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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코같은 소리, 자중하세요”

기사입력 2017-08-03 08:37

나, 이럴 때 분노조절이 안돼

얼마 전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동료들은 은퇴 후 다시 다니는 직장이라 대부분 협력회사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 근무자에 대한 차별이 있지만 이것저것 가릴 처지도 못 되고 은퇴자로서 일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자위(自慰)하면서 근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부 심정 홀아비가 알아준다는 말이 있듯이 동료들끼리 서로의 형편을 이해해주고 의지하면서 일하다 보니 마음 맞는 사람끼리 자연스럽게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러다가 친목도 다지고 정보도 공유하면서 지내보자는 의미로 ‘요산요수(樂山樂水)’라는 모임까지 만들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회원이 “날씨도 더운데 퇴근길에 시원한 막걸리나 한잔 합시다”라며 단체 카톡방에 글을 올렸다. 소위 번개를 친 것이다. 특별한 상황이 없다면 땀 흘려 일하고 퇴근길에 막걸리 한잔 하자는데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아홉 명의 회원 중에 네 명이 모였다. 다른 회원들은 3교대 근무라는 특수 상황 때문에 야간 근무나 오후 근무를 해야 했기에 참석할 수 없었다. 필자는 당일까지 작성 처리해야 할 기사가 있어 참석을 하지 못하고 귀가하자마자 저녁도 대충 먹고 책상에 앉아 컴퓨터 자판과 씨름했다.

잠시 후 카톡 오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궁금해서 슬며시 휴대폰을 열어보니 가관이었다. 막걸리 집에서 한상 가득 차려놓고 먹고 마시고 건배하는 장면 등을 실시간으로 찍어 올리면서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극적인 말들을 쏟아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고 ‘좋은 시간 되시라’는 댓글도 달아줬다.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노골적으로 미참석자들을 자극하는 멘트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흥에 겨워 그러는 거겠지 하며 이해를 했다. 그러나 도를 넘어 유치할 정도의 수준에 이르자 슬그머니 속이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만난 사람끼리 기분 좋게 한잔 마시고 담소를 나누면 될 일이지 근무하느라 참석 못한 사람들을 계속 자극해서 뭐하겠다는 것인가? 그중 연장자인 한 회원도 한마디 한다. “오늘 번개에 못 온 놈들 약오르지? 약오르면 지금이라도 달려오면 돼!” 이게 할 소리인가? 더운 날씨에 힘들게 근무하는 회원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는 행동이었다. 참으로 너무한다 싶어 화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특히 ‘요산요수(樂山樂水)’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입장에서는 더욱 참기가 힘들었다. ‘참으로 나잇값도 못하는 사람이네, 본인은 기분 좋아 지껄이는 말일지 몰라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참석 못한 회원들을 조금이라도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렇게 행동해서는 안 되지!’ 속에서는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욕설이 가득했다. 그러나 가까스로 참고 내뱉은 한마디는 “개코같은 소리, 자중하세요”였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덮어버렸다.

카톡 들어오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지만 더 이상 대꾸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또 한 번의 카톡 소리가 들려와 확인해 보니 사과 멘트였다. 필자 역시 죄송하다며 사과를 했다. 화가 나서 부지불식간에 내뱉은 한마디. 시간이 지나니 좀 더 참을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너무 심한 말을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어 사전까지 뒤적여 ‘개코같은 소리’의 의미를 찾아봤다. (상태나 모양이) 하찮고 보잘것없다는 의미로 쓰이는 형용사였다. 필자가 회원들에게 던진 ‘개코같은 소리’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는 여러 가지였다. 어쨌든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없었던 마음속 말들을 그 한 문장에 함축시켜 일갈(一喝)해버림으로써 그날의 사건은 다행스럽게 일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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