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밀레니엄을 외친 게 엊그제인데 벌써 16년이 흘러 17년째를 맞이한다. 당시 4학년이던 내가 어느덧 6학년으로 진급했지만 감개무량하기는커녕 가슴 한구석이 시리다. 어디선가 읽었던 글처럼 이 나이가 되면 하루는 느리게 가는데 한 달이나 일 년은 정신없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하더니 틀린 말이 아니다. 도대체 올 일 년의 시간이 어느 구멍으로 다 새나갔단 말인가.
시간이 무자비하게 흘러 나이 먹는 속도가 빨라지니 언젠가부터 슬며시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마치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허송세월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뇌과학자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렇게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지극히 과학적인 현상이란다. 아무튼,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기 때문은 아니라고 하니 마음이 놓인다.
카이스트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의 설명을 빌면 어린 시절의 뇌는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새로운 자극이라 그 자극에 일일이 반응하느라 뇌가 시간의 흐름을 느리게 인식하는 반면, 늙은 뇌는 대부분의 사물이 감각에 익숙하다 보니 뇌를 자극할 일이 없어 뇌가 시간을 빠르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시간의 세대 차이를 느긋하게 받아들이고 괴로워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빠른 시간의 흐름이 과학적으로 보면 늙어가는 데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뇌가 사물에 익숙해져 아무 감흥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은 나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늘 호기심에 가득 차 새로운 사물을 접하려 노력하고 익숙한 것도 새롭게 보려 한다면 시간이 느리게 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시간의 흐름에 세대 차이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최근 여자와 남자 사이에도 시간의 흐름에 차이가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남편과 나는 무슨 일을 준비하거나 어디를 함께 가려고 할 때마다 서로의 시간관념이 달라 늘 작은 갈등을 느껴왔다. 처음에는 남편의 성질이 급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들어보니 다른 남편들도 대부분이 그렇다지 않은가.
이 얼마나 놀라운 발견인가. 이제야 옛날 부모님과 함께 고궁에라도 나들이할라치면 아버지가 빠른 걸음으로 한참 멀리 걸어가신 후 뒤돌아보며 서서 우리를 기다리던 비밀이 비로소 이해되는 것이다. 그렇다. 서로 시간의 흐름이 다른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난 화장하는 긴(?) 시간을 참아주는 남편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마트에서 물건을 빨리 고르고 있다. 빠르게 흐르는 그의 시간을 아껴주기 위한 나름 고육지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