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정리, 해보셨나요?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마음을 접으며 하나둘 관계가 소원해지더니 이제는 멀어져간 관계들이 꽤 된다. 옛날에는 왜 그리도 잡다한 모임이 많았던가. 다양한 모임들이 모두 나름대로 필요에 따라 결성됐겠지만, 만나는 이유가 불분명한 모임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사람 만나기 좋아하는 성격 때문에 그때는 그런 만남을 즐겼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부치는지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점차 심신 양면으로 부대끼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열정도 체력에서 나오는 것임에 틀림없다. 아마 노여움도 비슷한 때에 시작된 듯싶다. 하긴 애초에 긴밀한 인간관계로 맺어진 모임이 아니다 보니 작은 일에도 오해가 쌓이고 쉽게 심사가 뒤틀리는 것인지 모른다.
심리학자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한 사람이 관리 가능한 한도 내에서 맺을 수 있는 인간관계의 수는 약 140명 정도라고 한다. 물론 평균이 그렇다는 말이다. 만약 영업사원이라면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고 우리 같은 일반인은 절반에도 못 미칠 수 있다. 아무튼 그 정도의 인간관계를 관리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물며 별로 친밀하지 않은 관계라면 차라리 고통이다.
요즘 인간관계 관리가 어려워진 이유는 시대가 그래서인지 개인 사정들이 워낙 어지럽게 바뀌는 탓이기도 하다. 꿈에도 생각 못했던 잉꼬부부 친구가 어느 날 불쑥 이혼하고 나타나기도 하고, 남편 사업이 어려워진 사연을 모르고 있다가 말실수를 해 상대를 서운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일일이 사연을 점검할 수도 없으니 누굴 탓하랴. 그저 하 수상한 세월을 원망할밖에.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런 현상들이 자연의 섭리일 듯도 하다. 나무가 가을이 되어서도 한여름의 무성한 잎을 두르고 서 있다면 짙게 화장한 노인처럼 얼마나 어색할 것인가. 가을에는 잎을 흩날리며 자연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 순리이듯 우리도 번잡한 관계의 옷을 벗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어차피 겨울이 오면 모두 떨어질 잎인데 떨어지는 순서가 무슨 상관이랴.
자연이 마음을 가다듬고 경건하게 겨울을 맞이하듯 우리도 인간관계의 떨켜가 수분을 잃고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감수해야 한다. 가을 나무가 잎을 떨어뜨리고 자기 몸을 차가운 바람에 내맡기는 것은 상실이 아니라 고독으로 침잠하는 결단이다. 인간관계의 정리도 상실이 아닌 내적 성숙을 위한 결단이다. 불필요한 가식을 벗고 단단한 열매만 남기는 지혜로운 선택이다.
나이 들어 미니멀 라이프 모드로 접어드는 것은 자연스럽고도 현명한 결단이다. 번잡한 물건들을 버리듯, 추수를 마친 들판처럼, 우리 삶도 간결해져야 한다. 인간관계의 정리는 아픔이 아닌 성숙이고 서로 고독해지는 연습이다. 기품 있는 고독은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게 해주는 자양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