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노미 라이프] 인구절벽 겪은 일본 지역사회의 자구책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고 한다. 지역 현장 역시 마찬가지다. 망원경으로 보다가 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실은 ‘난투극’ 그 자체다. 공간, 자원, 기회에 대한 제로섬 게임이 무한 반복되고 있다. 남이 더 가지면 내가 덜 가질 것 같은 위기감과 초조함이 팽배해 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많이 가지느냐가 아니라 난투극이 벌어지는 경기장 자체가 질적으로 달라진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변화 조짐은 고령화다. 2021년부터 인구 감소와 초고령화 문제가 기정사실화되자 정부와 지자체가 분주해졌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신선한 대응을 볼 수 없다. 그저 돈을 쏟아부으면 좋은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 무성할 뿐이다.
학교보다 요양원이 많아진다면
2022년 기준 전국 유치원 및 초·중등학교 수는 약 2만 개다. 8년 후인 2030년에는 전국 초·중·고 학생 수가 100만 명 줄어 400만 명이 된다. 자연스럽게 학교 수도 줄어들 것이다. 반면 2022년 현재 전국의 노인요양시설은 4346개다. 많은 종류의 노인복지시설이 있고 아동과 청소년 복지시설 역시 많기 때문에 같은 범주를 제외하고 단순 비교를 해본다면, 2022년 기준으로 노인요양시설보다 유치원, 초·중등학교 수가 적어도 5배 이상 많다.
7년 내에 학생 수는 100만여 명 줄어들지만 7년 내에 고령자 수는 350만여 명 늘어난다. 어느 쪽 시설이 더 많아질지는 분명하다. 그런데 학교보다 요양원이 많아지면 고령자의 삶은 행복해질까. “어느 요양원은 이런 시설이 좋다더라” 하며 고르는 상황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 학교가 줄어든다고 배울 곳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요양원이 늘어난다고 고령자 케어가 확대되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핵심은 높은 질적 수준과 만족도다.
일에 대한 능동적 대응, 잡 크래프팅
‘잡 크래프팅’(Job Crafting)이란 말이 있다. 크래프트(Craft)가 스스로 공들여 하는 수공예와 수작업을 의미하듯 잡 크래프팅은 ‘일을 스스로 만든다’는 의미다. ‘직무 의미 창조’, ‘자발적 직무 설계’라는 오래된 해석도 있다. 경영이나 자기계발 분야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잡 크래프팅이라는 말을 써왔다. 일하는 과정에서 직면하는 어려움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문제로 인한 괴리감을 해소하고 일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과정이 잡 크래프팅이다. 스스로 일의 매뉴얼을 만든다거나 자신의 장점을 살려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는 과정이 대표 사례다. 그러나 개인에게만 잡 크래프팅 노력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런 시도 자체가 가능하도록 노동 환경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시니어와 직장을 연결하는 잡 크래프팅 실천’(シニアと職場をつなぐ: ジョブ・クラフティングの実践)이라는 책을 낸 기시다 야스노리 호세이대학 교수가 최근 한국을 방문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고령사회일수록 능동적인 일 만들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더욱 실감했다.
이 책은 쌩쌩한 젊은 직장인만 자기 주도적으로 일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고령자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강조한다. 그 이면에는 고령자와 청장년 모두 일자리 쟁탈전에 몰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고령자가 청장년의 일자리를 깔고 앉아서 다른 세대의 고용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복지적 고용만 하고 그저 고용 수만 늘리는 것보다는 일의 질에 주목해야 한다고 분석한다. 예전의 상사가 직원이 되고, 예전의 직원이 상사가 되어 고령자와 청장년이 모두 곤란해지는 상황이나 고령자가 일하기 어려운 노동 환경 등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연령차별(Ageism) 시대에는 재고용을 활성화해도 고령자는 일을 구하기 어렵고, 일에 적응하는 것은 더 어려우며, 급여 수준도 낮고 일에 대한 만족도도 높지 않다. 따라서 고령자가 능동적으로 잡 크래프팅을 할 수 있는 고용 구조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혜적 복지, 그 이상의 고용 패러다임
한 해에 1억 명씩 중산층이 생긴다는데 여전히 삶은 팍팍하다. 총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가 눈앞에 있고, 우리는 100세 시대를 살아야 한다. 평균연령 50대에 명예퇴직을 한다 해도 줄잡아 20~30년은 사회활동을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
고령자가 제대로 사회활동을 할 수 있으려면 그저 적당한 정도의 복지 수준 정책으로는 택도 없다. 근로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대응책이 필요하다. 오로지 연금 액수, 수혜 기간만 논하며 수혜자로만 고령자를 밀어낼 것이 아니라, 새로운 노동자로서 고령자를 자리매김해야 한다. 고령자의 잡 크래프팅이 발현될 수 있는 직종을 권하고, 고령자와 청장년 노동자가 어우러져 일할 수 있는 노동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낙수효과(Trickle Effect)의 반대말은 승수효과(Fountain Effect)다. 물이 아래로 새어버리지 않고 분수처럼 위로 솟아오르는 방식을 고령자 정책에도 적용해야 사회의 활력과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