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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WA 모닝커피 오픈 하우스’

기사입력 2017-08-10 17:00

▲따끈한 커피를 마시며 추억에 잠겨보았다(박혜경 동년기자)
▲따끈한 커피를 마시며 추억에 잠겨보았다(박혜경 동년기자)
아침마다 어린이집에 아기를 등원시키는 며느리가 손녀를 유아원에 들여보내고는 종종 또래 엄마들과 근처 커피숍에서 모닝커피 타임을 가진다고 한다. 비슷한 나이의 엄마들이니 할 말도 많을 것이고 정보도 나누면서 즐거운가보다.

모닝커피 타임이라 하니 예전에 필자가 활동했던 SIWA(서울국제부인회)가 생각난다. ‘시와’는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 부인들의 모임인데 우리나라 부인들도 회원이 되면 같이 어울릴 수 있었다. 여행 클럽 등 다양한 모임이 있었는데 필자는 영어회화 클럽에 가입했었다. 홍은동의 스위스 그랜드호텔(지금의 그랜드 힐튼호텔)에서 정기적인 바자회도 열려 각 나라의 특산품을 판매하고 각국의 요리도 소개되었다. 여기서 얻은 이익금은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부했다.

필자는 바자회에 낼 상품으로 크리스마스용품과 헝겊으로 리스 장식을 만들었다. 각국의 부인들과 모여 예쁜 장식품을 만들던 시간은 참으로 이색적이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또 ‘시와’에서는 ‘모닝커피 오픈 하우스’ 행사가 있었는데 필자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당시 한 달에 한 번씩 집으로 오는 소식지에는 ‘모닝커피 타임’ 행사 관련 기사가 실렸다. 몇 월 며칠 몇 시에 어느 집에서 모닝커피 오픈 하우스가 열리니 참석하라는 내용이었다. ‘시와’ 회원이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고 주로 열리는 장소는 성북동이었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어서 필자는 매번 참석했다. 당시 필자는 무척 당돌하고 얼굴도 두꺼운 용감한 여자였던 것 같다. 아는 사람 하나 없고 외국인 부인들뿐인데 유창한 영어 실력도 아니면서 찾아다녔으니 말이다.

소식지에 쓰여 있는 대로 구불구불한 성북동 언덕의 오픈 하우스 집을 찾아가면 골목 입구부터 화살표가 그려진 예쁜 팻말이 장소를 안내해줬고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들이 사는 집은 대부분 렌트한 집이었는데 깨끗하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집으로 들어서면 많은 외국 부인이 처음 보는 얼굴인데도 오래 알아온 친구처럼 함박웃음으로 맞아줬다.

매우 어색할 것 같았지만 한국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오히려 용감하게 인사를 건네며 어울릴 수 있었다. 거실 한쪽 테이블엔 향긋한 커피와 직접 구운 쿠키를 가지런히 담은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접시에 쿠키 몇 개와 커피 한 잔을 들고 아무 데나 섞여서 이야기하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역시 서양인보다는 아시아계 부인들과 자주 어울리게 되었다.

필자보다 훨씬 나이가 어려 보이는 필리핀 아줌마 캐시는 필자를 친구라고 불러주었다. 그녀에게는 세 살짜리 예쁜 딸 ‘리아’가 있었고 한국에 온 것은 바나나 수입 일을 하는 남편의 사업 때문이라고 했다. 친정엄마는 필리핀에서 이름 좀 있는 배우라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공지했던 시간이 되면 넓은 거실에 둥글게 모여앉아 자기소개도 하고 활동내용도 이야기했다. 그러나 자기소개 이외의 내용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했다. 필자 소개를 할 때는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도 했지만, 기분 좋은 긴장과 설렘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몇 번의 ‘모닝커피 타임’을 가진 후 캐시와 친해져 근처에 있는 캐시 집에 초대를 받아 방문하기도 했다. 집안 분위기로 보아 필리핀 상류층인 듯했다. 캐시는 자신이 가톨릭 신자여서 일주일에 한 번씩 성경 공부를 하는데 같이하자고 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캐시 집에서 대여섯 명이 모여 공부를 했다. 영어로 된 성경책을 읽고 토론하는 형식이었다. 필자는 잘 모르는 것이 있어도 열심히 질문도 해가며 동참했다.

그 후 서울 지리를 잘 모르는 캐시를 외국인 병원에 데려다주기도 했고 미사를 드리고 싶다 해서 성북동 성당에도 같이 가줬다. 또 아기 옷을 사러 유아복 전문점도 같이 다니면서 우리나라 아줌마의 친절함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캐시가 필리핀으로 돌아갈 때까지 친하게 지냈으니 필자는 썩 훌륭한 민간외교를 한 셈이다.

몇 년 열심히 다니다가 그만둔 ‘시와’ 모임은 지금도 여전히 잘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커피 한잔을 들고 젊었을 때의 잊지 못할 즐겁고 멋진 시간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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