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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해방 뒤의 허전함

기사입력 2017-05-08 15:52

이 경숙

가난에서 조금 벗어나자 해외여행에 눈 뜨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출장으로 해외에 나갈 기회가 있었지만, 여자는 쉽지 않았다.

대학 동창들은 모일 때마다 조금씩 정기적으로 저금하기 시작했다. 물론 돈을 모으는 것도 시간이 걸렸지만, 남편들에게 미리 허락을 받기 위한 작업(?)도 필요했다.

그 시절 비행기가 익숙하지 않던 때라 일화가 많았다.

어느 목사님이 신도들의 초청으로 미국 LA에 가게 되었는데 비행기에서 음식을 내올 때마다 모두 거절했다. 물 외엔 아무것도 마시지도 먹지도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탈진해서 거의 쓰러질 지경이 되었다. 신도들은 기내에서 음식을 드시지 않고 왜 굶으셨는지를 여쭈었다.

“ 신자들이 어려운 중에 돈을 모아서 나를 미국에까지 보내주는데 미국 음식을 먹으면 얼마나 비싸겠냐. 돈이 많이 나올까 봐 참았다”

우리도 경비를 모으는데 거의 2년 이상이 걸렸다. 동남아시아 2개국을 가는 패키지여행을 계획하고 남편들의 최종 허락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친구 6명 중 허락을 수월하게 얻은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피나는 서비스와 인내를 통해 ‘쥐 눈물’ 같은 선처를 얻어낸 것이라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한 명은 허락을 얻지 못해 싸우다 싸우다 친정으로 가버렸는데도 남편이 버텨 여행을 포기하기도 했다. 결국, 어렵게 5명이 공항에 모였다. 그런데 하나같이 남편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환송(?)을 나왔다. 함께 가는 일행도 확인하는 것 같았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지 겉으로 웃으며 속으로 우는 모습이었다.

조심하겠다, 잘 다녀오겠다. 거듭 다짐하며 수속을 마치고 우린 드디어 해방되었다. 그 해방은 남편의 잔소리, 아이들로부터 휴가, 부엌에서의 일탈을 의미했고 자유인으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 같아 달콤했다. 표정이 확 바뀌었다. 도도녀, 생기발랄하게 환호했다. “자유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5박6일이었다. 즐겁게 즐겁게····

꿈같은 이틀이 지났다. 사흘을 넘기지 못했다. 슬슬 전화통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앞에 놓인 산해진미도 아름다운 경치도 뭔가 부족해 보였다. 마음을 잡아당기는 것들이 있었다. 아이들이 보고 싶고 남편의 가슴이 그리웠다. 밥은 잘 먹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잠은 잘 자는지, 점점 물어보는 종류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펄떡거리던 동력이 떨어져 가고 계기판에 빨간 불이 깜빡거리듯 초조감이 몰려오기도 했다. 잘 있다는 것을 서로 확인해야 맑은 웃음을 웃었다.

가족이란 언제나 같은 출발점으로 돌아와 선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나 좋은 경치를 볼 때나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모이는 출발점이다.

도망치듯 떠났으나 오히려 더 강하게 회귀하듯 돌아가 더 깊은 사랑으로 더 큰 품으로 안고 싶어지는 헤어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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