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국의 ‘중장년 진짜 공부’] 마지막을 생각하면 오늘이 달라진다
지난달 친한 친구 부친상에 다녀왔다. 화장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친구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자식들을 다 불러놓고 ‘울지 마라, 억지로 살리려고도 하지 마라, 그냥 편하게 보내달라’고 말씀하셨어”라고 말했다. 슬픔으로 가득해야 할 자리였는데, 그 한마디가 남은 가족에게 오히려 길잡이가 됐다고 말하는 친구의 목소리는 뜻밖에 담담했다. 문상을 마치고 돌아오며 생각했다. 죽음 앞에서 나는 무슨 말을 남길 수 있을까.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죽음을 아예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돌아보면 죽음은 늘 내 곁에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죽음이 뭔지도 모르는 나이였다. 그런데도 어머니의 부재는 내 삶을 관통하며 영향을 미쳤다. 어머니를 대신해 외할머니와 살 때는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꿈을 자주 꿨다. 전쟁이 나서 할머니와 헤어지고, 도둑이 들어 할머니를 해치는 꿈을 하루가 멀다 하고 꿨다. 나는 그때부터 삶과 죽음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걸 몸으로 배우며 살아온 셈이다.
나는 ‘인생공부’, ‘다시, 사람을 배웁니다’ 같은 책을 통해 어른이 돼가는 과정을 글로 써왔다. 그런데 정작 삶의 마침표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살았다. 죽음이 언젠가 온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은 아니라며 미뤄두기 바빴다. 죽음보다 확실한 미래는 없는데, 우리는 유독 이 주제 앞에서만 입을 다문다. 말하지 않으면 조금이라도 늦게 올 것처럼.
죽음을 입 밖에 내지 않는 사회
우리는 죽음이라는 말 자체를 불편해한다. 부모가 먼저 죽음을 이야기하면 자식은 손사래부터 친다.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이지만, 그 한마디로 대화의 문은 닫힌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은 남은 이들에게 무거운 짐이 된다. 연명치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 당사자의 뜻을 모른 채 가족이 대신 결정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평소 의중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가족들은 그 자리에서 갈등하며 죄책감에 시달린다. 죽음을 미리 말하지 않은 대가를 살아남은 사람들이 고스란히 치르는 셈이다.
장례를 치르는 모습도 다르지 않다. 조문객을 맞고 절차를 진행하다 보면 애도할 시간도, 고인의 삶을 돌아볼 시간도 없다. 고인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마지막을 원했는지는 뒷전으로 밀린다.
정지아 작가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보면 주인공인 딸이 아버지와 대화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그럼 제사는?” / “지사는 무신 지사. 헹제라도 많아서 핑계 김에 얼굴이나 볼라먼 모릴까 니 혼잔디 지사는 무신 지사.”
아버지는 뼛속까지 유물론자였다. 부모가 여든 넘도록 장지 마련은 고사하고 영정 사진 찍어둘 생각조차 못한 불효자식이었으나 아버지의 유지가 그러했으니 따르면 될 터였다. 역시 유물론은 산뜻해서 좋다.
소설은 장례 기간 조문 온 사람들의 입을 통해 아버지를 알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이 작품이 독자에게 큰 사랑을 받은 것도 누구에게나 아버지는 있을 테고, 그런 자신의 아버지를 돌아보게 만들어서 아닐까 싶다. 나 역시 소설을 읽고 백수(白壽)를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삶을 돌아봤다.
말하지 않는다고 죽음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외면할수록 낯설고 두려운 것으로 다가올 뿐이다. 사는 법을 가르치듯 죽는 법도 가르쳐야 한다. 중환자실 앞에서 급하게 결정할 일이 아니라, 건강할 때 밥상머리에서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니어링이 보여준 마지막 품격
미국의 사상가 스콧 니어링의 삶과 죽음은 깊은 울림을 준다. 그는 백 살 되던 해, 스스로 곡기를 끊었다. 몸이 쇠약해져 더는 자신이 바라는 삶을 살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내 헬렌에게 ‘의식이 있는 상태로 조용히 떠나고 싶다’는 짧지만 명료한 당부의 말을 남겼다. 니어링은 곡기를 끊고 한 달 만에 눈을 감았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는 소란 없이 죽음을 맞았다.
평소 그는 죽음의 방식은 살아온 삶 그 자체라고 말하곤 했다. 실제로 그의 생애는 검소하고 단출했다. 시골에서 손수 흙을 일구고 자연의 리듬에 순응하며 살았다. 그런 그가 마지막 순간 음식을 내려놓고 평온하게 삶을 마감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니어링의 이야기가 주는 감동은 곡기를 끊은 극단적인 선택에 있지 않다. 자신의 마지막을 남의 손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 결정했다는 점, 그 결단이 평생의 철학과 정확히 맞닿았다는 점에 있다. 그의 방식을 누구나 따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많은 이가 이를 품격 있는 마침표로 기억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살아온 방식이 마지막 장면까지 고스란히 이어졌기 때문이다.
존엄한 죽음은 삶에 달렸다
‘좋은 죽음은 준비된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말이 있다. 수의를 미리 사두거나 유서를 써두는 준비가 아니라 어떤 가치를 품고 살아왔는지, 그 여정에 후회가 얼마나 짙게 배어 있는지에 관한 성찰이다.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 타인의 시선이나 세상의 허영에서 벗어나 온전한 나로 살아갈 힘이 생긴다는 뜻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남긴 글에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했다.
평생 타인의 인정에 매달려온 사람은 떠나는 순간까지도 뭔가를 증명하려 애쓴다. 반대로 자기 몫의 삶을 충실히 살아온 사람은 비교적 담담하다. 셰익스피어는 ‘줄리어스 시저’에서 “겁쟁이는 죽기 전에 여러 번 죽지만, 용감한 자는 단 한 번 죽음을 맞을 뿐이다”라고 썼다. 죽음을 향한 공포가 오늘의 삶을 갉아먹게 해서는 안 된다.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결정한다.
존엄한 죽음이란 결국 존엄한 삶의 연장선이다. 존엄한 마무리는 임종 순간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소 쌓아온 태도가 그대로 드러나는 자리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을 공부한다는 건 역설적으로 잘 사는 법을 공부하는 일이다. 언젠가 모든 게 끝난다는 사실을 직시할 때, 오늘 하루를 대하는 태도는 달라진다.

버려야 하는 것들
죽음을 공부하다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선명해진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우리가 움켜쥘 수 있는 것은 없다. 평생 일군 직함도, 악착같이 모아둔 재물도 모두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모든 걸 가지려 아등바등한다.
나이 들수록 삶은 보태는 공부가 아니라 비우는 공부에 가까워져야 한다. 물건을 줄이고, 욕심·체면과 미움을 덜어내야 비로소 마지막이 가벼워진다. 죽음이 묻는 ‘움켜쥐고 살았던 것들이 정말 끝까지 붙들 만큼 중요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일상의 사소한 고민과 분노는 여지없이 작아진다.
큰 시련을 겪고 돌아온 사람들이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죽음은 모든 걸 빼앗아 가는 듯하지만, 역설적으로 삶의 진짜 가치를 되돌려주기도 한다. 죽음을 앞둔 뒤에야 깨닫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 짧다.
옛 선조들이 수의를 미리 지어두고 묏자리를 정하며 임종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절차로 온전히 받아들일 때, 남겨진 사람도 슬픔을 넘어 고인을 온전히 떠나보낼 수 있다.
죽음을 앞두고 준비할 것① 의료 결정 : 회복 가능성이 없을 때 어떤 치료를 원하는지 미리 준비하고 밝혀, 가족이 죄책감에서 벗어나 쉽게 판단할 수 있도록 한다.
② 물질 정리 : 재산이나 채무를 투명하게 정리해 남은 가족이 다투지 않도록 배려한다.
③ 관계 결산 : 미뤄둔 사과를 건네고, 고마움을 표현하며, 오해를 풀어 가족의 마음의 빚을 덜어준다.
유언장, 마음을 남기는 글
유언장을 쓰라고 하면 재산이 많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지 않다. 유언장은 돈을 나누는 문서이기 전에 삶을 정리하는 글로, 가족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을 적을 수도 있고,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삶의 원칙을 남길 수도 있다.
자신의 평전을 써보는 것도 좋다. 평전은 본시 남이 써주는 글이지만, 자신을 객관화해서 스스로 써보는 것이다. 자신의 부고 기사를 써보는 것도 괜찮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부고 기사에 심혈을 기울인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던 때는 사망자 1000명의 이름과 짤막한 부고로 신문 1면을 가득 채우기도 했다. 이런 부고 기사를 각자 써보는 것이다.
혹은 자신의 묘비명을 써보는 것도 좋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는 묘비명을 남겼고, 프랑스 소설가 모파상은 ‘나는 모든 것을 갖고자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고 했다.
오늘이 생의 마지막이라면
‘오늘 이 세상을 떠난다면 무엇이 가장 아쉬울까.’ 이 질문 하나만 품고 살아도 하루가 달라진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누구에게 먼저 전화를 걸겠는가. 무엇을 용서하고 무엇을 내려놓겠는가. 이 질문 앞에서 통장 잔고나 사회적 명예를 떠올리는 사람은 없다. 오직 사랑했던 사람, 나를 사랑해준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다.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는 매일 죽은 이들의 얼굴을 마주하며 현재에 집중하라는 ‘카르페 디엠’과 죽음을 잊지 말라는 ‘메멘토 모리’를 떠올린다고 한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 눈을 맞추며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짧다”며 “가까운 이들에게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따뜻한 온기를 나누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결국 우리가 삶의 끝에서 가장 후회하는 건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사랑의 크기다.
장례식장은 한 사람의 삶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곳이라고 한다. 조문객의 숫자가 아니라, 사람들이 어떤 표정으로 고인을 기억하고 추억하는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재물은 나눌수록 줄어들지만, 좋은 기억은 나눌수록 커진다. 결국 죽음을 준비하는 일은 무엇을 얼마나 더 소유할지가 아니라, 누구와 어떤 관계로 오늘을 살아갈지 정하는 일이다.
이제는 말해야 할 때
이제 잘 죽는 법을 이야기해야 한다. 웰빙과 웰다잉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고, 잘 죽는 법을 고민할 때 오늘을 사는 태도가 달라진다.
죽음을 공론의 장에 올려놓을 때가 됐다. 가족끼리 둘러앉은 밥상머리에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어떻게 살다가 어떤 모습으로 떠나고 싶은지, 남은 이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일상의 언어로 주고받을 수 있어야 비로소 진짜 준비가 시작된다.
몇 해 전 아버지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써두셨다. 작년부터는 사진을 비롯해 당신의 소지품을 하나둘 정리하기 시작하셨다. 상조회사는 어디에 가입했는지, 가족은 어느 선까지 연락해야 하는지 등 틈날 때마다 자식들에게 일러두신다. 가만히 듣고 있는 게 쉽지는 않지만, 말씀을 새겨듣는다.
좋은 죽음은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배려이기도 하다. 덮어두지 말고, 꺼내놓고 이야기하자. 어른의 공부는 결국 여기서 완성된다. 잘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살기 위해 우리는 죽음을 배워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