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메뉴

일본의 색다른 지방소멸 해법, 골칫덩이 대나무를 효자로

기사입력 2024-11-27 16:32

[해피 시니어 라이프] 지역사회 장인들과 협력한 ‘에티컬뱀부’

다자와 에쓰코(田澤恵津子) 씨는 대기업 입사 후 6번의 이직을 거친 끝에 2007년 ‘에티컬뱀부’를 창업했다. 환경 친화적 자원인 대나무를 활용해 지속 가능한 제품을 개발한다. 지역사회의 고령 장인들과 협력 모델을 만들어 독특한 사업 방식을 구축한 것이 특징이다. 에티컬뱀부는 환경을 중시하며 지역 공동체와 상생하는 모범 사례로 자리 잡고 있다.


▲에티컬뱀부의 젊은 직원들과 할아버지 장인(에티컬뱀부)
▲에티컬뱀부의 젊은 직원들과 할아버지 장인(에티컬뱀부)


대나무와의 운명적 만남

에티컬뱀부가 시작된 야마구치현(山口県)은 고령화 비율이 35.3%로, 현재 일본에서 고령화 비율이 높은 현 중 하나다. 연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여름날, 도쿄에서 신칸센을 타고 4시간 반을 달려 신야마구치역(新山口駅)에 내렸다. 이곳에서 승용차로 30분을 더 달리면 우베시(宇部市)에 도착한다. 띄엄띄엄 보이는 민가를 지나 매미 울음소리가 가득하고 초록 내음이 퍼지는 숲속을 한참 달리다 보니 마치 숲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무성한 대나무 숲을 지나면 폐교된 중학교에 만들어진 대나무 종합 학습 시설 ‘테이크 라보(TAKE LABO)’가 나온다. 대나무 제품 박물관과 공방 등이 있는 곳으로, 에티컬뱀부가 운영 위탁을 맡고 있다. 이곳에서 창업자 다자와 에쓰코(田澤恵津子)씨를 만났다.

다자와 씨는 어린 시절부터 창업을 꿈꿨다. 중증 장애가 있는 오빠를 돌보기 위해 언제든 달려갈 수 있도록 창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자와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형 백화점 안내 데스크 직원으로 입사했지만, 더 큰 꿈을 품고 이후 6번이나 이직했다. 이 과정에서 상품 기획, 프로모션, 마케팅 등을 담당했고, 30대 초반에 마케팅 회사를 창업했다.

그런데 어느 날 과거 직장 거래처였던 도쿄전력(東京電力) 담당자가 ‘벌목한 대량의 대나무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며 상담을 요청했다. 그렇게 다자와 씨와 대나무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되었다.

과거 대나무는 생활용품으로 사용됐으며, 죽순은 요리 재료로 활용되는 등 무척 친숙한 자원이었다. 하지만 플라스틱의 등장으로 대체품이 많아지고, 해외에서 값싼 제품이 수입되면서 대나무는 활용도를 잃었고 숲이 방치되기 시작했다. 대나무는 키가 커서 다른 활엽수의 성장을 방해하고, 뿌리가 얕기 때문에 경사면에 방치되면 산사태 위험도 커진다. 게다가 성장도 빨라 송전선에 얽히기라도 하면 정전의 원인이 된다. 도쿄전력은 방치된 대나무 숲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위)대나무로 만든 차양막, (아래)대나무로 만든 악기를 시연하는 다자와 사장(사진 신미화 교수)
▲(위)대나무로 만든 차양막, (아래)대나무로 만든 악기를 시연하는 다자와 사장(사진 신미화 교수)


대나무 섬유로 첫발을 내딛다

“마케팅에서는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나무는 빠르게 성장하고 관리할 필요가 없으며, 항균 및 탈취 효과가 뛰어난 천연자원이에요. 계획적으로 활용하면 지속 가능한 자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자와 씨가 대나무를 활용해 처음 만든 제품은 대나무 섬유로 제작한 타월이다. 항균성과 흡수성이 뛰어나 출시 후 소비자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어느 날 다자와 씨는 아이를 키우는 고객으로부터 ‘대나무 타월이 너무 좋은데, 아이가 입에 넣어 빨고 있어요. 안심하고 세탁할 수 있는 화학물질이 들어가지 않은 세제가 있었으면 좋겠어요’라는 연락을 받았다. 당시 시중에서 판매하는 대나무를 활용한 세제는 모두 야마구치현 호후시(防府市)에 있는 이토녹지건설(伊藤緑地建設)에서 만든 ‘대나무 미네랄’이라는 원액을 사용하고 있었다. 70~80대 할아버지들이 건설업을 하면서 매주 토요일에 모여 대나무 미네랄 만드는 일을 20년 동안 하고 있었다. 숯가마에서 대나무 숯과 숯재를 만들어 샘물과 함께 탱크에 넣어 두 달 반 동안 대나무 미네랄을 추출한다. 대나무 숯과 숯재에 함유된 알칼리 성분은 피지 등 지방산에 반응해 비누와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자문기관에 성분 분석을 의뢰한 결과 세정 효과도 제대로 입증됐다.

“대나무 타월을 들고 할아버지들을 만나러 갔어요. 계면활성제 없이 순수하게 대나무 숯, 대나무 숯재, 샘물만으로 만든 세제는 지금까지 시장에 없던 궁극적인 친환경 제품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처음에는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으로 생산해달라고 부탁하려고 했죠. 그런데 할아버지들이 ‘이제 우리는 나이도 많고 돈도 안 돼 내년에 그만둘 거라 불가능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더니 ‘당신이 만들면 되겠네!’라고 하셨어요.”


▲테이크 라보에 전시된 작품(에티컬뱀부)
▲테이크 라보에 전시된 작품(에티컬뱀부)


고민 끝에 다자와 씨는 2015년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대나무 미네랄 추출 사업을 승계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나무 미네랄 생산은 기존대로 할아버지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사업 승계를 이유로 일자리를 뺏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할아버지들의 사투리도 잘 알아듣지 못했어요. 앞으로의 비즈니스 방향을 설명하면 할아버지들은 ‘컴퓨터보다 내 직감이 더 정확해’라고 하거나 ‘인터넷이 뭔지 몰라! 브랜딩, 마케팅같이 뜻도 모르는 단어는 쓰지 마!’라고 했어요. 이분들과의 거리를 좁히려고 야마구치현의 향토사나 전기를 읽고 지역 주민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게 무엇인지 공부했죠.”

현재는 할아버지들의 기술을 이어받기 위해 에티컬뱀부의 젊은 사원들이 함께 일한다. 숯의 모양과 계절에 따라 알맞게 혼합해 숯가마에 굽는 기술을 데이터베이스화해 시스템으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렇게 만든 제품에는 계면활성제를 사용하지 않고도 얼룩을 깨끗하게 지운다는 의미에서 ‘뱀부클리어’라는 이름을 붙였다.


▲농부에게 세참을 배달할 떄 쓰는 대나무 상자(에티컬뱀부)
▲농부에게 세참을 배달할 떄 쓰는 대나무 상자(에티컬뱀부)


마실 수 있는 세제로 ‘입소문’

사업을 정식 승계한 지 1년 뒤 다자와 씨는 소규모 제조공장을 건설했고, 약 2년 동안 제조 라인을 정비했다. 그렇게 2018년 정식 판매를 시작한 뱀부클리어는 1L에 1650엔으로 일반 합성 세제보다 약 세 배 비싸다. 희석하면 소량으로도 세탁할 수 있어 회당 세탁 비용은 일반 세제의 절반 수준이고 입욕제로도 사용할 수 있어 활용도가 높지만, 판매 가격이 높은 탓에 다른 제품과 경쟁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이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는 어떤 이유로 관심을 갖게 된 걸까?

“처음에는 알레르기가 있거나 환경에 관심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피부과, 산부인과, 미용실, 약국 등을 찾아다니며 영업했죠. 그런데 2018년 히로시마에 내린 집중 호우로 터진 수도관 내부에 섬유유연제 찌꺼기가 잔뜩 묻어 있는 걸 보고 주부들 사이에 저희 제품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어요.”

2020년에는 일본의 유명 TV 프로그램에 ‘마실 수 있는 세제’로 뱀부클리어가 소개되면서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회사는 빠르게 성장했고, 친환경적이고 혁신적인 제품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브랜드 신뢰도는 더욱 높아졌다.

“뱀부클리어는 일본 사케처럼 정성 들여 제조해요. 그 결과 2년이 지나도 세정력이 약해지지 않는 제품을 만들게 됐죠. 환경에 피해 주지 않는 안전성을 우선시 하기 때문에 수질 검사와 토양 검사도 매달 정기적으로 하고 있어요.”


▲숯가마에 대나무를 넣는 모습(에티컬뱀부)
▲숯가마에 대나무를 넣는 모습(에티컬뱀부)


환경·지역·전통을 지키며

다자와 씨는 단순히 제품을 팔고 수익을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기업 경영을 추구한다. 그의 목표는 ‘지역사회와 환경에 기여하는 100년 기업’이 되는 것이다.

“인구가 감소하는 지방에서 할아버지들과 함께 에티컬(윤리적인) 제품을 만든다고 하니 각종 미디어에서 관심을 가져주었어요. 할아버지들은 자신이 만든 제품이 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잘 모르시는데, 잡지나 TV에 에티컬뱀부가 소개되면 굉장히 기뻐하시죠. 그래서 저는 바쁜 와중에도 최대한 취재와 강연 요청에 협력하려고 해요.”

대나무의 가능성을 재발견한 기획력과 탄탄한 제품으로 에티컬뱀부는 2023년 환경부 주최 굿라이프어워드에서 환경부 장관상을 받았다. 에티컬뱀부의 연 매출은 1억 6000만 엔(약 14억 5000만 원)이다. 다자와 씨는 매출 증가보다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제품을 만들면서 마을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천연 세제 뱀부클리어(에티컬뱀부)
▲천연 세제 뱀부클리어(에티컬뱀부)


“일할 곳이 있으면 마을은 쇠퇴하지 않아요. 올해는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쓰레기 배출 없는 공장을 완성했어요. 공장 주변에 자연 자원이 풍부하고 근처 강에는 잉어, 은어, 송사리 등이 서식합니다.”

에티컬뱀부는 이제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다. 대만, 싱가포르, 페루 등 다양한 나라에서 친환경 제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올해 가을부터는 뉴욕과 스웨덴에서도 판매를 시작한다. 다자와 씨는 한국의 자연 재료에 대해서도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한국의 죽염은 정말 대단해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전통 방식이 그대로 살아 있다는 게 놀라워요. 언젠가 그 과정을 직접 보고 싶어요. 또 저희가 운영하는 테이크 라보에도 죽염을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다자와 씨의 경영 철학은 ‘지속 가능성’에 핵심이 있다. 환경보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와의 협력, 전통 기술 계승, 글로벌 시장에서의 책임 있는 경영을 포함한다. 그의 말에는 대나무처럼 곧은 신념이 담겨 있었다. 특히 다자와 씨가 추구하는 에티컬 제품 생산 방식은 단순한 상품 생산을 넘어 환경을 보호하고 지역사회 가치를 존 중하는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다. 제품 하나하나에 자연을 향한 존경과 사람을 위한 배려를 담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대나무를 활용한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 환경과 사람 모두에게 이로운 사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더 궁금해요0

관련기사

저작권자 ⓒ 브라보마이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댓글

0 / 300

브라보 인기기사

  • [브라보가 만난 욜드족] “삶이 곧 힙합” 춤주머니 아저씨
  • [브라보가 만난 욜드족] “땀으로 지병 없애고, 복근 남겼죠”
  • 패션부터 여행까지… 소비시장 주도하는 욜드족
  • [브라보가 만난 욜드족] “커피 내리는 현장 남고자 승진도 마다했죠”

브라보 추천기사

브라보 테마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