아파트 사주려고?” “응.” 예상외의 답변이었다. 친구가 돈이 좀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출가하는 딸에게 아파트를 사줄 생각까지 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사윗감이 대단한 사람인가보네 하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친구의 사윗감은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이었다.
잠시 대화가 끊긴 것은 순전히 필자 때문이었다. 필자의 딸도 결혼 날짜를 잡아놓은 상황이었는데 아파트는커녕 아무것도 해줄 게 없어 미안해하고 있던 터라 얼마간은 불편한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친구의 그다음 말이 필자를 놀라게 했다. 사윗감이 딸을 통해 아파트를 사달라 했다는 것이다. 친구는 한숨을 쉬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뭐? 학생 놈이 아파트를?” 목소리의 톤이 올라갔지만 곧 누그러뜨렸다. 아버지가 딸을 위해 아파트를 사주는 것이 비난받을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년 반 정도가 흘렀다. 그 사이에 친구의 딸도 필자의 딸도 모두 결혼을 했다. 친구는 수원에서도 잘나간다는 광교 지역에서 32평짜리 아파트를 딸에게 사주었다. 어느 날 친구는 술이나 한잔하자고 했다. 한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안색이 별로 좋지 않음을 대번에 느낄 수 있었다. 얼굴엔 고민의 흔적이 역력했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친구가 어렵게 운을 뗐다. 사위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위가 돈은 안 벌어오고 집에서 룸펜이 되어 마누라 시집살이를 시키고, 딸은 그런 신랑이 못 미더워 임신중절까지 하고 자기라도 돈을 벌겠다며 직장에 나가고 있단다. 그런데 정작 사위는 딸에게 저녁마다 누구를 만났는지 왜 같이 있었는지 캐묻더니 요즘은 손찌검까지 한다는 것이다. 장인이 고심 끝에 몇 차례 만나 설득도 해보고 윽박질러보기도 했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단다. 결혼할 때 아파트 사달라고 했을 때 싹을 잘라냈어야 했다. 입에서 이혼이라는 말이 자연스레 흘러나왔을 때 친구는 만취해 있었다.
다음 날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던 아내는 평소와 달리 몹시 화가 나 있는 듯했다. 술을 먹고 늦게 들어온 죄로 꼬랑지를 바싹 내린 채 눈치를 살폈다. 잠시 후 아내는 눈칫밥을 먹고 있는 필자에게 이런 시국에 밥이 넘어가냐며 쏘아봤다. 그러고는 우리 딸을 어쩔 거냐고 묻는다. 아내는 한숨을 푸욱 쉬더니 사돈댁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아이들 전세비를 해주겠다는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려도 되는 거냐고요!” 도대체 무슨 일인지 궁금해졌다. 사돈이나 필자나 애들에게 집을 사주진 못했지만 조그만 아파트를 전세로 얻어 잘살고 있는데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내는 그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면서, 사돈댁에서 전세를 얻어줄 형편이 못되어 1년만 기다리면 집을 옮겨서라도 부족한 전세금을 해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태 부족한 전세비를 월세로 대신하며 아이들이 감당하고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사돈댁에서 전세비 마련이 어려우니 다시 내년까지 기다려 달라는 말에 아내가 결국 터져버린 것이다. 필자는 밥을 먹다 말고 아내의 걱정에 피식 웃고 말았다. “전세비는 내년에 해준다는데 뭘 그래, 이 사람아.” 친구가 떠올랐다. “집을 사주고도 얻어맞으며 사는 사람도 있더라고. 걱정하지 말어. 좀 부족해도 애들만 행복하면 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