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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의 브랜딩을 배우다

입력 2025-12-14 06:00

이정우 에디터 ‘줄 서서 보는 그림의 비밀’

북인북은 브라보 독자들께 영감이 될 만한 도서를 매달 한 권씩 선별해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해당 작가가 추천하는 책들도 함께 즐겨보세요.

고통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흐는 그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성찰하고, 예술로 바꾸었습니다. (…) 고흐라는 브랜드는 인생을 건 서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트렌드를 좇기 위한 콘셉트가 아닌, 삶 전체가 콘텐츠였던 예술가. 그래서 고흐는 세상을 떠난 후에도, 동시대 예술가들과는 차원이 다른 차별성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 ‘줄 서서 보는 그림의 비밀’, 100p

반 고흐, 프리다 칼로, 오늘날 뱅크시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초월한 예술가들의 성공 뒤에는 브랜딩 전략이 숨어 있다. 책 ‘줄 서서 보는 그림의 비밀’은 그 모든 과정을 면밀히 해부한다. 새로운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시니어에게도 자신만의 서사를 어떻게 구축할지 영감을 준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줄 서서 보는 그림의 비밀’은 미술 해설서도, 취향을 넓히는 감상 가이드도 아니다. 이 책은 렘브란트에서 뱅크시에 이르는 11명의 예술가가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브랜드로 구축했는지 탐구한다.

이정우 에디터는 브랜딩을 “자신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만들고, 그것을 세상에 각인시키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예술가로 성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그는 그들의 숨은 전략이 특히 궁금했다. 이에 수년간의 자료조사와 연구 끝에 책을 완성했다.

폴 세잔이 사과 하나에 집착한 이유, 렘브란트가 이름 철자를 바꾼 사연, 고흐가 셀프 포트레이트를 수십 장 남긴 배경, 그리고 뱅크시가 경매장에서 15억 원짜리 작품을 스스로 파쇄한 순간까지. 이 모든 사례는 예술적 표현을 넘어 전략적 선택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에디터의 필력도 돋보인다. 회화를 전공하고 ‘널 위한 문화예술’의 치프 에디터와 현대미술 웹매거진 ‘빋피(Bid Piece)’ 편집장을 거치며 쌓아온 내공이 책 전반에서 빛난다. 예술과 독자 사이의 거리를 좁혀, 복잡한 이야기도 선명하게 전달한다.

‘우리는 왜 어떤 이미지에 끌리고, 무엇을 기억하는가?’ 결국 책은 예술가를 넘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자신만의 브랜드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통찰을 전하며,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시니어에게도 유의미한 메시지를 건넨다.

▲이정우 작가의 저서와 사인
▲이정우 작가의 저서와 사인

11명의 예술가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셨나요?

가장 먼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예술가 100여 명을 리스트업했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떠올렸을 때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키워드’를 기준으로 추리니 50명, 전략적 행보가 뚜렷한 인물을 다시 선별하니 20명이 남았죠. 이후 책이라는 매체 특성상 독자 흥미를 고려해 15명으로 압축했어요. 실제 초고도 15명의 이야기로 작성했습니다. 다만 미켈란젤로처럼 브랜딩 개념이 현대와 맞지 않다고 생각되거나, 저작권 등 활용이 어려운 경우를 제외하고 최종적으로 11명을 책에 담았습니다.

예술가의 브랜딩 전략을 통해 무엇을 전하고 싶으셨나요?

우리는 흔히 예술가를 ‘예술적 혼에 몰입한 사람’으로 떠올리죠. 이 책을 보면 그들이 놀라울 만큼 치밀한 기획자이자 마케터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포지셔닝을 설계하고, 이미지를 관리하며, 때로는 외모와 라이프스타일까지 브랜드 자산으로 활용했죠.

브랜딩이 중요해진 시대지만 정작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막막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들의 사례가 방향성 설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마디로 정리해서 말하자면, ‘잘 된 데는 이유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시니어 독자는 어떤 영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저희 부모님도 은퇴 후 인생 2막을 준비하고 계세요. 어머니는 요양 관련 일을 염두에 두고 요양보호사·공인중개사 자격증까지 취득하셨지만, 이미 같은 일에 뛰어든 분이 많다는 현실을 마주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건 같은 일을 하더라도 어떤 차별점을 만들 것인가, 자신의 진정성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깨달으셨죠.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시니어 독자에게도 좋은 레퍼런스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도 책을 읽으시고 “재밌었고, 생각보다 고민해야 할 게 많다”고 하셨어요. 자기만의 브랜드를 설계해야 성공의 열쇠를 찾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신 거죠.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칼로는 자신을 ‘위대한 은폐자’라고 불렀지만, 사실 그의 예술은 가장 진실된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냅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갈등과 사랑, 그리고 자기 발견의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 이렇게 말하듯 다가옵니다.

“삶은 고통이 아니라 이야기다.”

- ‘줄 서서 보는 그림의 비밀’, 195p

시니어에게 특히 와닿을 예술가는 누구일까요?

렘브란트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흔히 ‘자화상으로 성공한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뛰어난 그림 실력뿐 아니라 철저한 전략가이기도 했습니다. 부유한 고객을 정조준하고, 작품에 스토리텔링을 더해 남들과 확실히 차별화했죠. 은퇴 후 창업이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분이 많은데, 렘브란트의 사례는 나만의 차별점을 고민하는 데 좋은 힌트가 될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고흐를 쓰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반 고흐를 원래 좋아했지만, 이번에 그의 편지를 모은 책 ‘영혼의 편지’를 읽으며 당시의 절절한 심정과 예술을 향한 집념이 깊게 와 닿았거든요.

현존하는 시니어 예술가 무라카미 다카시는 어떻게 보셨나요?

무라카미 다카시는 ‘브랜드를 구축한 예술가’의 전형입니다. 작품 활동을 넘어 비즈니스 구조와 명성 관리까지 직접 주도하는 능력이 뛰어나죠. 워커홀릭으로도 유명해 미국 스튜디오 직원이 “다카시 선생님이 바빴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입니다.

특히 나이가 들어도 창작을 향한 열정이 전혀 식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젊을 때는 시크하고 차가운 이미지였지만, 지금은 자신의 세계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하죠. 동시대 흐름에도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지드래곤, 블랙핑크 등 K-팝 아티스트와 협업한 것도 그런 태도의 연장선입니다.

회화를 전공하셨는데, 예술 해설자의 길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미대 입학 초기에 “예술가는 일반인과 다르다”는 교수님의 말에 오히려 반발심이 생겼습니다. 미술이 왜 이렇게 어렵고 폐쇄적이어야 할까 의문이 들었죠. 그때 미술을 쉽고 흥미롭게 전달하는 콘텐츠 회사에서 제안을 받았고, 8분 내외 영상으로 예술 이야기를 풀어내는 일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영상이 20만~100만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어려운 미술을 쉽게 전달하는 것’이 제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이후 독립해서 지금까지 같은 일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올해 12월에는 이탈리아 미술관을 주제로 한 책이 출간됩니다. 르네상스부터 근·현대까지 이탈리아 회화의 변화를 담은 책이에요. 내년에는 화가가 사랑한 색, 그리고 예술가의 작품이 혼자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을 다룬 책도 나올 예정입니다. 또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예술을 더 편안하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저만의 브랜딩을 확장해보고 싶습니다.

예술이 어렵게 느껴지는 시니어에게 한 말씀 한다면요?

교보문고에서 강연을 하면 참석자의 대부분이 50~60대예요. 미술을 더 깊이 알고 싶어 오시는데, 강의를 듣고 전시를 보면 “훨씬 잘 보인다”는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예술은 실용성만 보면 쓸모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쓸모는 찾는 사람이 발견할 때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헤맨 만큼 내 땅이다”라는 문장이 있어요. 시니어들이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예술을 마음껏 헤매고 탐색해보시기 바랍니다. 그 과정에서 분명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하실 거예요.

예술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19세기까지 미술은 영화·사진보다 앞선 가장 역동적인 시각예술이었지만, 지금은 여러 매체와 경쟁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럼에도 현대미술은 계속해서 스스로를 확장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이야기를 건넵니다. 때로는 난해할 수 있지만, 그만큼 발견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고전 예술가들뿐 아니라, 오늘날 실험을 이어가는 현대 예술가들의 이야기도 독자들이 더 가까이 느끼실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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