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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환자도 요리하고, 서빙… 따뜻한 日 카페 ‘후쿠로우’

기사입력 2024-06-26 08:28

[해피 시니어 라이프] 치매 환자도 사회 일원으로 활약

황사가 유달리 심해 연분홍 벚꽃이 뿌옇게 흩날리는 봄날, 도쿄에서 특급열차를 타고 세 시간을 달려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메이지단치(福島県いわき市 明治寸地)를 찾아갔다. 치매 환자들이 일하는 곳이 있다고 해서다. 조용한 주택가에 단독주택을 개조해 앙증맞게 자리 잡은 카페였다.


▲하세가와 마사에 후쿠로우 대표(신미화 교수)
▲하세가와 마사에 후쿠로우 대표(신미화 교수)


인지증(認知症, 치매)은 일본에서도 ‘2025년 문제’라고 불릴 정도로 심각한 사회적 과제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치매 환자 수는 2012년 기준 426만 명에서 2025년에는 약 750만 명에 도달, 65세 이상 인구 5명 중 1명이 해당될 것으로 예상된다. 후생노동성은 환자의 의사를 존중해 가능한 한 살고 있던 익숙한 지역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목표로 각종 시책을 발표하고 있다.

소중한 기억을 조금씩 잃어가고, 단순 계산을 할 수 없게 되고, 일상을 보낼 수 없게 된다. 망상을 하거나 배회하거나 폭언을 반복하는 등 인격조차 바뀌어버린다. 이윽고 가족의 얼굴도 잊어버리고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며, 의식이 몽롱한 채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다. 이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치매에 대한 이미지로,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가능하면 평생 치매와 무관하게 인생이 끝날 때까지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며 당당한 삶을 보내고 싶은 건 인류 공통의 소원일 것이다.

그런 치매 환자들이 일하는 카페 후쿠로우(福老) 입구에는 가슴 뭉클한 글귀가 적혀 있다.

여기에서 일하는 직원은 주간보호센터에 다니는 노령자(치매 환자)입니다. 처음 만나는 손님에게 “당신, 만난 적이 있어요!”라고 한다든가 같은 내용으로 질문을 되풀이하는 경우도 있을지 모르지만 따뜻하게 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식사하기 위해 들르는 풍경이 노령자에게는 ‘보람’이자 ‘기쁨’입니다.


▲후쿠로우 점포 외관 (신미화 교수)
▲후쿠로우 점포 외관 (신미화 교수)


치매 환자가 일하는 카페, 후쿠로우

카페에 도착하자 앞치마를 두른 카페 대표 하세가와 마사에(長谷川正江, 57) 씨가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아이 셋을 둔 하세가와 씨는 31세부터 방문요양보호사로 일하다가 11년 전부터 BLG이와키(いわき)라는 데이서비스(우리나라 주간보호센터에 해당)를 운영하고 있다. 센터에는 현재 15명의 멤버가 있다고 한다. 데이서비스를 운영하던 하세가와 씨가 치매 환자들이 일할 수 있는 카페를 창업하기로 결심한 건 3년 전이다.


▲카페에서 판매하는 햄과 계란말이 김밥 (신미화 교수)
▲카페에서 판매하는 햄과 계란말이 김밥 (신미화 교수)


“계기가 된 건 친정아버지예요. 정년퇴직하고 나서 복지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며 요양원에서 운전을 하셨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건강하셨죠. 그런데 갑자기 요양원이 문을 닫는 바람에 실직하셨는데, 일이 없어지니까 치매에 걸리셨어요. 그때는 사회적으로도 이 병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기 때문에, 제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어요. 아이 셋을 키우느라 바쁘기도 했고요. 배회를 거듭하시던 아버지는 결국 돌아가셨고, ‘뭔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었을 텐데’라는 고민과 후회가 많았어요.”

많은 고령자들이 정년 후 본인의 역할이 없어졌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쓸모없는 사람 취급을 받고, 살아가는 보람을 느끼지 못하게 되면 인지 능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제가 데이서비스를 만들긴 했지만, 이곳에서는 환자들이 가만히 앉아 있고 직원들이 모든 수발을 들어주기 때문에 환자 본인은 점점 하고 싶은 일도 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치매 환자들에게 마지막까지 역할을 부여해 증세를 완화하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던 하세가와 씨는 2층짜리 단독주택을 빌려 후쿠로우 카페를 열게 됐다.


▲메뉴판을 교정하는 다카하시 미야히코 씨(신미화 교수)
▲메뉴판을 교정하는 다카하시 미야히코 씨(신미화 교수)


다카하시 부부와 M 씨

“남편 미야히코 씨를 집에서 부인 히사코 씨가 혼자 돌보다가 힘에 부치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과의 대화가 거의 없었던 남편의 치매 증세가 점점 심해졌다고 해요. 그런데 우리 카페에서 부부가 함께 일하면서 표정이 많이 밝아졌어요. 특히 미야히코 씨는 앞치마를 입으면 과거 회사원이었던 때가 떠오르는지 긴장감을 가지더라고요.” 다카하시 부부를 보며 하세가와 씨가 말했다.

후쿠로우를 방문한 날 다카하시 미야히코(高橋宮彦, 85) 씨는 새로 작성한 메뉴판에 오자가 없는지 열심히 확인하고 있었다. 개호도 3등급(보행기나 휠체어를 이용하며, 식사나 양치질 등 일상생활에서 전반적인 개호를 필요로 함)이지만, 과거 회사에서 오래 영업을 한 덕분인지 아직까지 교정을 잘 볼 수 있다고 한다.

부인인 다카하시 히사코(高橋久子, 83) 씨는 주방에서 젊은 직원들과 닭튀김을 만들고 있었다. 부인은 치매 전조 단계인 ‘경도인지장애’가 있다. 함께 일하는 젊은 직원은 히사코 씨가 한 가지 일을 끝내면 다음 동작을 일러준다고 한다. 경도인지장애는 한 가지 행동을 하면 다음 동작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는데, 직원들이 미리 반복해 알려주면 자연스럽게 다음 행동으로 이어진다. 부인에게 다가가 힘들지 않은지 묻자 “괜찮아요, 재미있어요. 허리가 굽어서 오래 서서 일하면 조금 아파요”라며 소녀 같은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부부는 고독했던 일상을 벗어나 젊은 직원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경도인지장애에서 치매로 넘어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도시락을 만들고 있는 다카하시 부부 (신미화 교수)
▲도시락을 만들고 있는 다카하시 부부 (신미화 교수)


카페에서 일하며 가장 획기적인 변화를 보인 사람은 M 씨(67)다. 동그란 플라스틱 통에 젓가락으로 반찬을 담는 데 집중하느라 손에서 눈길을 떼지 않으면서도, 젊은 시절 어떤 일을 했는지 묻자 “목재소에서 오랫동안 근무했어요”라며 또박또박 답했다.

M 씨는 정년인 65세쯤 치매가 찾아왔고, 이후 혼자 살며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가까운 곳에 사는 동생이 스스로 식사를 해결하지 못하는 형을 위해 매일 편의점에서 주먹밥이나 도시락을 사서 배달해주고 있다. 어느 날 도시락을 사온 동생에게 M 씨가 부엌칼을 들이밀며 “왜 매일 찾아와? 이놈, 내 재산을 탐내는 거지?”라며 화를 내 무척 놀란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랬던 M 씨가 후쿠로우 카페에서 일하면서 많이 온순해졌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 들렀는데, 카페가 마음에 들었는지 지금은 일주일에 네 번이나 나와 일한다.


▲함께 일하는 젊은 직원들 (신미화 교수)
▲함께 일하는 젊은 직원들 (신미화 교수)


최고의 보상은 마음 회복

후쿠로우 카페는 하세가와 씨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카페에는 주문표가 준비되어 있다. 손님이 주문 내용을 직접 작성하면 치매 환자가 받아 직원에게 넘겨주는 방식이다. 또한 손님이 너무 많이 오는 날은 ‘매진’ 간판을 내걸고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는다.

카페를 방문한 날 후쿠로우의 방식으로 커피와 한국식 김밥을 주문했다. 히사코 씨가 예쁜 잔에 담은 커피와 김밥을 정성스럽게 내어줬다. 후쿠로우 카페의 도시락은 보기에도 예쁘고 맛도 좋다. 무엇보다 정성이 가득 들어간 게 느껴진다. 카페를 이용한 젊은 사람들이 SNS에 리뷰를 올리면서 멀리 있는 다른 현에서까지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치매 환자가 손님을 맞이하며 90도로 인사하고, 손님이 탄 차가 사라질 때까지 인사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하세가와 씨도 행복을 느낀다.


▲테이크아웃 주문 손님이 기다리는 장소(신미화 교수)
▲테이크아웃 주문 손님이 기다리는 장소(신미화 교수)


하지만 카페 경영은 적자다. 하루에 팔리는 도시락은 많으면 50개, 적으면 5개 정도다. 하루 매출은 2만~3만 엔 정도지만 이마저도 들쭉날쭉 일정하지 않다. 하세가와 씨가 운영하는 데이서비스에서 나오는 약간의 이익으로 카페의 적자를 메우며 겨우 운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하세가와 씨는 너무 매출이 많으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손님이 많아 지나치게 바쁘면 치매 환자도 직원도 지치기 때문이다.

하세가와 씨가 신경 쓰는 또 한 가지 부분은 카페에서 일하는 직원과 치매 환자의 영양 있는 식사다. 혼자 사는 고령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영양 밸런스를 맞춘 건강한 밥상일 것이다.

“저희는 오전에 일하고 오후 1시부터 한 시간 동안 점심을 먹어요. 남은 재료로 만들어 먹는데, 너무 맛있어서 직원이나 치매 환자들이 ‘점심 먹고 싶어 출근한다’고 농담할 정도예요. 특히 M 씨는 스스로 식사를 챙길 수 없는 상황이어서 이곳에 오시면 영양 보충을 충분히 하도록 당부드리고 있어요.”

후쿠로우 카페에서 일하는 치매 환자들은 먹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이들의 하루 보수는 400엔(약 4000원). 일주일 동안 모은 보수로 주중에 맛있는 점심을 사먹는 것에 큰 즐거움을 느낀다고 한다.

오전 근무가 끝나면 오후에는 카페를 닫고 하세가와 씨와 직원들은 치매 환자들과 외출한다. 당일 가고 싶은 곳을 물어보기도 하고, 가까운 바다를 구경하거나 공원에 가거나 함께 쇼핑하며 시간을 보낸다.

후쿠로우 카페에서 행복하게 일하는 다카하시 부부와 M 씨를 보며 정년을 맞이하기 전에 한 일이 무엇이든 치매에 걸리면 기억을 잃어가는 모습은 누구나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약 내가 치매에 걸렸을 때 나라는 존재를 받아들여주고 일이나 역할을 주는 곳이 있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치매의 속도가 느리게 간다면, 늙어도 쓸쓸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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