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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한 방 맞다

기사입력 2017-01-03 08:51

부모에 대한 불평의 항목들을 설정해 자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다면 단연코 1등은 부모의 잔소리가 될 것이다. 부모의 잔소리는 이미 아이들 대화에서 자주 사용하는 속어가 됐다. 그러나 부모의 잔소리는 품위의 언어다.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는 교육도 있겠지만 언어를 통해 전달되는 교육은 더 크다. 양육과 교육은 부모의 성역이다. 임무이고 책임이고 권리이기도 하다. 작은 습관에서부터 행동 지침, 규율, 도덕 등 모든 것들이 말을 통해 이루어진다. 교육적인 말은 한 번으로 이행되지 않는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녀는 부모에게 무한한 것을 바란다. 어렸을 때는 부모를 무한한 능력자로 알고 기대고 명령에 복종도 한다. 하지만 이 시기가 지나면 자의식이 생기면서 부모를 비판하기도 한다. 또한 그러면서도 부모에게 여전히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애정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어머니는 훌륭한 사람을 평가할 때 그 기준이 매우 단순했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은 자녀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다.” 필자가 아직 부모 입장이 아니었을 때는 그 기준이 쉽게 보였다. 자녀에 대한 사랑은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것이고 부모에게 사랑을 받고 자란 자녀는 당연히 그 부모를 존경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필자 아들들은 엄마에 대해 불평이 적지 않다. 그래도 “우리 엄마는 잔소리는 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칭찬인지 만족한다는 말인지 좋다는 말인지 모호하게 들린다. 사실 필자는 아이들에게 꼭 해줘야 할 교훈의 말조차도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엄마의 임무를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죄책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아이들 붙잡고 잔소리를 좀 해야 하는데 사는 일 때문에 종종 그 시간을 놓치곤 했다. 그러고선 어느 날 와르르 한꺼번에 밀린 잔소리를 쏟아내곤 했다. 그렇게라도 따끔한 한마디를 하지 않으면 이 사회에 빚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그때마다 ‘어? 엄마가 모르고 계셨던 게 아니네?’ 하는 표정이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반항하지도 않았고 어떤 부분은 인정도 했고 호기심으로 그랬다는 해명도 했다. 아이들은 필자가 자신들을 간섭하는 방식을 그리 싫어하지 않았다.

어느 날, 아이들과 함께 외출했다가 신호등에 걸린 차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신문을 파는 청년을 봤다. 필자는 아이들에게 “공부할 때 중요한 시간을 놓치면 저렇게 평생 고달픈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이들이 단박에 반박을 했다.

“엄마, 저 사람이 가슴에 무슨 꿈을 품고 있는지 어떻게 알아요? 지금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일 수 있잖아요. 엄마가 저 사람의 꿈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나요? 저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킬 위대한 예술가가 될지 과학자가 될지 모르는 일이잖아요.”

열세 살 중학생 아들에게 한 방 맞고 말았다. 맞으면서도 속으론 무척 기뻤다. 한 방 맞을 이유가 충분했다. 필자의 편견과 오만, 현재를 기본으로 내일을 예단하려는 의식이 제대로 들켜버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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