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형 퇴직연금 적립금 67% 여전히 원리금보장형…전문가 운용으로 수익률 높일까

은퇴자산의 핵심인 퇴직연금이 여전히 예금 중심으로 운용되면서 수익률 개선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입자의 투자 판단 부담을 줄이고 노후자산의 장기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8일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이 발표한 ‘기금형 퇴직연금 활성화 추진에 따른 고려사항’에 따르면, 2025년 말 DC형 퇴직연금 적립금 141조6000억 원 가운데 67.0%인 94조8000억 원이 원리금보장형 상품으로 운용되고 있다. 연구원은 장기적인 수익률 제고가 어려운 운용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사정은 올해 2월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금융기관 개방형과 연합형, 공공기관 개방형 등 다양한 형태의 기금을 허용해 가입자의 선택권을 확대한다는 취지다.
금융기관 개방형은 은행·증권사·보험사 등 금융회사가 별도 수탁법인을 설립해 여러 사업장의 퇴직연금을 통합 운용하는 방식이다. 연합형은 여러 기업이 공동으로 기금을 조성해 운영하고 공공기관 개방형은 현재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푸른 씨앗)을 확대하는 형태로 추진된다.
기금형 퇴직연금은 가입자가 직접 투자 상품을 선택하는 기존 계약형 퇴직연금과 달리 여러 가입자의 적립금을 하나의 기금으로 모아 전문가가 운용하는 방식이다. 개별 가입자의 투자 판단 부담을 줄이고 장기적인 수익률 제고를 목표로 한다.
문제는 가입자에게 충분한 선택권이 주어졌음에도 적극적인 투자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 연구위원은 현행 DC형 퇴직연금이 ETF 등 위험자산 투자도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적립금 대부분이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집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박 연구위원은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가입자의 금융 전문성 부족과 행태경제학적 요인을 꼽았다. 투자상품이 많아질수록 결정을 미루거나 기존 선택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결국 수익률이 낮은 상품에 자산이 머물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2022년부터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도입됐지만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2025년 말 기준 디폴트옵션으로 운용되는 자금은 전체 DC형 퇴직연금의 24.3% 수준에 그쳤다. 특히 디폴트옵션 자산 가운데 88.9%가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배분돼 있어 자산운용 전문성을 활용해 수익률을 높이겠다는 제도 도입 취지가 충분히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 연구위원은 기금형 퇴직연금이 단순히 투자 상품 선택지를 하나 더 늘리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가 가입자를 대신해 자산을 운용하는 대표 펀드 형태로 발전시켜 장기적인 수익률 제고를 이끌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연구원은 해외 주요국 사례에서도 기금형 퇴직연금이 디폴트옵션의 대표 모델로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인 마스터 트러스트(Master Trust)와 호주의 마이스퍼(Mysuper)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들 국가는 디폴트옵션 중심의 운용체계를 구축해 가입자의 투자 결정을 지원하고 장기 투자 성과를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기금형 퇴직연금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감독 체계 강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금융기관 개방형 기금은 금융회사와 가입자 간 이해 상충을 관리해야 하고, 연합형 기금은 사업주의 영향력을 통제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또 노사정이 퇴직연금 사외적립 의무화에도 합의하면서 향후 퇴직연금 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금융당국이 개별 기금뿐 아니라 퇴직연금 시장 전반의 위험을 점검하는 감독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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