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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민 이야기 (2) 청소 가는 사람들

기사입력 2016-06-16 09:39

▲미국에서j 사용했던 진공청소기. (양복희 동년기자)
▲미국에서j 사용했던 진공청소기. (양복희 동년기자)
나름대로 큰 사업을 했던 남편은 다행히도 낯선 이민생활에 잘 적응을 해 나갔다. 그러나 빈손으로 무작정 시도한 모험이었기에 헤쳐나가야 할 과정은 험난하고 어두운 터널의 연속이었다.

한 달에 통틀어 1350달러 수입으로는 집세 900달러 내고 나면 생활하기가 빠듯하다며 잡(일거리)하나를 더 해야겠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흐트러져 남은 일들 수습하기도 바쁜 덕에 어찌 방법이 없었다. 그 잘난 주급 300달러를 받으면서 그나마 교회 사람들하고 조그마한 계를 들었다고 했다.

어찌어찌 힘들게 마련해 거금 3000달러를 보내줬다. 밤에 가서 미국 사무실 청소하는 일로 1500달러를 받은 것이다. 집에서 가까운 공립학교를 들어간 작은 딸은 오후 3시면 돌아온다고 했다. 뭐라 할 말이 없었고 그저 작은 아이 걱정에 무조건 애한테만 신경 쓰라고 당부했다.

방학이 돌아오자 필자와 큰딸의 합류로 가족은 또 빛나는 하나가 되었다. 필자는 낮에는 세탁소에 일하러 간 남편을 기다리고 어스름 오후가 되면 작은딸의 귀가를 기다리느라 미국 정서가 가득 담긴 예쁜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행복한 가정주부가 되었다.

온 가족은 돌아오기가 무섭게 미리 차려놓은 따뜻한 엄마표 저녁 식사를 배불리 먹었다. 그러나 쉬어야 할 저녁 6시가 되면 가족 모두는 함께 청소를 가야 했다. 덜컹거리는 중고차가 가족을 안내했다. 거리는 총천연색 영어 간판으로 번쩍거렸다. 우리는 행복, 낭만 가득 실린 호기심들이 두리번댔다.

도착하자마자 큰딸은 각자의 업무를 지시했다. 남편은 굉음을 내는 커다란 청소기를 끌고 카펫을 이리 저리로 따라다니며 카펫 청소를 했다. 작은 아이는 가는 손목을 흔들어대며 야릇한 손놀림으로 먼지떨이 및 책상 정리를 했다. 엄마는 부엌 청소와 화장실 청소를 했다. 그리고 카이스트 장학생 큰아이는 신발을 휙 벗어 던지고 맨발의 용사가 되어 바지 양쪽 호주머니에 커다란 까만 봉지를 끼우고 다니며 사무실 곳곳에 가득 찬 휴지통을 비우는 작업을 했다. 청소하는 사람들은 흥얼거리며 각자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불평보다는 콧노래를 불러대는 아이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눈물이 핑 돌았다.

물티슈로 화장실 바닥을 닦았다.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에, 고개를 들며 닦고 또 닦고 하는 사이 아이들이 몰려왔다. 화장실 청소가 힘들다며 빨리 끝내고 와서 엄마를 도왔다. 얼마나 대견하고 든든한지 할 말이 없었지만 미안한 마음에 서둘러 함께 끝냈다. 아이들은 빨리 끝내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초스피드로 해댔다. 잘못하면 이 일도 잘리고 들어간 돈도 날아간다고 했다. 작은딸이 능숙한 솜씨가 번쩍번쩍 광을 냈다.

생전 처음 하는 청소를 깔끔하게 무사히 끝냈다. 남편과 작은 아이는 한 바퀴를 돌며 점검했다. 평상시에는 두 사람이 4시간에 걸쳐 하던 일이 2시간으로 줄어 기분이 좋다고 했다. 일찍 끝난 덕분에 아이들은 오랜만에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자고 했다. 홀가분하고 신이 난 중고차는 쌩쌩 달려갔다. 깨끗하고 시원한 에어컨 속에 금발 머리 사람들과 함께 밤참을 하는 시간이었다.

꿀맛이 따로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고생 끝에 먹는 맛이라 그랬을까. 온 가족은 입을 크게 벌려가며 입안으로 햄버거 넣었다. 입안에 넣는 햄버거 크기만큼이나 행복한 미소가 흘러 나왔다.

방학이 끝날 무렵이면 다시 한국행 채비를 차려야 했다. 돌아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으면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큰아이는 말은 안 했으나 어린 동생을 두고 가는 마음에 얼굴에 웃음이 사라졌다. 어려움도 함께하며 즐거웠던 가족이 또 헤어져야 했다. 힘없는 엄마의 마음도 발길이 무거웠다. 낯선 땅에 남겨진 가족에게 저녁 4시간이 가슴에 아려왔다. 큰 아이는 아무 말 없이 뒤돌아보지 않고 공항 출구로 향해 헤어지곤 했다. 엄마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훗날을 기약하기에 우리 가족은 끈질긴 인내와 함께 무언의 인사로 서로를 포옹하고 있었다.

▲LA국제공항에서 헤어지기 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필자, 큰딸, 작은딸. (양복희 동년기자)
▲LA국제공항에서 헤어지기 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필자, 큰딸, 작은딸. (양복희 동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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