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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P에서 만난, 100세 화가

입력 2026-11-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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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탐방] 모르던 작가를 알아가는 즐거움, 웨인 티보 전

▲DDP 전시장 입구(국세실 기자)
▲DDP 전시장 입구(국세실 기자)
늦가을 전시 한 편을 만나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로 향한다.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유려한 곡선은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전시를 보러 왔다 건축을 감상하는 즐거움까지 얻는 곳이다. 이곳에서 미국 화가 웨인 티보의 국내 첫 대규모 회고전 ‘The Order of Things’가 열리고 있다.

웨인 티보(1920~2021)는 케이크와 사탕 진열대, 캘리포니아의 도시 풍경으로 널리 사랑받은 미국 화가다. 이번 전시는 1947년 자화상부터 2021년 마지막 작품까지 회화와 드로잉 105점을 선보인다. 화가의 이름이 낯설어도 괜찮다. 먹음직스러운 케이크에 이끌려 다가갔다가 색과 붓질에 눈뜨는 과정, 모르던 화가를 조금씩 알아가는 즐거움이 기다린다.

그의 그림 앞에서는 물감의 질감부터 살펴보면 좋다. 캔버스 위에 물감을 두껍게 올리는 ‘임파스토’ 기법은 케이크의 크림과 아이스크림의 촉감을 생생하게 전한다. 크림을 바르듯 덧칠한 붓질에는 화가의 손길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핀 조명을 받은 듯한 빛, 윤곽을 따라 번지는 다채로운 색, 푸른 기운을 머금은 그림자도 눈길을 붙든다. 달콤함은 소재에서만 오지 않는다. 물감의 두께와 색의 어울림에서도 피어난다.

조금 물러서면 사물의 배열이 보인다. 케이크는 어떤 간격으로 놓였는지, 나란한 사탕은 얼마나 닮고 또 다른지 살펴보자.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저서에서 제목을 빌린 이번 전시는 티보의 그림을 ‘질서’라는 관점으로 읽는다. 대칭을 이루는 디저트와 격자처럼 펼쳐진 도시에서 형태와 배치가 만드는 짜임새에 주목한다. 가지런한 화면에도 색과 붓질의 작은 차이가 있어, 시선은 닮은 모양 사이를 오가며 오래 머문다.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화가가 살아온 시간에도 마음이 간다. 티보는 101세까지 살며 생애 마지막 해까지 그림을 그렸다. 오랫동안 다뤄온 소재에서도 색과 형태를 탐구하며 작업을 이어갔다. 그의 붓질 앞에서는 나이보다 오래 바라보는 힘을 생각하게 된다. 케이크 하나에도 다시 들여다볼 색과 선과 그림자가 남아 있었을까.

티보가 오래 바라본 사물들은 우리 곁에도 있다. 모르던 화가를 알아가는 기쁨은 그렇게 전시장 밖으로 이어진다. 매일 마주하는 사물을 조금 더 자세히, 조금 더 다정하게 바라보면서.

주요 작품

▲웨인 티보, '둥글게 놓인 디저트'(국세실 기자)
▲웨인 티보, '둥글게 놓인 디저트'(국세실 기자)

‘둥글게 놓인 디저트’, 1992~1994, 캔버스에 유채

둥근 쟁반 위에 케이크와 파이, 아이스크림이 둘러앉았다. 도톰한 물감은 크림의 결을 살리고, 노랑·분홍·갈색은 저마다 다른 맛을 떠올리게 한다. 원과 삼각형·사각형으로 시선을 바꾸면 달콤한 디저트가 형태의 어울림으로 다가온다. 사이사이 남겨진 간격과 색을 머금은 그림자까지 눈여겨볼 만하다.

▲웨인 티보, '유쾌한 아이스크림 콘'(국세실 기자)
▲웨인 티보, '유쾌한 아이스크림 콘'(국세실 기자)

‘유쾌한 아이스크림 콘’, 2000, 종이에 아크릴과 구아슈

뒤집힌 콘은 고깔모자가 되고, 아이스크림은 붉은 코를 단 익살스러운 얼굴이 된다. 두 디저트는 닮았지만 모자의 기울기와 표정이 조금씩 다르다. 푸른 바탕 위로 길게 뻗은 그림자가 이들의 존재감을 더한다. 먹거리의 모양에서 인물의 표정을 발견하는 화가의 장난스러운 시선이 미소를 부른다.

▲웨인 티보, '35센트짜리 걸작들'(국세실 기자)
▲웨인 티보, '35센트짜리 걸작들'(국세실 기자)

‘35센트짜리 걸작들’, 1970/1972, 캔버스에 유채

‘걸작 35센트’라는 간판 아래 명화 이미지들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다. 서로 다른 시대와 양식의 그림들이 같은 크기의 상품으로 나란히 놓인 모습이 흥미롭다. 웨인 티보가 예술적 영감을 받았던 거장의 명작들을 가판대 엽서 형태로 유쾌하게 담아냈다. 작은 그림 속에서 아는 작품(세잔, 피카소, 모네, 드가, 마티스, 몬드리안 등)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웨인 티보, '앉아 있는 다섯 인물' (국세실 기자)
▲웨인 티보, '앉아 있는 다섯 인물' (국세실 기자)

‘앉아 있는 다섯 인물’, 1965, 캔버스에 유채

다섯 사람이 가까이 앉아 있지만 시선은 저 너머에 있다. 단정한 옷차림과 굳은 자세, 선명한 빛과 그림자가 묘한 긴장감을 만든다. 몸의 거리는 가까워도 마음까지 닿아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웨인 티보가 언급한 ‘외로운 함께 있음’이라는 표현처럼, 같은 자리에 머물면서도 각자의 생각 속에 잠긴 우리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웨인 티보, '도시전경'(국세실 기자)
▲웨인 티보, '도시전경'(국세실 기자)

‘도시 전경’, 2004, 세폭화, 캔버스에 유채

샌프란시스코의 전경을 그렸다. 세 개의 캔버스에 걸쳐 솟은 건물과 가파른 도로가 아찔한 풍경을 펼친다. 건물은 정면에서 바라보는 듯한데 도로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아, 시선이 여러 방향으로 움직인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도시가 거대한 무대처럼 느껴진다. 수직선과 사선, 밝은 면과 짙은 그림자가 어우러져 독특한 공간감을 만든다.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31 ‘웨인 티보 전’ 전시 정보

기간 ~ 2027년 2월 21일(휴관일 없음)

관람 시간 10:00~20:00

장소 서울시 중구 을지로 281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뮤지엄 전시 1관(지하 2층)

관람 요금 성인 2만 3000원(현대카드 20% 할인, 65세 이상 1만 원)

전시 해설 월~금 11시, 13시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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