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대가 함께 궁을 즐기는 문화축제의 장

서울 4대궁과 종묘에서 ‘2025 가을 궁중문화축전’이 8일 수요일부터 12일 일요일까지 열렸다. 올해는 전 연령층이 함께 즐기는 축제를 표방하면서, 60세 이상을 위한 전통 화훼 체험 ‘동궐 장원서’와 창경궁을 배경으로 한 체험형 재현 ‘시간여행’ 등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중에서 창경궁 ‘시간여행’은 명정문·명정전·경춘전·통명전의 주요 전각을 무대로 백성을 위해 곡식을 나누어준 영조, 세 명의 대비를 위해 창경궁을 완공하고 연회를 베푸는 성종, 정조의 태몽을 꾸고 해몽하는 혜경궁 홍 씨, 삼간택에 임하는 어린 정순왕후 등 조선시대 왕실의 일상이 극 형태로 펼쳐졌다.
시간여행은 관람객도 ‘배역’을 맡아 참여하는 인터랙티브 형식이 특징이다. 사극 세트장보다 더 현실적인 이곳에서는 궁궐 전체가 공연장이 되고, 방문객은 단순한 관람객이 아닌 ‘역사 속 인물’이 된다. 단순 관람을 넘어 배우와 상호작용하며 장면을 완성한다는 점에서 몰입감이 크다.
궁중문화축전팀 진미경 팀장은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 몰입을 더하는 체험을 모두 융합한 것이 궁중문화축전의 시그니처”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 한국을 배경으로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의 인기까지 더해져 외국인 뿐 아니라 젊은 세대 사이에서 궁을 방문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이번 가을 궁중문화축전은 궁을 전 세대가 즐길 수 있도록 세대 맞춤형 프로그램을 기획했다”라고 밝혔다.
또 “사전 예약제인 동궐 장원서 프로그램에 자녀가 부모를 대신해 신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었으며, 온라인이 어려운 관람객을 위해 전화 예약을 병행했다”며, “현장 이벤트(전통 꽃다발 포토존·토종 씨앗 나눔 등)로 세대 동행을 유도했다. 실제로 자녀가 부모를 모시고 교육장에 보내고 본인은 외부 프로그램을 즐기는 ‘3세대 동행’ 풍경이 다수 포착됐다”고 현장의 반응을 전했다.

‘동궐 장원서’는 조선시대 궁궐의 원예 기관 이름에서 착안한 시니어 전용 전통 화훼 체험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궁중문화축전에서 시니어(60세 이상)만을 대상으로 하는 최초의 시도다. 한국 전통의 꽃꽂이 미학과 궁원사(장원서) 스토리를 교육형으로 풀어 시니어 만족도가 높다. 대온실의 교육장에 모인 참가자들은 조선시대 궁녀와 별제로 분한 배우들의 안내에 따라 제철 과일로 만든 다과를 맛보고, 한국 꽃꽂이를 통해 반려화분을 만들어 가져간다.

권화사(플로리스트)인 오흥경 강사는 “장수를 뜻하는 소나무와 절개를 뜻하는 국화, 죽음을 의미하지만 우리의 뿌리를 생각해볼 수 있는 고목 등을 소재로 정했다. 참여하는 분 가운데 꽃꽂이에 일가견이 있는 분도 있고 난생 처음 해본다는 분도 있는데, 다른 곳도 아닌 궁에서 ‘한국 전통 꽃꽂이’라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해본다는 점에서 매우 만족하신다”고 전했다.
꽃을 꽂는 행위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는 방식임을 설명하는 강사의 말에, 한 참가자는 “자연과 대화하는 느낌”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이번 궁중문화축전은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덕수궁 준명당 ‘어린이 학교’를 준비했다. 준명당은 고종황제가 특히 아끼던 막내딸 덕혜옹주를 위해 교육장소로 활용했던 곳이다. 당시 실제 덕혜옹주가 받았던 교육자료에 근거해 참여한 어린이들이 한복을 입고 식물채집에 나서는 프로그램이다. 아역 배우인 덕혜옹주와 함께 공부하는 콘셉트로 꾸며졌으며, 프로그램 중간에 고종황제를 마주치는 상황도 연출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은 종묘의 ‘건축 탐험대’를 운영했다. 주어진 미션을 해결하기 위해 종묘 곳곳을 탐색하는 형태의 프로그램이다. 외국인을 대상으로는 창덕궁 ‘아침 궁을 깨우다’를 준비했다. 이밖에 4대 궁과 종묘에서 인문학 콘서트, 길놀이, 고궁음악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궁을 찾은 이들의 가을 추억 한 장면을 한층 깊은 색으로 물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