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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즐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연주회

기사입력 2016-12-27 14:31

▲혼자 즐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연주회(박혜경 동년기자)
▲혼자 즐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연주회(박혜경 동년기자)
엄마의 지식수준을 높이 평가했는지 필자의 아들이 클래식 피아노 연주회 티켓을 주었다.

뮤지컬도 아니고 연극도 아닌 연주회, 그것도 피아노 연주회라니 속으로 지루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다.

언젠가 몇 번 참석했던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졸린 눈을 억지로 부릅뜨며 음악 애호가께는 매우 죄송하지만, 무식함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던 생각이 난다.

그래도 고맙다며 받아 든 초청장 가격을 보고는 안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장에 18만원이다. 비싼 표이니 훌륭할 거라는 생각을 하는 속물근성이 있는 것 같아 멋쩍은 웃음이 난다.

그래도 누구에게 섣불리 같이 가자는 말을 못한 건 장소가 잠실 롯데콘서트 홀이라 우리 집에선 좀 멀고 시간도 밤 8시라서였다.

피아노 전공자에게는 특별하고 좋은 공연이겠지만 유명 뮤지컬도 아닌데 같이 갔다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미안할 것 같아서 필자는 그냥 혼자 가기로 마음먹었다.

조금 안심되었던 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이 그리 생소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젊어서 한때 잘난척하는 치기로 알지도 못하는 클래식을 듣겠다며 명동의 클래식 음악감상실 필하모니에 열심히 드나든 적이 있다.

그때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을 감상해 보았고 전주로 무게감 있게 펼쳐지는 음색에 매력을 느꼈었는데 그 후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 중 한 명인 마릴린 먼로의 ‘7년 만의 외출’이라는 영화를 보고 매우 반가웠고 놀랐다.

‘7년 만의 외출’에서 너무나 매혹적인 자태의 마릴린 먼로가 이 음악에 맞춰 걸어 들어오는 장면을 본 것이다.

피아노곡 자체보다 섹시한 마릴린 먼로 때문에 더 인상 깊게 느낀 연주곡이어서 조금 부끄럽다.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남겼지만, 그의 진가가 최고조로 나타난 장르는 협주곡을 포함한 피아노 음악이다.

이 곡은 당시 28세 라흐마니노프의 삶의 단면이 투영되어 있는데 작곡가로 겪었던 좌절, 그로 인한 실의와 고뇌뿐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분투의 과정이 고스란히 반영되었다고 한다.

1897년에 초연한 교향곡 1번이 악평을 들어 작곡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했고 이때 개인적인 불행도 겹쳐 우울증에 빠졌다는데, 그때 최면술사 니콜라이 달 박사의 도움으로 라흐마니노프는 전보다 더 뛰어난 새로운 협주곡을 쓰게 되어 이렇게 완성된 협주곡 2번은 달 박사에게 헌정되었다.

첫 악장은 마치 절망의 심연으로부터 서서히 떠오르는 것처럼 묵직한 피아노 독주로 시작된다. 낮고 어두운 화음과 깊숙한 베이스음이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러시아의 정서와 작곡가의 감성이 아름답게 채색된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라흐마니노프를 있게 한 가장 대중적이고 유명한 곡이다.

이후 피아노 협주곡 3번이 탄생했지만 2번보다는 덜 성공적이었다고 한다.

이번 공연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3번이 연주되었다.

연주자로는 2007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자인 ‘미로슬라브 꿀띠쉐프’와 2016년 클리블랜드 콩쿠르 우승자인 ‘니키타 문도얀츠’가 연주했다.

귀에 익은 연주가 흐를 때 피아노 선율보다도 마릴린 먼로가 떠올라서 우습긴 했지만 참으로 듣기 좋은 연주였다.

클래식에 무지해서 지루할까 봐 걱정했던 건 기우여서 다행이다.

연주회가 끝났는데도 마음은 아직도 격정적인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연주가 소용돌이치는 것 같음을 느꼈다.

아무라도 한사람 같이 올 걸 그랬다는 후회가 된다. 필자가 이렇게 느꼈으니 다른 사람도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차가운 밤바람이 뜨거워진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필자의 마음을 달랜 멋진 피아노 연주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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