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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챙기는 건, 마음의 출발선에 서는 일”

입력 2025-09-15 07:00

[북인북] 김영희 작가의 여행 에세이

북인북은 브라보 독자들께 영감이 될 만한 도서를 매달 한 권씩 선별해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해당 작가가 추천하는 책들도 함께 즐겨보세요.

여행 중에는 곤란한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예측할 수 없는 기묘한 것들이니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 없다. 어찌 되든 해결되기 때문이다. 삐걱대기도 하고, 시간이 걸리기도 하지만 어쨌든 해결은 된다. 우리 삶도 그렇다.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문제들이 끊임없이 발생하지만, 지나놓고 보면 해결되어 있지 않은가?

- ‘짐 챙겨’, 195p

방송국 사람, 기획의 귀재,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는 자신을 둘러싼 수식어 목록에 ‘여행작가’를 추가했다. 신간 ‘짐 챙겨’에는 그가 세계를 떠돌며 수집한 장면과 감정이 차곡차곡 담겼다. 낯선 순간에 반응하는 마음, 예기치 못한 실수 앞에서 드러나는 태도, 그 속에서 비로소 진짜를 마주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이경규의 몰래카메라’,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나는 가수다’ 등 한국 방송 역사에 길이 남을 프로그램을 만든 김영희 PD. 그는 PD 생활을 하면서 중압감에 빠지고 단조로움을 느낄 때마다 여행을 돌파구로 삼았다. 현역에서 물러난 뒤 어느 정도 여유롭고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음에도, 여전히 더 많은 질문을 품고 집을 나선다. 물론 늘 녹록지 않은 상황이 펼쳐진다. 네팔의 수도승과 복채 실랑이를 벌이고, 비비 원숭이에게 호텔 방을 털리는 일도 생긴다. 그렇게 끊임없이 ‘정해진 길이 아닌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여정을 소화하며 낯선 일상과 행운의 비일상을 통과한다.

‘짐 챙겨’는 그 모든 사정이 담긴 여행 에세이이자, 삶의 방향을 바꾸는 작은 틈을 발견하는 과정의 기록이다. 스스로를 충전할 힘과 창조적 영감을 얻는 건 덤이다.

책은 우리에게 세상이 만든 길에서 벗어날 자격이 있다고, 누구나 위치한 자리에서 일어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다 끝났다 느낄 때도 어디로든 다시 출발할 수 있다고, 용기는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가방 하나 챙겨 문을 나서는 그 작은 움직임에서 시작된다고 다정하게 증명한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짐 챙겨!”

▲김영희 작가의 저서와 사인(브라보 마이 라이프)
▲김영희 작가의 저서와 사인(브라보 마이 라이프)

‘여행작가’로 본격 데뷔했네요!

2009년 아프리카에 다녀오고 ‘헉 아프리카’를, 2011년 남미 여행기를 담은 ‘소금사막’을 냈지만 이번 책을 데뷔작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제 여행작가로 먹고살 생각이거든요.(웃음) ‘짐 챙겨’가 나오고 주변에서 깜짝 놀라더라고요. “글을 이렇게 따뜻하게 쓰는 줄 몰랐다”고요. 강호동, 김구라, 박명수, 백지영, 서경석, 유재석 등 방송에서 함께했던 친구들이 추천사도 흔쾌히 써줬어요. 특히 재석이는 “도대체 어디까지 가시려고요?”라고 농담도 하더라고요.

PD로 오랜 시간 일하다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지금도 방송 기획 자문은 하고 있지만 제가 다시 제작에 뛰어들면 후배들의 기회를 뺏는 게 아닐까 고민했어요. 그래서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되고자 했죠. 그동안 여행은 정말 많이 다녔거든요. 일 때문에, 휴가 때, 시간이 생기면 무조건 해외로 나갔어요. MBC에 “아프리카를 둘러보기 전엔 안 돌아오겠다”고 휴가를 신청하거나, 출장을 마치고 며칠은 꼭 여행 일정을 넣곤 했어요. 그렇게 얻은 이야기들을 이젠 글로 풀어보고 싶었죠.

알제리, 히말라야, 아프리카까지 세계 곳곳을 다니셨어요. 오지로 자주 향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처음엔 프로그램 기획 때문이었어요.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거든요. 아프리카를 다녀온 뒤에는 ‘단비’라는 프로그램을 구상했어요. 식수난으로 고생하는 세계 각국을 다니며 우물을 파는 프로젝트였죠. 시간이 지나면서는 좀 달라지더라고요. 꼭 콘텐츠가 아니어도, 나 자신을 위해 떠나게 됐어요. 현직에 있을 땐 항상 ‘결과물을 잘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는데, 여행은 실패해도 괜찮았거든요. 그래서 더 자유로웠고, 그만큼 많은 걸 느꼈어요.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우리는 왜 높이 오르려고만 하는 것일까? 히말라야에서도 그랬다. 높이높이, 정상을 정복하기 위한 욕망은 멈추지 않는다. 3천 미터가 넘어가면 숨이 가빠오고, 5천 미터쯤 되면 한 걸음 내딛기도 힘든데, 초인적인 인내로 8천 미터까지 올라가고야 만다. 우리는 왜 정상에 오르려고 하는 것일까?

- ‘‘짐 챙겨’, 215p

직접 그린 그림들이 특히 눈에 띄어요.

배운 적은 없어요. 어릴 때부터 미술 선생님한테 ‘미대 가야 한다’는 말을 종종 듣긴 했죠. 사실 아프리카 여행 때 매일 제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던 게 습관이 된 거예요. 글은 잘 안 읽을 것 같고,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풍경이 있거든요. 이번 책 역시 어떤 감정은 글보다 그림이 더 잘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넣었어요.

‘짐 챙겨’라는 짧은 제목에 담긴 의미가 궁금해요.

여행을 가려면 짐 가방부터 챙겨야 하잖아요. 이 행위는 단순한 준비를 넘어 마음의 출발선에 서는 행위라고 여겨요. 누군가에겐 굉장한 결심이 필요할 수도 있고요. ‘짐 챙겨’라는 말이 이 책의 핵심이죠. 가방 없이 떠나는 여행은 없으니까요. 이보다 더 직관적인 제목도 없을 것 같아요.

책에서 ‘옆으로 난 길’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히말라야에서 떠올린 말이에요. 꼭대기까지 안 올라가도 된다는 것.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올라가는데, 내려오는 사람들이 제일 부럽더라고요. 이미 다녀왔을 테니까.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굳이 정상에 가야만 의미가 있나? 그건 아니죠. 옆으로 난 길도 많아요. 그게 더 잘 맞을 수도 있어요. 나만의 경로가 분명히 있다는 걸 배웠어요. 인생도 마찬가지예요. 남들이 만든 기준에 맞추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목표한 길이 막혀도, 옆길로 더 멋진 곳에 닿을 수 있어요.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여행이라는 행위가 작가님께 어떤 가치를 지녔나요?

가장 대답하기 어렵네요. ‘왜 사니?’라는 질문이랑 비슷하거든요. 그냥 살아가듯이, 그냥 떠나는 거예요.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그게 제 방식이고, 제 리듬이죠. 물론 지금은 예전처럼 무리하면서까지 극한의 여행은 덜 떠나기도 하지만, 여전히 작은 자극에도 설레요. 고급 호텔이든 시골이든, 결국은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해요.

다음 책도 준비 중이신가요?

최근에 알제리를 다녀왔어요. 그림도 많이 그리고 메모도 해뒀어요. 비자 받기도 어려운 나라라 더 특별했고, 그 여정을 꼭 한 권으로 엮어보고 싶어요. 지금은 ‘프로듀서 앤드 라이터’로 불리는 게 참 좋아요. 책을 만드는 과정이 프로그램 만들던 때랑 비슷하거든요. 소재 모으고, 구조 잡고, 글 쓰고 그림 그리는 등 제 손을 거쳐야 직성이 풀리더라고요. 다음 책도 아마 그렇게 만들어지겠죠.

인생의 중간쯤에 선 독자들에게 한마디 전한다면요?

나이 들면 편한 게 좋아져요. 그 마음 잘 알아요. 근데 가끔은 불편함을 선택해보세요. 그게 나를 살게 하거든요. 체력도 걱정되고, 귀찮기도 하죠. 근데 막상 떠나보면 ‘왜 진작 안 왔지?’ 싶어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여행은 무조건 멀리 가야 하는 게 아니에요.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한 발짝만 비켜서도 새로운 풍경이 열려요. 가다가 멈추고 싶으면 멈추고, 울고 싶으면 울고. 그러다 보면 진짜 내 마음이 보여요. 짐 챙기세요. 어디든 좋아요. 그냥 당신이 있는 곳에서부터 출발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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