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니어 웰니스 컨퍼런스… 제도∙여가∙공간∙건강 등 폭넓은 주제 다뤄

“공공 신탁 1인 가구 고령자의 삶 지켜‘
“AI는 돌봄 부담 줄이는 현실적인 대안”
“집 늙어가기 좋은 구조로 바꿔야 장수”
제1회 ‘글로벌 시니어 웰니스 컨퍼런스’가 11월 20~21일 강원 원주 일대에서 열렸다. 한국·일본·중국·싱가포르 등 4개국 전문가들이 참여해 고령사회의 정책·기술·생활 변화를 짚고 장수 시대의 웰니스 모델을 제시했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일본·싱가포르·페루 등지에서 약 200여 명이 행사장을 찾았으며, 일정은 뮤지엄산 명상관과 오크밸리 숲 치유 프로그램을 병행해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해외 전문가 강의와 함께 야외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웰니스 활동을 경험했다.
행사장을 방문한 원강수 원주시장은 축사를 통해 “원주는 뮤지엄산 명상관과 오크밸리 리조트가 연이어 우수 웰니스 관광지로 선정되면서 치유·웰니스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뮤지엄산 등 지역 관광지가 한국관광 100선에 포함되는 등 원주는 이미 시니어 친화적 관광 기반을 갖춘 도시”라며 “이번 컨퍼런스가 원주를 아시아 웰니스 허브로 도약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영란 강남대학교 시니어비즈니스학과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행사에서 개막 기조강연을 맡은 이윤환 한국노년학회장은 “초고령층 증가와 신노년의 대두, 에이지테크 확산은 한국 사회구조를 빠르게 바꾸고 있다”며 “120세 장수 유행 시대에는 질병관리 중심 보건정책을 넘어 삶 전체를 관리하는 국가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인 의료비 지출 증가, 치매 유병률 상승, 돌봄 인력난 등 국내 현황을 짚으며 “건강수명 연장을 위한 예방 중심 정책과 지역 기반 생활관리 체계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공공 신탁·에이지테크 흐름 소개
첫날 두 번째 연사로 나선 싱가포르 에스더 탄 디렉터는 국가가 운영하는 공공 신탁제도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특수욕구가 있는 고령자와 치매 환자를 위해 정부가 보증하는 비영리 신탁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5000 싱가포르 달러(한화 약 500만 원)만 있어도 신탁을 개설할 수 있고, 공공 신탁계좌의 원금은 정부가 보장한다”고 말했다. 이어 “가족이 없거나 자산 규모가 작은 고령층도 생애 말기 돌봄과 재정 관리를 계획할 수 있어 경제적·사회적 고립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진행 중인 ‘고령자 사전설계 서비스’ 구상도 소개하며 “인지기능 저하 이전에 돌봄 계획과 자산 정리를 돕는 체계를 마련하려 했으나 정부 측과의 조율로 일단 보류됐다”고 말했다. 단, “한국도 고령층 고독사 증가와 판단능력 상실 이후의 재산 피해 문제를 고려한다면, 유사한 공공 신탁 모델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일본의 마키코 카와베 솜포 디지털랩 시니어 연구원은 일본의 장기요양제도와 에이지테크 도입 흐름을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일본은 2000년 개호보험제도 도입 이후 20여 년간 급속한 고령화로 요양급여 비용이 약 3배 증가했다”며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술기반의 ‘뉴 케어 모델’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센서 기반 낙상 모니터링, 커뮤니케이션 로봇, AI 기반 생활 데이터 분석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일본 정부가 수행 중인 실증사업을 언급하며 “새 기술을 도입하면 교육비·초기비용이 커 사업자가 쉽게 시도하기 어렵다. 그래서 정부가 비용을 지원하며 인력 배치기준 완화 가능성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CES에서 주목받은 뇌 활동 실시간 시각화 기기, 청각약자를 위한 실시간 자막안경 등을 예로 들며 “기술의 목표는 결국 ‘가능한 오래, 가능한 집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거환경·생활습관 속 웰니스의 실천
둘째 날 행사 축사를 위해 참석한 허영구 네오임플란트 대표는 “네오임플란트는 한국에서 개발한 기술로 전 세계 80개국에 수출하는 기업”이라고 소개하며 “치아 건강은 노년기의 삶의 질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는 “원주는 시니어 웰니스 산업의 최적지”라며, “임플란트 기술과 원주 의료 인프라를 결합해 고령자 친화 치료 모델을 만들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조강연은 ‘늙어도 괜찮아 디자인연구소’의 이경미 소장이 맡았다. 그는 “노년의 공간은 점점 좁아지지만, 그 좁아진 공간이야말로 마지막까지 안전하고 존엄하게 머무는 장소가 된다”고 말하며 주거환경 속 웰니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강연 중 자신의 부모가 해외여행에서 국내 여행으로, 다시 동네 산책으로 이동반경이 좁아지는 과정을 소개하며 “노년의 웰니스는 결국 ‘일상 공간을 어떻게 다시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또 “노인은 65세라는 기준으로 단순히 구분할 수 없다. 지금의 65세는 너무 젊고,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찾는 세대”라고 했다. 그는 집 안의 문턱 제거, 안전바 설치, 슬라이딩 도어 활용 등 현실적인 개조 방안을 제시하며 “안전장치라고 해서 노인용 제품만 있는 것이 아니다. 디자인과 안전을 동시에 갖춘 제품이 많다”며 “집을 ‘늙어가기 좋은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 건강장수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마을 환경도 언급하며 “동네마다 50~100m 간격의 의자, 접근 가능한 공중화장실, 분명한 랜드마크 등은 고령자의 이동권을 지키는 최소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에서 활동 중인 제인 장 트루 노스 컨설팅 대표는 보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생활 방식 개입을 통한 회복 탄력성’을 이야기했다. 그는 2013년부터 지속해온 마라톤·울트라마라톤 경험을 소개하며 “운동은 몸과 마음을 동시에 구한다. 특히 폐활량·심장 기능·근력은 나이가 들수록 의식적인 훈련 없이는 급격히 떨어진다”고 강조했다. 운동은 우울감, 스트레스, 폐 기능 저하 등 많은 문제를 극복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그는 “70세에도 규칙적인 운동을 하면 심폐지수가 5% 이상 개선될 수 있다”며 “전 세계가 120세 시대를 논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충분히 움직이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느리게 걷는 산책은 운동이 아니다. 고령자도 빠르게 걷고, 적정 수준의 심박 상승을 동반한 강도 높은 운동을 시도해야 한다”며 “운동만큼 후회 없는 약은 없다”고 말했다.

지역 기반 장수 전략 밝혀
행사 후반부, 주최사인 써드에이지의 이보람 대표는 강연을 통해 한국 시니어 삶의 현실, 글로벌 장수 트렌드, ‘바이오해킹’ 기반 건강관리, 그리고 지역 중심 웰니스 모델을 소개했다. 그는 먼저 ‘퍼스트·세컨드·서드·포스 에이지’ 개념을 설명하며 “장수 시대의 핵심은 서드에이지(중년 이후 활력 구간)를 얼마나 길고 건강하게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서드에이지는 건강, 먹거리, 일거리, 콘텐츠를 잇는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해왔다”며 실험적 프로젝트 사례들을 소개했다. “평생 협력이 가능한 일자리 연결, 50+ 창업 프로그램, 지역 탐방 프로젝트, 중년·노년 콘텐츠 기획 등을 수행해 왔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번 컨퍼런스를 개최지로 원주를 선택한 이유도 설명했다. “최근 50~60대 은퇴자들이 양평 대신 원주로 이동하고 있다”며 “병원이 가깝고, 산과 물이 조화롭고, 아파트와 일자리가 있는 ‘살기 좋은 구조’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주가 시니어 웰니스의 새로운 거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과 미국에서 확산되는 바이오해킹 트렌드도 소개했다.
또한 그는 “한국 시니어들은 표정이 굳어 있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강하지만, 원주의 시니어들은 표정이 밝고 생활밀착형 운동과 활동이 활발하다”며 “도시별 시니어 웰니스 격차를 줄이기 위한 ‘글로컬 웰니스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보람 대표는 “이번 컨퍼런스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앞으로 여러 차례 나누어 이어갈 장기 프로젝트”라고 소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