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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띄우는 가을엽서

기사입력 2017-07-31 11:19

▲그대에게 띄우는 가을엽서(변용도 동년기자)
▲그대에게 띄우는 가을엽서(변용도 동년기자)

가끔은 손 글씨로 한 줄 두 줄 써 내려간 편지가 그리워진다. 즉각 전달되는 긴 안부 문자보다 사나흘 걸리는 편지가 정겹게 여겨지기도 한다. 먼저 접한 가을 소식을 한 장의 엽서에 담아 보내면 어떨까? 카메라로 한 장의 ‘가을엽서’를 그렸다. 결실을 기다리는 그대에게 띄운다.

계절이 오는 길목은 다양하다. 봄은 남녘에서 길을 만들고 가을은 북으로부터 다가온다. 추위가 다가옴을 미리 알아차리고 겨울 준비를 서두르는 자연의 섭리다. 숨통을 쥐어짜듯 무덥던 여름이 서서히 꼬리를 내리는가 보다. 필자가 사는 동네는 서울보다 북쪽 지역이어서 평소 온도가 2, 3도 낮기도 하지만, 아침저녁이 선들하고 열어둔 창문을 넘어 슬쩍 들어오는 새벽녘 찬 기운에 홑이불을 챙긴다. 온몸이 으스스 감기 들까 봐 새우처럼 움츠리는 환절기다. 세월의 흐름 속에 계절 변화는 여지없이 나타난다. 전혀 물러갈 것 같지 않던 무더위도 숨을 죽여간다. 머지않은 시기에 입추 절기가 자리하고 있다. 오늘이 7월 말일이고 입추가 8월 7일이니 한 주 정도 남았다. 태양이 중천에 머무는 시간대면 그래도 아직 더위가 몸을 데우지만, 중복이 지난 시점에서 가을 문턱의 기운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필자는 일산 신도시 근처에 논밭이 즐비하고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쳐진 시골 같은 마을에 산다. 자연과 함께한다. 때로는 자연 속의 한 배역이 되기도 한다. 달을 따라 하늘을 날기도 하고 꿀을 따는 벌과 무지개를 좇기도 한다. 텃밭에 열린 오이를 따서 옷에 쓱쓱 문질러 한 입 베물기도 하며 자연스레 살아가려 한다. 가수 효리의 민박집이 인기이듯 자연스러움은 곧 사람 냄새가 나는 삶으로 모두가 그리워한다.

그 꿈을 위하여 3년 전에 전원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계절의 변화를 어느 사람보다 먼저 알아차린다. 콘크리트 감옥 같은 도회에서 느낄 수 없는 생활을 해서일 테고 한 걸음 더 자연의 품에 안겨서다. 은퇴하면 많은 사람이 전원에서의 삶을 갈구하고 대도시 주변 산이 시간을 가리지 않고 붐비는 이유도 그럴 테다. 전원풍의 마을에 사는 필자는 계절의 감각을 빠르게 느낀다. 봄.여름.가을.겨울 모두가 그렇다. 요즘도 계절의 변환 시기다. 벼를 심은 논에 벌써 가을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을 순간 발견해서 그렇다. 오늘 아침에야 벼 이삭이 패고 있음을 발견했다. 모내기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벼 이삭이 논의 군데군데 보인다. 어제 아침과 오늘 아침이 다르다. 물이 끓는 모습은 일순간에 나타나도 끓기 위한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게 진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봄부터 여름 내내 밤이면 별을 세고 바람결에 흔들리며 고요한 시간과 이슬을 머금고 조금씩 조금씩 키를 키우더니 입추를 눈앞에 둔 지금 벼 포기의 키가 훌쩍 컸다. 진초록 볏줄기를 비집고 연둣빛 이삭이 하늘을 향한다. 그 위로 잠자리 떼 쉴 사이 없이 날고 있다. 가을이 싹튼다. 오래지 않아 따사한 햇살에 벼는 탱글탱글 익어 가고 검붉게 탄 구릿빛 얼굴의 농부가 논둑에 서서 넉넉한 미소로 황금빛 들녘을 바라보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필자는 오늘도 논과 농수로를 사이에 한 들길을 걸으며 모르는 사이 갓 패어난 벼 이삭에서 가을 소식을 전해 듣는다. 카메라로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 ‘가을엽서’를 만들었다. 그대에게 띄우는 ‘가을엽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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