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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렁한 것이 좋아

기사입력 2017-07-24 09:45

부모님이 장기 투병하는 막내 동생을 간병하려고 수십 년 전에 서울로 이주하셨다. 고희를 넘긴 아버님은 답답함을 달래려고 자주 주위를 산책하셨다. 하루는 “애야, 서울에는 왜 작은 차가 많은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큰 차로 많이 실어 나르면 될 터인데” 하루 한 번 다니면서 넓은 좌석에 웬만한 짐까지 실어주는 헐렁한 버스를 생각한 이야기였다.

새 옷을 입던 손자가 “옷이 작아서 불편해요” 하면서 벗어던졌다. 새 학년이 되면서 몸에 잘 맞고 예쁜 것으로 골랐던 옷을 제대로 입어 보지도 못하고 버려야 할 처지다. 커가는 아이들을 생각하여 조금 여유 있는 옷을 샀으면 좋았을 터이다. ‘몇 달 만에 아이가 부쩍 자랐나 보다’ 마음을 달랬다. 어머님이 사주셨던 헐렁한 옷가지와 신발이 문득 그리워졌다.

한국전쟁이 막 끝난 초등학교 시절에는 생활용품이 엄청 귀했다. 어머님은 일 년에 한 차례 설날이 되어야 몸에 헐렁한 옷과 신발을 사주셨다. 이유는 단 하나 한 해 동안 입고 신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옷의 긴 소매와 바짓가랑이는 적당히 접어서 바늘로 꿰맸다가 자라는 몸에 따라 조금씩 풀어 내렸다. 고무신을 아끼려고 손에 들고 맨발로 다니는 것이 보통이었고, 심한 자갈길에서만 신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발에서 잘 벗겨지지 않도록 고무줄로 동여매는 일은 너무나 당연하였다.

신발이 낡아서 더 신을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발에 꼭 맞았다. 작아서 못 신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낡기 전에 못 신을 형편이 되면 어김없이 동생에게 넘겨야 했다. 한 해 동안 부족하지도 남지도 않게 고차원 방정식을 풀면서 신발을 신어야 했다. 읍내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쾌재를 불렀다. 교복ㆍ교모를 착용하는 학생다운 모습으로 초등학생 동생들에게 폼 잡는 것도 마음에 들었지만, 꿈에 그리던 운동화를 신을 수 있었다. 통고무신을 잊고 중학시절이 꿈 같이 흘렀다. 하지만 대도시 고등학교 입학 첫날부터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키 크기에 따라 번호를 정하기 위하여 처음 만난 친구들과 줄을 섰다. 중학생 때는 중간쯤이던 내 키가 대도시 고등학교에서는 제일 작았다. 두메산골에서 자란 탓에 1년 늦게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한 살 아래 동생들과 같은 학년이라는 점이 적잖이 신경 쓰이던 때였다. 하물며 이들보다 키가 작아서는 아니 될 일이었다. 아차!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비상대책을 찾았다.

중학교 때와 달리 고등학교에는 운동화를 신은채로 교실출입을 하였다. ‘옳거니, 바로 이거야’ 번쩍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키를 조금만 높여도 제일 작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 것 같았다. ‘1번 탈출 작전!’ 중학생 시절 신발이 젖으면 가끔 애용했던 대로 종이를 알맞게 말아서 운동화 바닥에 두툼하게 깔았다.

아 뿔 사! 헐렁한 신발이 싫어서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발에 꼭 맞춰서 내가 산 운동화에 발이 들어가지 않았다. 여태까지 어머님이 사주셨던 조금 헐렁한 것이었으면 충분히 해결되는 문제였다. 도리 없이 종이를 빼낸 후 ‘야속한 새 신발‘을 신었다. 키가 제일 작은 1번을 피할 수 없었다.

그 후 폭풍 성장하는 동안 몸에 꼭 맞는 것보다 헐렁한 것을 더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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