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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프랑스·캐나다의 돌봄 해법

입력 2026-10-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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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돌봄] 세계의 시선은 ‘집으로!’

“가능한 한 오래 내 집에서 살고 싶다.” 여러 국가의 노인이 원하는 삶은 다르지 않다. 문제는 집에 머무는 것만으로 돌봄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가족의 손만으로 긴 노후를 버티기 어려워지자 세계는 의료와 요양, 주거와 생활 지원을 ‘살던 곳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체계’로 다시 연결하기 시작했다.

(그래픽 유영현 기자ㆍAI 생성)
(그래픽 유영현 기자ㆍAI 생성)

지난 30여 년간 세계 돌봄 정책의 방향은 달라졌다. 1990년대 이후에는 시설보다 집과 지역사회에서 돌보는 방향이 힘을 얻었고, 2015년 WHO가 건강 노화의 핵심을 일상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기능 능력’에 두면서 예방·재활·자립의 중요성이 커졌다.

코로나19 이후에는 돌봄 인력 부족과 가족의 부담까지 겹쳤다. 이제 핵심은 ‘집에서 돌볼 것인가’보다 ‘집에서 누가, 어떻게 돌봄을 계속 이어갈 것인가’에 가깝다.

한국도 2026년 3월부터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 통합지원 제도를 전국에서 시행하고 있다. 제도의 틀이 생긴 지금 필요한 것은 서비스 목록을 늘리는 것만이 아니다. 누가 연결을 책임질지, 이미 있는 시설과 인력을 어떻게 다시 배치할지, 고령자가 사는 공간을 어떤 단위로 볼지까지 설계해야 한다. 이에 일본은 동네의 연결망을 만들고, 프랑스는 요양 시설의 전문성을 집으로 넓혔다. 캐나다는 고령자가 모여 사는 아파트 자체를 돌봄의 단위로 보기 시작했다.

사례 1 늙어가는 동네에 ‘연결 규칙’을 만들다

일본 가시와시 도요시키다이 ‘가시와 모델’

도쿄올림픽이 열린 1964년, 지바현 가시와시에 103개 동, 4666가구 규모의 도요시키다이 임대주택 단지가 들어섰다. 그로부터 반세기 동안 주민과 건물이 함께 늙어갔다. 갈수록 노쇠해지는 주민들이 살던 곳에 계속 살려면 집을 고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의료와 개호(장기요양)가 끊이지 않아야 했다.

가시와시, 도쿄대학교 고령사회종합연구기구, UR도시기구는 2009년부터 이 문제를 함께 풀기 시작했다. 핵심은 새로운 서비스를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서비스를 연결할 주체와 규칙을 세우는 데 있었다. 행정은 여러 직종이 협력할 기반을 만들고, 지역 의사회는 의료진과 다른 전문직을 잇는 중심 역할을 맡았다.

재택의료가 필요한 주민이 방문진료 의사를 찾지 못하면 지역의료연계센터가 의사회와 협력해 의사를 연결하고, 이후 필요에 따라 방문 간호사와 케어 매니저, 약사, 병원 등을 추가로 연계한다. 퇴원할 때 병원과 재택의료, 개호 관계자가 진료 정보와 간호기록을 공유하는 규칙도 만들었다. 이 방식은 이후 일본의 전국적인 다직종 연계 모델로 이어졌다.

(그래픽 유영현 기자ㆍAI 생성)
(그래픽 유영현 기자ㆍAI 생성)

퇴원한 다음 누가 돌봄을 이어받나

가시와 모델은 몸이 약해진 뒤의 돌봄에만 무게를 두지 않았다. 2015년부터 교육받은 시니어 자원봉사자가 주민의 영양, 구강 기능, 신체 기능, 인지, 사회참여를 살피는 ‘프레일(노쇠) 체크’를 운영한다.

2026년 국제 학술지 ‘에이지 앤드 에이징(Age and Ageing)’에 발표한 연구는 프레일 체크 참여자 2672명과 배경 조건이 비슷한 비참여자 2672명을 10년간 비교했다. 장기요양 인정률은 참여군 16.8%, 비참여군 19.8%로 3.0%p 차이 났다. 통계 분석에서도 참여군의 장기요양 인정 위험은 비참여군의 85% 수준으로 나타났다. 10년 누적 장기요양 급여비 역시 참여군이 1인당 약 44만 3000엔(약 387만 원) 낮았다.

가시와시는 지금도 2040년을 내다보며 모델을 수정하고 있다. 돌봄 인력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병원·시설·재택 사이의 정보 공유와 협업을 어떻게 유지할지가 새로운 과제다. 15년 넘은 모델임에도 완성품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보고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에파드 페앙에서 진행 중인 고령자 신체 활동 프로그램.(Groupe ACPPA)
▲에파드 페앙에서 진행 중인 고령자 신체 활동 프로그램.(Groupe ACPPA)

사례 2 요양원의 전문성을 집으로 가져오다

프랑스 파리 ‘에파드 페앙의 지역자원센터’

파리 13구의 의료형 노인요양시설 에파드 페앙(EHPAD Pe´an)은 94명을 수용한다. 같은 주소에는 인지기능이 저하된 재가 고령자를 위한 15명 규모의 주간보호시설 빌라 뤼방도 있다. 페앙이 눈에 띄는 이유는 시설 안의 돌봄을 바깥으로 넓혔다는 데 있다.

그 역할을 맡은 건 지역자원센터(CRT)다. 프랑스가 2022년 도입한 CRT는 기존 요양시설이나 재가 서비스 기관을 지역의 자원센터로 쓰는 제도다. 역할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시설이 가진 노인의학·간호·예방 프로그램과 전문 지식을 지역 주민과 돌봄 종사자에게 개방하는 것. 다른 하나는 기존 방문 서비스만으로 생활하기 어려워 시설 입소를 검토할 정도의 60세 이상 고령자에게 재가 지원을 한 단계 강화하는 것이다.

▲고령자가 동행 지원을 받아 지역 시장에서 장을 보는 모습.(Groupe ACPPA)
▲고령자가 동행 지원을 받아 지역 시장에서 장을 보는 모습.(Groupe ACPPA)

시설 대신 집에서 받는 지원 확대

강화 지원 대상이 되면 가족이 필요한 기관을 하나씩 찾아다니는 대신 CRT가 하나의 창구가 된다. 전담 인력이 가정을 찾아 건강상태와 주거 환경을 살피고 개인별 지원 계획을 세운다. 주치의와 재가 서비스 기관, 병원 등 필요한 서비스를 한데 연결하고 이용 과정도 조정한다. 집에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주거 환경 개선과 원격 안전 지원, 퇴원 후 지원, 야간을 포함한 24시간 연락·대응체계도 갖춘다.

CRT는 시설 입소를 늦추고 재가돌봄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로, 기존 에파드를 밀어내는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에파드에 축적된 노인의학과 간호, 돌봄의 전문성을 지역에 개방해 기존 집에서 사는 고령자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프랑스 정부는 CRT만을 위해 한 곳당 연 40만 유로(약 6억 2000만 원)의 별도 재원을 지원한다. 강화된 재가 지원은 최소 30명을 상시 지원하도록 기준도 세웠다. 2024년 말 기준 175곳이 운영 중이었으며, 2028년 500곳까지 늘릴 계획이다.

현재 공개된 자료로는 입원 감소나 시설 입소 지연 같은 장기 성과는 확인하기 어렵다. 프랑스에서 지금 눈여겨볼 것은 성과 수치보다 자원의 재배치다. 새로운 시설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대신, 이미 있는 시설을 동네 전체가 활용하는 거점으로 바꾼 것이다.

사례 3 늙어가는 아파트를 돌봄 거점으로

캐나다 토론토 ‘NORC’

평범한 아파트와 콘도지만 주민들이 오래 살다 보니 고령자가 많아졌다. 캐나다에서는 이런 곳을 NORC(Naturally Occurring Retirement Community, 자연 발생적 고령자 밀집 주거)라고 부른다. 토론토에 65세 이상이 전체 주민의 30%가 넘는 공동주택 489곳이며, 약 7만 명의 고령자가 이곳에 산다.

2025년 ‘JAGS(Journal of the American Geriatrics Society)’에 실린 온타리오 인구 기반 연구에서 NORC 주민의 평균연령은 77.4세로 다른 지역사회 고령자의 74.6세보다 높았다. 재가돌봄 이용률도 15.3%로 비교 집단의 9.8%보다 높았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이미 한 건물에 모여 있는 셈이다.

▲NORC 주민들이 같은 건물 안에서 어울리며 관계와 소속감을 쌓고 있다. (UHN)
▲NORC 주민들이 같은 건물 안에서 어울리며 관계와 소속감을 쌓고 있다. (UHN)

길 위의 75만 시간을 돌봄으로

토론토의 의료기관 UHN(University Health Network) 산하 ‘NORC 혁신센터’가 주목한 것은 바로 이 ‘밀도’다. 2022~2023년 온타리오 NORC에서 개인 지원 인력(PSW)이 제공한 재가돌봄은 총 약 343만 시간에 달했다. 하지만 이 돌봄이 효율적인 동선으로 제공된 것은 아니었다. 한 건물에 두 곳 이상의 재가돌봄 기관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는 전체 NORC의 약 85%, 네 곳 이상은 약 35%에 달했다.

일부 건물에서는 7곳 이상의 기관이 각각 다른 주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한곳에 모여 있었지만, 서비스는 기관과 이용자별로 흩어져 있었던 셈이다.

이에 UHN은 이용자가 충분한 건물에는 한 곳의 책임 재가돌봄 기관을 두고, 이용자가 적은 곳은 가까운 NORC 여러 곳을 묶어 담당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이 방식을 온타리오 NORC 전체에 적용하면 추가 예산 없이 연간 75만 시간 이상의 PSW 서비스를 더 제공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약 2680만 캐나다달러(약 260억 원)에 해당한다. 새 인력을 그만큼 충원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동을 줄이고 근무 일정을 효율화해 기존 인력으로 제공할 수 있는 돌봄 시간을 늘린다는 추산이다.

아파트 공화국, 한국에 건네는 질문

NORC의 또 다른 축은 주민이다. UHN이 이번 취재에 제공한 자료에서는 주민 주도 활동, 공동체 형성, 필요한 서비스 안내, 의료·사회적 지원을 한데 묶는 것을 모델의 핵심으로 설명한다. 보내온 사진에서도 주민들이 같은 건물에서 함께 운동하고 공용공간에서 만나 관계를 이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고령자가 많이 산다는 사실을 돌봄 수요의 집중으로만 보지 않고, 서비스 전달과 이웃 관계를 함께 바꿀 수 있는 자원으로 보는 것이다.

2024년 대한민국 전체 주택의 65.3%가 아파트였다. 각 국의 사례는 아파트를 중심으로 주거가 밀집된 한국에 질문을 던진다. 살던 집에서 오래 살 수 있게 하려면, 그 집 주변의 사람과 기관, 공간을 어떻게 다시 엮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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