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순의 신비로운 나무의 생태
꽃은 본질적으로 여성을 상징하겠지만 해당화 하면 더욱 더 여성적인 맛을 담고 있다.
사실 해당은 아름다운 여자를 뜻하기도 한다. 해당화의 '해'가 바다의 뜻이고 보면 더 여성적인 맛이 강조된다. 바다 그것은 부드럽게 대로는 겁나게 굽이치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해당화는 바닷가 모래사장에 피어서, 멀리는 출렁이는 벽감의 파도와 그리고 가까이는 금싸라기처럼 부서져 반짝이는 모래알 햇볕에 어울리는 까닭에 해당화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짐작된다.
그 꽃잎이 너무 부드럽기에 털처럼 나부끼는 바닷바람을 숨쉬기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바위 사이를 스치는 바람은 감당하기 어렵다는 말인가. 해당화는 처음부터 여성스럽다.
흔히 보면 십대는 수줍고, 이십대는 발전적으로 여성답고, 삼십대는 대담하고, 사십대는 거칠고, 오십대는 막무가내로 되어 버리는 여자의 풍속이 있지만 해당화는 적이 이것을 싫어해 왔다. 그러한 변화가 와야만 하는 주변 환경 요인도 생각해 보았고 여성다움을 굳세게 지키지 못하는 그 심리의 밑바탕도 생각해 본 해당화다.
왜 그들은 꽃처럼 끝내 부드럽고 고요하고 찬란하지 못할까. 무엇 때문에 그와 같이 변하지 않고서는 안 되는 것일까.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어느 민족에 있어서나 이것은 같은 경과상황이었을까. 해당화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한평생을 꽃처럼 보내기에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파도처럼 굽이굽이 밀어 닥치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슬픔이 아닐 수 없다. 해당화처럼 지키는 방편은 없을까.
나무 이름에 [海]자가 붙는 것이 많다. 해석류는 동백나무를 뜻하고, 해동화(海桐花)는 상록수며 관목인 돈나무를 말함인데 제주도 동남쪽 섬에 흔이 난다. 바닷가를 즐기고 열매모양이 얼핏 오동나무의 그것에 닮아 있기에 바다오동이란 이름을 얻은 것으로 본다.
주로 바닷가에는 나는 해송이 있는가 하면 중국사람은 잣나무를 해송자로 말하는데 해송자란 송자(松子) 즉 잣을 뜻한다. 앞에 [海]자가 붙은 것은 외국산 또는 다른 나라에서 온 것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화목기(花木記)]에 쓰기를,[나무이름에 바다해(海)자가 들어가는 것은 모두 그것이 해외에서 온 것을 뜻하는 것이다 ] 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잣나무 종자는 중국에 종종 보내졌는데 잣나무가 바닷가에 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해(海)자가 붙은 것은 이러한 뜻에서가 아닐까.
그러나 해변노가주(海邊老柯子)는 바다와 인연이 있음이 뚜렷하다.
해당화에 가장 가까운 인연을 가진 것은 찔레이다. 그꽃의 청초함과 꽃색의 선명함과 보기의 앳됨과 색깔의 정열과 찢어질 정도의 부드러움이 모두 서로 닮아 있다. 줄기마다 가지마다 아니 꽃 대궁에 이르기까지 가시를 달고 털을 내어 무언가
경계하는 듯한 점도 어느 정도는 닮아 있다. 부드러움을 막는 데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좋다. 이처럼 가시와 털은 아름다움을 보호하는 데 쓸모가 있다. 해당화는 가시에도 털을 달고 있다. 털을 무척 좋아하는 것이 해당화다. 해당화의 꽃은 가지 끝에 달리고 붉고 향기가 강하다. 그래서 찔레나 해당화의 꽃잎을 원료로 해서 향수를 만들기도 한다.
정다산 선생이 쓰신[아언각비(雅言覺非)]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해당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즉 서부해당, 도라지해당, 수사해당, 모과해당, 추해당 그리고 황해당이 그것이다. 나무의 높이가 3.5m에 이르는 것이 있다. 창주해당은 줄기 굵기가 두 아름 되는 것이 있다.[화보]에는[서검은 집뜰에 해당을 심고 그 나무위에 원두막을 만들어 손님을 초대하여 등불을 밝히고 그리고 대작을 했다] 이 나무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정다산 선생은 이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은 매괴화를 해당으로 잘못 알고 있으며 금강산 동해 모래사장에 자라고 꽃이 피는 데 선홍색으로서 무척 아름답다. 이것이 바로 해당화라고 하지만 모두 잘못된 것이다.
매괴는 배회화(裵回花)라고도 말하며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가시가 많이 나고 꽃은 장미에 닮아 있다
[진씨화경(陳氏花鏡]에 말하기를 색은 붉은보라로서 모양이 수줍고 향기가 대단하며 건조할수록 향기는 더 강해진다. 이 향기를 부채에 먹이기도 하고 향수주머니 속에 넣기도 한다. 또 흰 설탕을 만들기도 하는데 조선 사람들은 일체 이러한 일을 모르고 있다.
이러한 정다산 선생의 기술에 대해서 생각해 볼만한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로 해당화에 대한 한자명에는 민괴(玟?), 매괴(玟?), 배회화(裵回花), 열구(悅口), 자객(刺客), 이랑초(離郞草, 매괴(??) 등이 있다.
매괴라 하는 것은 겹해당화를 말함이고 드물게 볼수 있는데 관상용으로 식재되고 있다. 정다산 선생의 해당화에 대한 설명중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해당화와는 거리가 먼 것이 있는 듯하다.
그리고 해당화가 대단히 큰 나무로 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아언각비]에 기재된 내용은 중국의 고서에서 그대로 따온 느낌도 없지 않다.
해당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는데 모두 목본이고 한편으로 첩경이라고도 부른다. 꽃색은 진한 붉음이고 꽃이 꽃대 궁위에 바짝 붙어 있어서 첩경 이란 이름을 얻었다. 꽃안에는 황금 색깔의 수술이 다발처럼 많이 나므로 여금속수 또는 수사라는 이름도 얻고 있다. 나뭇가지가 연하고 분홍색의 꽃을 다는 것을 서부해당으로 말한다.또 모과해당이라 하는 것은 굵은 열매가 달리는데 모과에 닮아 있고 먹을 수 있다.
등등으로 설명은 더 이어진다.
그런데 예전의 시제를 보면 해당화는 시로 많이 읊어지고 있다. 그중 추해당, 수사해당 등 더 구체적인 해당화의 종류까지 식별되었던 느낌이 든다.
수사해당의 아름다움을 칭찬한 것에[살랑이는 봄바람이 뜰을 지나는데 하늘의 기틀이 묘해서 선녀의 옷자락을 짜고 있다]는 것이 있다.
이때 선녀의 옷감이란 해당화의 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얼마나 고우면 선녀의 옷감으로 된단 말인가. 아니 넉넉함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선녀의 옷감으로 피어나고 있는 해당화의 꽃잎은 정녕 어울린다.
소식은 해당을 제로 해서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아름다운 빛을 담아 동쪽바람이 실처럼 살랑이고
그윽한 향기는 안개처럼 내려 뿜는데 유난히 달빛 밝구나.
오로지 두려워하는 것은 밤이 깊어져 해당화가 잠에 빠질까하는 것이. 은촛대 촛불 높게 밝혀 너의 붉은 치장을 자랑삼아 보노라.
아름다운 여인에게도 비겨지는 해당화의 꽃이다. 해당이란 이름 아래 많은 시객들은 붓을 들곤 했다. 이곳에 밤의 상황이 해당화에 어울려서 묘사되고 있는데 해당화가 특히 미모의 여인이라면 그것은 밤에 완상하는 것이 옳다는 말이다. 촉대의 불을 높이 쳐들어 분홍색 화장을 즐긴다는 것은 무언가 비유 같은 냄새가 짙다.
미인의 아름다움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 눈을 부비면서 반각반수의 모습을 보일 때 돋보인다.
가냘픈 미인의 용모는 이대에 절정에 오른다. 해당수미족(海棠睡未足)이란 바로 이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갓 깨어나서 아직 잠을 더 청하고 싶은 하늘하늘하는 해당화는 여러 가지 의미에 통할 수 있다.
해당화에 아직 잠이 모자란다. 이것은 해당화를 의인화한 것이다. 잠을 더 청하는 여인을 생각해 보면 족하다. 배회화라는 이름이 붙은 연유는 잘 모르겠으나 생각건대 아름다운 여인의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남자의 심정을 가져다 붙인 것이 아닐까 해당화의 가냘픈 아름다움을 잊지 못해 그 주변을 맴도는 어느 인간상을 연상해 본다. 배회하는 그것도 하나의 즐거움일 수 있다. 새들도 저녁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오고 이때 집이 있는 숲을 보면 그 위를 배회하면서 날아본다. 그것은 하나의 즐거움일 수 있다.
해당화가 배회화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대단히 자랑스러운 일이다.
해당화는 장미과(薔薇科 Rosaceae)에 속하는 낙엽 활엽관목으로 바닷가의 모래땅이나 산기슭에 자라고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다. 키는 1.5m에 달하며 뿌리에서 많은 줄기가 나와 큰 군집을 형성하여 자란다. 줄기에는 갈색의 커다란 가시, 가시털[刺毛], 융털 등이 많이 나 있고, 가지를 많이 친다. 잎은 7~9장의 잔잎으로 이루어진 깃털 모양이며 겹잎이다. 잔 잎은 타원형으로 톱니가 있고 주름이 많으며 두껍고 광택이 있다. 잎 뒷면에는 맥이 튀어나와 있고 선점(腺點)이 있다. 꽃은 5~8월경 1개 또는 2~3개가 붉은색으로 줄기 끝에 피는데 향기가 진하며 흰색도 있다. 꽃부리[花冠]의 지름은 6~10㎝이고 넓은 도란형의 꽃잎은 5장으로 끝이 오목하다. 수술은 매우 많다. 열매는 둥글고 붉은 황색의 수과(瘦果)로 익으며 윤기가 난다. 꽃과 열매가 적은 것을 개해당화(var. kamtschatica), 꽃잎이 많은 것을 겹해당화 또는 만첩해당화(for. plena), 가지에 가시가 거의 없고, 잔잎이 작고 좁으며 잎에 주름이 적은 것을 민해당화(var. chamissoniana)라 한다. 각종 해당화와 생열귀나무(R. davurica) 등이 속하는 장미속(薔薇屬 Rosa)의 많은 종(種)이 건위제, 강장제, 통경제로 사용되며 유방염, 당뇨병 등에도 쓴다. 꽃에 방향성 정유(예를 들면 페닐에틸알코올·벤질알코올·제라니올·벤조산)가 많아 향수의 원료가 되기도 하고, 열매의 육질부를 사용하기도 한다. 뿌리는 염료로 사용 한다.
일본사람들은 해당화를 하마나시라고 부른다. 해당화의 분포는 넓은 편이고 사할린, 만주 남쪽 지방, 우스리, 캄차카, 알래스카 등인데 일반적으로 바닷가 모래밭에 잘 난다. 중국에서는 관상용로 재배도 한다고 하며 그 맑은 향기를 숭상해서 꽃을 차에 넣어 마신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붉은 꽃잎을 따서 밥을 지을 때 넣어 색깔을 나게 했고 만주사람들은 꽃봉오리를 차에 넣었고 매괴주를 담는데 쓰기도 했다. 즉 꽃잎을 건조시켜 소주에 넣는데 술색이 분홍으로 되고 술맛이 강렬하다고 한다.
책에[강변에 해당이 많이 나고 꽃잎은 작약처럼 크고 열매는 살구에 닮았고 그 향기가 대단히 짙다]라고 있어서 과일주도 담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해당화의 열매을 잘 먹는다. 그래서인지 식물학자 윌슨은 이 나무이름을 [바닷가 토마토]라고 불렀다. 열매에 비타민 C가 많다고 한다. 해당화의 열매를 한자로는 열구(悅口)라 하는데 그 뜻은 맛이 있고 먹음직하다는 뜻일 것이다.
줄기껍질은 다갈색을 내는 염료로 사용되기도 하고 뿌리로는 더 진한 염색을 할 수 있다. 꽃잎을 짠 물로써도 염색이 되고 다른 물감과 알맞게 섞어서 여러 가지 색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해당화는 물론 일본에도 있다. 일본에 이시카와라는 시인이 있었다. 그는 많은 시를 남기고 27살의 아까운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났다. 그중 해당화의 짧은 시 한편을 이 곳에 옮겨 본다.
바다내음 가득한 북쪽 명사십리
해당화야 해당화야
올해도 피었는가.
올해도 피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