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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단상] 봄 마중-김영옥

기사입력 2014-03-13 11:23

친정엄마께서 이메일을 보내오셨습니다.

친정엄마 모시고 구례산동 산수유마을에 갔던 날, 친정엄마께서 너럭바위에 앉아 백일장 대회 나온 소녀처럼 쓰셨던 그 글이 궁금하여 읽어보고 싶다며 졸라댔더니 이렇게 보내오신 것입니다.

친정엄마께서는 산수유 노란 꽃너울 속에서 느끼신 봄의 감흥을 잔잔하고 따뜻한 글로 풀어내셨습니다. 풋풋한 봄편지 내용이 마냥 좋아 당신의 고운 글을 이렇게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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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하순의 날씨는 변덕쟁이 할멈 같다.

아침저녁엔 영하의 날씨로 강원도에는 폭설이 내려 눈꽃이 만발하고, 남녘엔 봄의 전령사인 산수유 꽃이 손짓하니 사람들이 갈팡질팡한다.

썰매 장으로, 꽃 마중으로 신나게 달려가는 젊은이들이 부럽다.

여기도저기도 끼지 못하는 방콕대학생이던 난, 심기가 따분하던 참에 서울에서 셋째 딸이 아침 일찍 내려와 봄 마중을 가자고 했다.

딸 내외는 어미가 지난 가을 다리와 허리를 수술하고 겨우내 방에서만 지낸 것이 안쓰러워 시간을 내었다며 사양하는 나를 부추겨 데리고 나섰다.

구례 산동까지 고속도로를 이용하니 1시간 좀 넘게 걸렸다.

일찍 나섰기에 사람들이 별로 없어 조용했다.

햇살이 퍼지지 않아서 꽃들이 잠을 덜 깬 듯 이슬에 젖어 있었다.

다음주말에 산동면에선 산수유 꽃 축제를 연다고 길 아래편엔 뾰족 천막들이 즐비했다.

날씨는 바람 한 점 없이 포근하고 꽃도 지금이 한창 만개라니 잘 맞춰 온 것 같았다.

반곡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먼저 냇가로 내려가는 꽃담 길을 걸었다.

반곡 마을을 끼고 흐르는 서시천 가운데는 100m 정도 되는 넓고 긴 반석이 아래쪽 위쪽에 널려있었다.

나는 반석을 보자 반하여 징검다리를 겅중겅중 건너 너럭바위 가운데 서서 사방을 둘러보며

"야아, 참 좋다!" 소녀처럼 탄성을 질렀다.

기분이 좋아 감탄을 하니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주위에 아무도 없었기에 마음 놓고 소리를 질렀다.

연노란 꽃구름을 병풍처럼 둘러놓고 바위 양 옆으로 졸졸졸, 쏴아쏴아, 철철철 흐르는 청아한 물소리의 연주를 들으니 자연의 풍광에 도취되어 한동안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잠시나마 속세를 떠나 신선으로 변해 있노라니 창조주의 솜씨와 사랑에 찬 배려에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왔다.

‘철따라 아름다운 모습을 주시어 세상사에 찌들고 지친 상한 갈대 같은 영혼들을 이렇게 위로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래쪽 반석을 보니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진작가들, 동호인들이 무리지어 온 분들의 알록달록한 의상들이 노란 산수유 꽃과 어우러져 더 고운 풍경을 이루었다.

사진작가들은 저마다 아름다운 풍광을 담아가려고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렀다.

나는 ‘내 눈과 가슴에 담아가야지!' 메모를 하느라 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건너편 언덕에서 딸이 “엄마 너무 멋있어요.”하며 몇 컷을 찍어대면서 나오라고 손짓했다.

그제야 일어나서 맑은 물에 손을 대고 싶어 비탈진 바위를 내려가다가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고 물에 빠질 뻔했으니 치신머리없는 노인네를 어찌할꼬!

놀란 사위는 신발을 벗어들고 건너와 부축하여 손을 꼭 잡고 하위마을 꽃길을 다니며 감상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차들이 밀려와 주차장을 채웠다. 전국에서 온 상춘객들은 연인들, 아기들과 온 가족들, 부모를 모시고 온 분들이 꽃 속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은 노란 산수유 꽃만큼이나 예뻤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딸도 이리저리 다니며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산수유꽃의 내력은 잘 모르지만 오래전부터 마을에 몇 그루의 나무가 있었는데 6.25전쟁 때 빨치산 소탕작전으로 마을이 수난을 당하여 빈 집이 많아지자 빈터 여기저기에 심은 것이 지금은 군락을 이루어, 산수유 하면 구례 산동이 으뜸이란다.

상위마을로 접어들면 집집마다 울타리나 언덕배기에 오래된 나무가 많다.

꽃송이를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꽃잎 5개가 돋보기를 써야 보일정도로 작다.

밤알만한 꽃대 하나에 여러 꽃송이가 달려 있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꽃길을 걸어 내려오면서 산수유 찬양론을 나대로 상상해 보았다.

산수유 꽃은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봄의 전령사다. 이는 부지런함을 나타내는 것이요.

산수유나무는 언덕이나 평지의 척박함도 가리지 않고 무리지어 살면서도 다투지 않고 예쁜 꽃을 피우며 종족을 보존해가는 배려심 많고 사랑 많은 나무다.

낱낱이 보면 보잘 것 없는 꽃이지만 한 꼬투리에 몇 송이가 모여 있는 것은 협동심을 나타냄이라.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은 고상한 자태는 요란스레 뽐내고 자랑하고자 날뛰는 요즘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삼고 싶다.

있는 듯 없는 듯 은은한 향을 풍기며 배려하는 다정다감한 품성에 반해 벌들이 찾아오지 않는가.

작은 꽃 한 송이에 많은 열매를 맺었다가도 서로 튼실한 송이에 양보하는 미덕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오늘날 모든 것을 다 자기가 가지고 우쭐대고 싶어 안달하는 세상에 심성 고운 어머니처럼 자식을 달래며 타이르는 듯 꽃들은 살랑살랑 손을 흔들며 배웅한다.

긴긴 겨우내 방콕대학생 노릇에 지친 팔십을 바라보는 노인네가 노란 산수유 꽃들에 반하고, 서시천 너럭바위에 반하며, 물소리에 반하고, 노고단자락의 황홀한 풍광에 반했으니 소녀로 착각할 만하다.

거기에 산수유 꽃들이 주는 교훈을 가슴에 담뿍 담고 돌아왔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으랴.

이렇게 즐거운 봄맞이를 하게 해 준 막내딸과 사위가 정말 고마웠다.

◆글쓴이 <김영옥 님>(79세)

전북 전주시 완산구 마당재길 14-26 (남노송동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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