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플랫폼에 대면 지원 더한 ‘한국형 포용보험’ 제안
초고령화, 기후위기, 플랫폼 노동 확산, 디지털 격차 등 새로운 위험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기존 보험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보장 공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소득과 자산, 디지털 활용 능력이 부족한 고령층과 저소득층은 위험에 더 크게 노출되지만 보험 가입과 보험금 청구 과정에서도 장벽을 마주하고 있다.
23일 서울 영등포구 보험연구원에서 ‘초위험 사회의 새로운 안전망: 한국형 포용보험 도입 방안과 과제’를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포용보험은 고령층과 저소득층 등 보험에서 소외된 계층이 필요한 보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개념이다. 이날 참석자들은 취약계층의 보험 접근성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경제 회복까지 지원할 수 있는 ‘한국형 포용보험’ 생태계 구축 방안을 논의했다.

이재연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 사회가 여러 위험이 맞물려 작용하는 ‘초위험사회’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특히 고령층은 돌봄 공백과 디지털 격차뿐 아니라 폭염 등 기후위험에도 취약해 여러 위험을 한꺼번에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여러 위험이 얽힐수록 기존 보험으로 대응하기도 어려워진다. 손해 규모를 예측하고 여러 가입자에게 위험을 분산해야 하는 전통적인 보험 원리가 제대로 성립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회사는 손해 통계가 부족하거나 위험을 분산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면 해당 위험의 인수를 거절하거나 보장 범위를 축소할 수 있다.
보험상품이 있어도 취약계층이 실제 보장을 받기까지는 장벽이 남아 있다. 불안정한 소득으로 보험료를 부담하기 어렵고, 상품을 이해해 가입하더라도 보험금 청구와 재가입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 연구위원은 “보험에 가입하더라도 보상을 청구해야 안전망으로 기능한다”며 취약계층의 보험 문해력과 이용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포용보험 정책이 무상가입과 보험료 경감 등 직접 지원에 치우쳤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는 “가입자의 부담은 당장 덜어주지만 공급자의 역량을 키우거나 시장생태계를 형성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지원이 끊기면 보장도 함께 멈출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포용보험을 일회성 사회공헌이 아닌 보험산업의 과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위험을 가진 사람들이 보험에서 계속 배제되면 보험산업의 기반인 ‘위험공동체’도 축소될 수 있다는 이유다. 그는 데이터와 수익성, 전달체계를 보완한 자생적 시장을 만들고 정부와 보험회사, 지역사회가 역할을 나누는 민관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손성동 RMI 보험경영연구소 부소장은 자생적인 시장을 만들기 위한 핵심으로 디지털 기술과 인적 네트워크의 결합을 꼽았다. 그는 “아무리 좋은 상품을 내놓고 좋은 디지털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믿음과 신뢰가 약하면 접근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며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것이 인적 네트워크”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디지털 기술의 효율성과 대면 채널의 신뢰를 결합한 포용보험이 확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도는 국가 디지털 인프라에 지역 여성 상담인력을 연결해 소액 생명보험 가입률을 높였다. 손 부소장은 이를 참고해 국내에서도 공공복지망과 보험설계사를 연계하고, 일정 교육을 이수한 설계사를 ‘사회적 위험 코디네이터’로 양성하자고 제안했다.
보험사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포용보험 인증제와 인센티브도 제시했다. 소액단기 보험사의 진입을 어렵게 하는 자본금과 회계, 감독 규제는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아울러 민관협력과 상품 개발, 데이터 연계 등을 전담할 비영리법인 ‘포용보험재단’을 설립해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 부소장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되풀이하는 임시방편식 땜질 처방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추락을 겨우 막고 그물 속에 머물게 하는 소극적인 안전망에서 취약계층을 다시 일상으로 튀어 오르게 하는 트램펄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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