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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의 여자, 이루지 못할 인연…

기사입력 2017-05-12 15:27

큰형님은 타고난 바람둥이였다. 키도 그리 크지 않으니 잘생겼다고 하기에는 미흡하지만, 얼굴은 그런대로 말끔한 편이었다. 그런 용모로 여자를 유혹하는 재주는 좋았다. 당시 큰형님이 자랑해대던 무용담이 있다. 어느 다방 마담에게 눈독을 들이면 매일 일정한 시간에 그 다방에 가서 가장 비싼 메뉴의 차를 주문하고는 말없이 마시고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일주일만 하면 마담이 다가와 말을 걸게 되어 있다는 얘기였다. 마음에 드는 여자를 찍은 후, 치밀하게 작전을 구사하고, 걸려들면 여지없이 낚아채는 재주를 큰형님은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재주 덕분인지 어느 대학 메이퀸 출신의 여자를 사귄 적도 있고, 의사 딸과 혼담이 오가기도 했고, 선보러 나가 여자에게 퇴짜를 맞았으나 결국 그 여자가 다시 매달린 적도 있다. 직장에는 오피스 와이프가 있었고 퇴근하면 또 만날 여자가 있었다.

그런 형님은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혐오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바람둥이 기질 때문에 자주 귀가시간이 늦었고 그럴 때마다 동생들은 공포 분위기 속에 좌불안석이었다. 들어오면 가만 안 두겠다며 엄포를 놓는 아버지가 무서웠다. 형님 때문에 애꿎은 동생들이 피해를 봐야 했던 것이다. 연애 대상자가 괜찮은 여자였다면 부모님은 그렇게까지 화를 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형님은 연애 상대를 가리지 않았고 괜찮은 여자와 사귀다가도 실컷 놀고 나면 차버리는 못된 버릇이 있었다. 무책임하게 보였고, 인간적으로도 비난을 받을 만했다.

그중의 한 여자인 그녀는 형님의 여자였다. 필자보다 5세 위인 큰형님과 결혼할 사이였다. 나이는 필자와 동갑이었다. 얼굴도 예쁘고 몸매가 탱탱하고 날씬해서 매력적인 여자였다. 미니스커트 아래 곧게 뻗은 두 다리가 눈이 부실 정도였다. 필자 재주로는 절대로 넘보지도 못할 미인이었다. 성격도 밝아서 우리 동생들이 모두 좋아했다. 필자가 대학 3학년을 마칠 무렵 그녀를 처음 만났다. 형님과 곧 결혼 할 사이이므로 시동생이 될 필자와 우리 동생들에게도 잘 했다. 동생들에게 원하는 것은 다 해주겠다며 제의했을 때 필자는 서슴없이 “생맥주를 코가 비뚤어질 때까지 사 달라”고 했다.

그래서 어느 일요일 점심시간에 명동의 한 생맥주집에 갔다. 필자는 1000cc, 그녀는 500cc로 시작한 술판이 밤 11시가 넘도록 이어졌다. 처음에는 안쪽 아늑한 자리에 앉았다가 번갈아가며 화장실에 자주 가게 되자 아예 화장실 바로 앞자리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맥주를 흘렸는지 바닥이 흥건했으나 개의치 않았다. 형수님 될 사람이라 형님 얘기로 시작했지만, 마침 필자는 2년간 사귀던 여자와 결별한 직후라서 할 말이 많았다. 도대체 왜 필자에게서 여자가 떠나갔는지 여자에 대해 궁금증도 많았다. 그날 필자가 1000cc 18개인 18000cc를 마셨고 그녀가 500cc를 같은 비율로 마셨으니 9000cc를 마신 셈이다. 필자 생애에서 가장 술을 많이 마신 기록으로 남아 있다. 12시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라서 맥주 집에서 영업을 끝낼 시간이라 거기서 그쳤다. 무려 11시간을 같이 마신 것이다. 나이가 같아서 통하는 얘기도 많았다. 어쨌든 그날 많은 얘기를 주고받았고 그녀에게 특별하고도 좋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 후로는 그녀와 볼 기회가 자주 있었다. 다른 동생들보다 유난히 친했다. 만날 때마다 밝은 미소와 애교 넘치는 행동이 좋았다. 필자는 그녀의 술친구이자 든든한 우방으로 우리 집 형수님이 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형님이 그녀와 헤어지고 말았다. 누가 어떤 연유로 헤어지자고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전처럼 자주 볼 수 없었다. 다시 형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다른 여자와 사귄다는데 이번 여자는 맥주를 사 달라는 필자의 제의에 콧방귀를 뀌는 것이었다. 결혼 당사자가 중요하지 시동생들 비위까지 맞춰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동생들에게는 싸늘한 여자였지만, 형님은 결국 이 여자와 결혼했다.

술친구 그녀와 다시 만난 것은 그로부터 몇 달 후였다. 어느 날 영등포에서 술을 마시다 보니 통행금지 시간이 임박했다. 주변 여관을 찾아보았으나 여관도 찾기 어려웠고 어쩌다 찾은 여관은 빈 방이 없어 난감했다. 점점 더 통행금지 시간이 가까워졌다. 그래서 얼핏 생각해낸 것이 영등포 시장 근처에 산다는 그녀였다. 혹시나 해서 전화를 했더니 그녀가 반갑게 받았다. 얼른 오라는 것이었다.

시간도 늦고 술도 만취 상태라서 그날은 그냥 잤다. 깨끗하게 깔아준 이불과 요에서 잠이 포근하게 밀려왔다.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아침식사를 차려놓았다며 불렀다. 아침상은 노릿하게 잘 구운 굴비 한 마리를 비롯해서 뻑적지근했다. 그녀와 겸상을 하면서 한마디도 안 했다. 할 수가 없었다. 이미 형님과 헤어진 마당에 필자와 이런 자리를 같이한다는 것부터가 부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것이 그녀와 마지막이었다.

이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하니 아마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그만 그녀를 잊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우선 형님의 여자였기 때문이다. 필자와 결혼한다 해도 한집안에서 형님과도 마주쳐야 하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녀가 형님과 사귄 것은 사랑도 있지만, 그 당시 우리 집안의 재력이었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형님은 가업을 이어 받을 사람이고 필자는 그렇지 못한 위치이니 처지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혼기가 차서 결혼을 서두르던 나이였고 필자는 군대 3년의 장벽, 남은 1년의 대학생활, 그리고 취직해서 자리 잡는 기간까지 고려하면 최소한 5년은 더 있어야 하는데 그녀가 기다린다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었다. 그녀와의 사랑이 뜨거웠다면 이 모든 걸림돌들을 이겨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다 쳐도 그녀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십중팔구 그녀는 알 수 없는 미소만 띤 채 아무 말 안 했을 것이다. 연애나 결혼 상대자로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필자는 그때 어렸다. 남자가 여자보다 정신연령이 뒤늦은 것이나 연애 경력으로 보나 미달이었다.

흔히 말하기를 연애 상대와 결혼 상대는 다르다고 한다. 우리의 결혼은 사랑보다는 조건이다. 조건이 좋으면 사랑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사랑 없는 결혼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 결혼한 사람은 행복할 것 같다. 그것도 서로 사랑해서 결혼하는 사람들은 부러운 존재다. 인생은 한 번뿐인데 그걸 못해보고 이렇게 흘려보내고 있는 것은 안타깝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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