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에게는 선택할 용기, 중장년에게는 ‘어른의 역할’ 질문

“오 캡틴, 마이 캡틴!”
학생들이 하나둘 책상 위로 올라섰다. 학교에서 쫓겨나 교실을 떠나는 키팅 선생을 향해 그가 알려준 호칭을 외쳤다. 엄격한 교장의 명령에도 제자들은 자리를 지켰다. 키팅은 학생들을 바라보다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명장면이 무대 위에서 다시 펼쳐진 순간이었다.
1990년 개봉해 오랜 시간 명작으로 사랑받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연극으로 관객과 만난다. 입시와 성공이라는 정해진 길 앞에 선 학생들의 고민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작품은 젊은 세대에게 자신의 삶을 선택할 용기를 건네는 동시에 중장년 관객에게는 다음 세대의 꿈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묻는다.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NOL 씨어터 대학로 우리카드홀에서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 프레스콜이 열렸다. 이날 현장에서는 개학식을 시작으로 키팅과의 첫 수업, 시의 이해, 동굴로 가는 길, 에세이 수업, 크리스와 녹스의 이야기, 엔딩까지 총 7개 장면을 시연했다.
무대 위에는 엄격한 규율과 명문대 진학을 중시하는 웰튼 아카데미의 교실이 펼쳐졌다. 학생들은 학교와 부모가 정해 놓은 기대에 자신을 맞추며 살아간다. 여기에 새로운 영어 교사 존 키팅이 부임하면서 교실에는 조금씩 변화가 시작된다.
키팅은 첫 수업부터 학생들을 교실 밖으로 불러낸다. 졸업생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언젠가 모두 죽음을 맞는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고 말한다. 즉 현재를 붙잡으라는 메시지다. 시를 공식과 점수로 평가하는 교과서의 서문을 찢게 하고, 교탁 위에 올라 익숙한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라고 가르친다.
처음에는 키팅의 수업을 낯설어하던 학생들도 차츰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동굴에 모여 시를 읽으며 학교에서 경험하지 못한 자유를 맛보고, 녹스는 크리스를 향한 마음을 표현할 용기를 얻는다. 그러나 학생들의 변화는 학교의 규율, 부모가 정해 놓은 미래와 충돌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학생들은 학교를 떠나는 키팅에게 “오 캡틴, 마이 캡틴”을 외친다. 키팅은 떠나지만 그가 심어준 자유와 용기의 정신은 학생들의 마음에 남았음을 보여준다.

차인표·오만석·연정훈, 세 명의 ‘키팅 선생’
학생들의 변화를 이끄는 존 키팅 역은 차인표·오만석·연정훈이 맡는다. 같은 대사와 장면도 배우에 따라 서로 다른 결의 키팅으로 완성된다. 세 배우는 답을 가르치기보다 학생 스스로 질문하고 삶을 선택하도록 돕는 스승의 모습을 그린다.
조광화 연출은 키팅의 가르침이 무조건적인 자유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키팅은 찰리에게 ‘너의 인생을 찾으라고 했지, 인생을 망가뜨리라고 한 것은 아니다’라고 경고한다”며 “학교가 학생들을 제한하기도 하지만 황금 같은 기회를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조 연출은 “의학과 법학도 중요하고 꿈과 낭만도 중요하다”며 “어떤 길을 택하든 자신이 선택해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는 인물이 키팅”이라고 설명했다. 엄격한 규율을 상징하는 놀란 교장과 자유로운 사고를 강조하는 키팅 가운데 어느 한쪽만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다.
오만석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좋은 교육의 의미를 설명했다. 연극영화과 진학을 반대하던 부모님 몰래 아르바이트해 연기 학원에 다녔던 그는 당시 스승이 현재 함께 출연 중인 남경읍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선생님은 답을 가르쳐주기보다 좋은 질문을 많이 던져주셨다”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고, 30여 년 만에 같은 무대에 서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좋은 질문을 통해 스스로 길을 찾도록 돕고, 길이 막혔을 때 다시 함께 답을 찾아가는 것이 좋은 교육”이라고 덧붙였다.
차인표는 교육의 역할을 ‘각자가 원하는 삶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교육이란 각자가 살고 싶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를 깨닫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인의 선택만큼 공동체 안에서 지켜야 할 기준을 배우는 일도 중요하다고 짚었다. 차인표는 “우리는 함께 모여 살아야 하므로 무엇을 지켜야 하고 어디까지 허용되는지도 깨달아야 한다”며 “그것이 참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연정훈은 작품을 관통하는 ‘카르페 디엠’을 현재에 충실한 삶으로 해석했다. 그는 “‘카르페 디엠’은 무조건 욜로(YOLO)가 되라는 뜻이 아니다”며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그 안에서 현재를 받아들이고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녀의 미래를 설계하는 부모에게 던진 질문
‘죽은 시인의 사회’는 학생들의 성장담에 머물지 않는다. 자녀를 사랑하지만 자신의 가치관과 성공의 기준을 강요하는 부모의 모습을 통해 중장년 관객에게도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극 중 놀란 교장과 닐의 아버지 페리를 연기하는 박지일은 두 인물 모두 학생과 자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기존의 가치관을 강요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녀에게 무한한 사랑을 가지고 있지만, 명예와 풍요를 보장할 수 있는 직업을 갖도록 삶을 설계한다”며 “그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주체성이 빠져 있다”고 말했다.
박지일은 배우의 길을 반대했던 아버지와의 경험도 털어놨다. 젊은 시절에는 아버지와 의절하다시피 하고 연기자의 길을 걸었지만, 자신이 60세를 넘긴 뒤에야 아버지로부터 “젊은 날 너를 이해하지 못하고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사회와 인간관계를 돌아보고, 주변 사람의 입장에서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며 “인간에 대한 존중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조광화 연출 역시 작품을 학교 안의 교사와 학생 이야기로만 한정하지 않았다. 그는 “사회에는 상사와 신입사원이 있고, 군대에는 선후배가 있으며 인생에도 먼저 길을 간 사람과 이제 세상을 배워가는 사람이 있다”며 “서로 가르침을 주고받고 영향을 미치는 관계에 관한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자녀에게 안정적인 미래를 마련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과 자녀가 자신의 삶을 선택할 권리는 어디에서 균형을 찾아야 할까. 작품은 키팅처럼 살라고 단순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다음 세대의 삶에 정답을 정해주는 어른이 될 것인지, 스스로 답을 찾도록 좋은 질문을 건네고 기다리는 어른이 될 것인지 묻는다.
작품이 말하는 ‘카르페 디엠’ 역시 미래를 외면한 채 오늘의 즐거움만 좇으라는 구호와는 거리가 멀다. 청춘에게는 타인이 정한 길에서 벗어나 자신의 현재를 선택할 용기를, 중장년에게는 오래 붙잡아온 성공의 기준과 다음 세대에 대한 기대를 돌아볼 용기를 건넨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톰 슐만의 동명 각본을 원작으로 한다. 조광화 연출과 이동준 음악감독이 창작진으로 참여했으며, 오는 9월 13일까지 NOL 씨어터 대학로 우리카드홀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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