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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다섯 가지 원칙 “쓰러트리는 말, 일으켜 세우는 말"

입력 2025-08-25 07:00

[강원국의 어른 소통법] 피해야 할 사람, 대화하고 싶은 사람

“집 걱정 말고 당신 하고 싶은 일 해!” 1986년 아내를 만난 이후 줄곧 들어온 말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나는 지난 40년 동안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지 못했다. 늘 해야 할 일, 하라고 하는 일을 했다. 그렇지만 아내의 말이 힘이 됐다. 어깨 위에 얹힌 불안을 덜어줬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줬다. 언제든 하기 싫은 일을 그만둘 수 있다는 사실, 언젠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고달픈 일상을 견디게 했다.


(일러스트 윤민철)
(일러스트 윤민철)


인간관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말이다. 힘이 되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냐, 힘 빼는 말을 일삼는 사람이냐에 따라 좋은 관계가 되기도 하고 나쁜 관계를 만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말을 잘한다는 건 힘이 되는 말을 잘하는 것을 의미한다.


힘이 되는 말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말 잘하는 유형은 세 가지다. 우선 아는 게 많아 알고 싶은 내용을 쏙쏙 짚어주는 유형이다. 어릴 적엔 부모가 그랬고, 학교에 가서는 선생님이 그런 역할을 해줬다. 주로 지식과 정보가 여기에 해당하는 말이다.

다음으로는 방법을 알려주는 유형이다. 그 사람 말을 들으면 배우는 게 있다. 직장 다닐 때는 상사가 그 역할을 했고, 요즘엔 그런 사람을 유튜브에서 자주 만난다. 방법과 요령을 알려주는 말이다.

첫 번째 사람을 만나면 그전에 몰랐던 것을 알게 된다. 두 번째 사람과 연결되면 이전에 못 했던 걸 할 수 있게 되거나, 할 줄 아는 걸 더 잘하게 된다. 이 모두 내게 힘이 되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다.

하지만 가장 큰 힘을 주는 유형은 마음을 움직이는 말을 하는 사람이다. 말은 내 마음을 추켜세우기도 하고 짓누르기도 한다. 들어 올리는 말을 듣고 나면 마음에 격동이 일어난다. 감정이 움직이고, 일깨움을 얻는다. 그런 말은 주로 그 사람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경험에서 깨달은 바를 상대를 위해 말할 때, 우리는 그 말에 귀 기울이고 그에게서 진정성을 느낀다.

첫 번째가 티칭을 해주는 사람이라면, 두 번째는 코칭해주는 사람이고, 마지막은 멘토링해주는 사람이다. 티칭은 집어넣어 주고, 코칭은 내 안의 것을 끌어내 준다면, 멘토링은 내게 없는 걸 만들어준다.

힘을 주는 말은 따뜻하고 밝다. ‘잘할 거야’, ‘역시 너는 달라’, ‘너를 믿어’, ‘네가 자랑스러워’ 같은 말은 자존감을 높이고 의욕을 북돋운다. 듣고 나면 엄마가 정성스레 지어준 밥을 먹은 것처럼 힘이 불끈 솟는다.

이에 반해 힘을 빼는 말은 차갑고 어둡다.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너는 왜 그것도 못 하는 거야’, ‘그렇게 해서 잘되겠어?, ‘넌 그래서 안 돼’ 등 불신하고 무시하는 말은 듣는 이의 열등감을 키우고 스스로 가능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 위력 또한 힘이 되는 말보다 세서 가슴속에 더 깊이 새겨지고 오래 남는다. 특히 가까운 관계일수록 상흔이 더 깊다.


태도에 주의하고 실수를 줄이자

말은 말하는 사람의 의도나 취지가 중요하지 않다. 듣는 사람의 해석과 느낌이 있을 뿐이다. 그야말로 듣는 사람 마음대로다. 나는 힘을 주기 위해 말했는데, 상대는 그 말에 힘이 빠지고 상처받을 수 있다. 그랬을 때 ‘네게 상처 줄 생각은 아니었어’, ‘너 잘되라고 한 얘기지, 나 좋자고 한 말이 아니잖아’, ‘너와 나 사이에 그 정도 말도 못 해?’, ‘왜 그렇게 내 진심을 몰라줘’ 이런 말은 통하지 않는다.

말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말할 때 지켜야 할 태도는 그 대상에 따라 세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자신의 말을 대하는 태도다. 자신의 말을 귀히 여기는 사람은 대충 말하지 않는다. 진실을 좇고 진심을 담아 말한다. 그럼으로써 신의를 지키고 자신을 지킨다. 그에 반해 옳은 말을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말을 대하는 태도가 나쁜 경우다.

이런 경우가 관계에 가장 안 좋다. 왜냐하면 옳고 바른 소리는 듣는 사람에게 부담을 준다. 싫어도 따라야 할 것 같고, 바르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게 만든다. 차라리 그른 소리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거나 항변이라도 할 텐데, 말이 그럴듯해 반박하기도 마땅치 않다. 그런데 마침 상대의 태도가 고까우면 ‘너는 그렇게 잘났냐’며 몰아세울 명분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관계는 파탄에 이른다.

두 번째는 듣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다. 사람들은 말을 듣는 것 같지만 태도를 보고 그 태도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친한 관계에서도 상대는 안다. 허물없이 말해도 상대가 나를 존중하는지 무시하는지. 태도가 나쁘면 축하해주고도 욕먹을 수 있고, 태도가 좋으면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아무리 칭찬을 하고 추켜세우는 말을 해도 그의 말에 상대를 무시하거나 조롱하는 태도가 배어 있으면 그 말은 상대의 자존감에 균열을 낸다. 상대를 존중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있다.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말하면 된다.

세 번째는 말하는 사람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다. 그것이 얼마나 참되고 진지한지, 자기중심적인지, 이타적인지, 돈과 사람, 일과 사랑 중에 무엇을 우선하는지… 말을 들어보면 태도가 읽힌다.

힘이 되는 말은 말로 끝나지 않는다. 힘이 되는 말을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말한 후에 챙겨야 할 것들이 있다. 먼저 말한 대로 실행해야 한다. 언행이 일치해야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약속을 지켜야 한다. 누군가와 한 약속은 반드시 이행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아가 이전에 한 말과 지금 한 말, 저기서 한 말과 여기서 한 말이 일관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이 말한 내용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말만 앞서는 사람, 말뿐인 사람, 입만 살아 있는 사람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일러스트 윤민철)
(일러스트 윤민철)


힘 빠지는 말은 피해야

중학교 2학년 학급 반장일 당시, 내 경쟁 상대였던 친구가 청소 시간에 공부하고 있었다. 청소 감독이었던 나는 “너는 왜 청소하지 않고 공부만 하니? 어서 같이 청소해”라고 했지만, 그 친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약이 오른 나는 다른 친구에게 “어떻게 걔는 얌체같이 청소를 안 할 수가 있냐?”며 뒷담화를 했지만, 되레 “내가 보기엔 네가 걔보다 더 이기적이야”라는 말을 들었다. ‘명심보감’에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라고 했던가. 나는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위선적인 본모습을 들킨 것 같았기 때문이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부끄러움에 몸서리가 쳐진다.

사람들은 무슨 말을 들을 때 힘이 빠질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을 만났을 때 아닐까. 무엇이 그리 못마땅한지 매사에 투덜거리고 구시렁대는 사람이 있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싫고.’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아 사람에게는 험담을, 일과 관련해서는 뒷말을 밥 먹듯 한다.

이렇게 남을 깎아내리고 불만을 토로하면 당장은 반응이 나쁘지 않다. 누군가를 험담하면 듣는 사람도 속 시원한 대리만족을 느끼고, 불평하는 소리를 들으면 ‘남들도 힘들게 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위안을 얻기 때문이다. 하지만 듣기 좋은 육자배기도 한두 번이다. 이런 말이 거듭되면 점점 싫증을 느끼고, 급기야 그런 말을 하는 사람과 만나기를 꺼리게 된다.

만날 때마다 ‘죽는소리’ 하는 사람도 힘을 빼는 유형이다.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드냐’, ‘힘들어 미치겠다’, ‘못살겠다’며 어리광 부리는 말을 습관처럼 되풀이한다. 이렇게 징징대는 사람을 만나면 기가 빨리는 느낌이다. 그 말에 장단을 맞춰주는 것은 보통 정신노동이 아니다.

자랑과 잘난 척도 상대를 맥 빠지게 한다. 그런 사람일수록 상대를 인정해주는 데는 인색하다. 상대의 노력이나 감정을 무시하고 폄하한다. 그뿐 아니라 늘 남과 비교하며 ‘다른 사람은 다 하는데, 너만 왜 그래’ 하면서 상대의 자신감을 깎아내린다. 이런 사람과의 만남은 가급적 피해야겠지만, 부득이 만나야 할 때는 움츠러들지 않고 맞대응한다. ‘내가 나를 인정하지 않는데 누가 인정해주겠는가’라는 마음으로 대놓고 자랑한다. ‘자뻑’한다고 비웃어도 어쩔 수 없다. 동기부여 차원인 셈이다. 그래야 자랑거리를 만들기 위해, 잘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겠는가. 이 경우 상대는 십중팔구 말꼬리를 돌리게 마련이다.

힘든 일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나는 힘들 때마다 되뇌는 말이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이전에도 했다. 반드시 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 ‘언제 끝낼까 싶은 일도 반드시 끝이 온다. 단지 시작이 어려울 뿐이다’, ‘답이 없는 문제는 없다. 죽을힘을 다해 찾아보면 반드시 답이 있다’, ‘한 번에 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여러 번 해서 안 되는 일도 없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아직 내게는 시간이 있다’….

내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던 아내도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어쩔 수 없지’, ‘그나마 다행이야’, ‘그럴 수도 있지’, ‘아니면 말고’, ‘다음에 잘하면 되지’…. 아내가 늘 긍정적이고, 매사에 자신감 넘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우리는 말로 위로받고, 말로 상처받는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말 한마디가 사람을 무너트린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과연 힘이 되는 말을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힘 빼는 말을 일삼는 사람인가.


대화의 다섯 가지 원칙

김대중 전 대통령은 누군가와 대화할 일이 있으면 다섯 가지 원칙을 지켰다고 한다.

➊ 상대를 진심으로 대한다.

➋ 어떤 경우에도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➌ 상대와 의견이 같을 때는 ‘나도 같은 의견이다’라고 말해준다.

➍ 되도록 상대의 말을 많이 들어준다.

➎ 전해줘야 할 말은 모아두었다가 대화 사이사이에 집어넣고 빠뜨리지 않는다.

이런 상대와 대화하면 힘이 난다. 이에 반해 대화하고 나면 진이 빠지는 경우도 있다. 나는 그런 경우를 대화에 독이 되는 ‘3독’이라고 말한다. 독점, 독선, 독설이다. 말을 독차지하려는 ‘독점’과 자기 말만 옳다고 생각하는 ‘독선’, 상대의 가슴을 후벼 파는 ‘독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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