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 패션은 예로부터 왕족이나 귀족사회, 즉 상류사회를 상징하는 점유물처럼 자리매김해왔고 어떤 의미에서 지금도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블루진은 모두가 알고 있듯이 미국 서부 개발기 광산촌 광부들의 작업복에서 시작해 카우보이(cowboy)를 상징하는 의복으로 진화하더니 한국전쟁 때 미국 해군 사병들 군복의 일부로 우리 생활권에 들어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 거리를 청바지 패션이 ‘장악’하고 말았다는 사실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정도다(사진 자료 참고). 거리는 물론 지하철, 심지어 사무실에서조차 볼 수 있는 의상의 절대 다수를 청바지류가 점령했다는 사실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거리 패션(street fashion)’이라는 표현을 실감한다.
그런데 그 패션 디자이너의 ‘청바지의 사회학적 해석’이 관심을 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고급의상 패션에는 사회 계층 간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있는 반면, 블루진 패션인 경우 그 경계선이 없다는 것이다. 사회 각층의 사람이 모두 진 패션을 즐긴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거리 패션이 상류사회까지 침투했다는 것에 사회학적 의미를 부여한다.
‘거리 패션’ 하면 ‘거리 예술(street art)’이 떠오른다.
거리 예술 또는 거리 미술 하면 장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1960~1988)의 ‘그라피티(Graffiti)’로 이어진다. 바스키아는 뉴욕 거리, 특히 전철역 내 또는 전철 차체에 낙서 수준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유명해졌다.
허락되지 않은 공적 공간에 숨어서 빠르게 낙서를 하려니 일반 화구(畵具)로는 소요 시간 때문에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 대안으로 건축·공업용 스프레이 안료(spray-paint)가 등장했는데, 목적에 잘 부합하는 화구였다.
이렇게 ‘불법’, ‘공공장소(public place)’ 그리고 ‘낙서’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예술이 1970년대에 ‘Graffiti’라 불리며 활기를 띠기 시작했는데 이제 세계적 대도시 파리, 뉴욕, 런던의 거리, 특히 시외 특정 지역을 상징하는 표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 트렌드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그런데 얼마 전 파리에 위치한 피나코텍 미술관(Pinacotheque de Paris)에서 개최한 ‘Graffiti 특별전’을 보며 거리 미술이 이제 ‘실내 공간’으로 들어왔다는 시대적 변화를 경험하며 Jean 패션의 사회적 연결고리를 보았다.
그렇다. ‘거리 패션’, ‘거리 미술’에는 이 시대의 시민 정신이 깃들어 있다. 그 공통분모를 보며 유럽 사회에서 국민(英 Folk, 獨 Volk)이라는 표현에 왜 시민(英 Citizen, 獨 Burger)이 대체해나가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 이성낙 현대미술관회 회장
독일 뮌헨의대 졸업(1966), 연세대의대 피부과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가천의과대학교 총장, 가천의과학대학교 명예총장(현), 한국의약평론가회 회장(현), 간송미술재단 이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