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 노출, 분량 압박 고충 없어… "구독자들 나처럼 행복하길"
소담한 집 곳곳에 푸릇한 식물들을 가꾼다. 키가 큰 식물, 이제 막 싹을 움 틔우는 식물, 가구를 감싸 안고 있는 식물 등 각양각색이다. 방 안에는 채 완성하지 못한 그림이 이젤 위에 놓여있고, 완성된 그림은 액자 속에 보관돼 켜켜이 쌓여있다. 카메라 앞에서 말하다가 버벅댄 게 멋쩍어 웃음 짓다가도, 이내 능숙하게 식물과 그림에 대한 설명을 마친다. 지난해 유튜브를 시작한 실버 크리에이터 고정자(76) 씨 이야기다.
유튜브 채널명이자 고정자 씨의 활동명인 ‘지고메’는 알파벳 G와 영어 단어 ‘Gourmet’을 합해서 얻은 이름이다. G는 성씨인 ‘고’에서 따온 것이고 gourmet에서는 미식가, 식도락가,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는 뜻을 가져왔다.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새 이름을 얻은 셈이다. 새로 얻은 건 이름뿐만이 아니다. 요리, 플랜테리어(식물 인테리어), 그림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게 되면서 창작자로서 새로운 삶까지 얻었다.
“창작자로 사는 게 즐거워요. 멈춰있지 않고 끊임없이 잘 흐르고 있는 기분이 들게 하거든요. 생동감 같은 거요. 유튜버 지고메는 저에게 새로운 세상으로의 문을 연 것인데요,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보니 흥미롭네요.“
비로소 발견하게 된 '나'
젊은 시절에는 식당을 운영하면서 가족들을 돌봤다. 가족이 있어 행복했지만 가족을 돌보느라 정작 자신은 돌보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남편과는 사별하고 자식들은 모두 출가했다. 자식들은 자라 손주를 보고 고정자 씨는 어느새 할머니가 됐다. 자연스레 혼자 집에 남겨졌지만 외로움도 잠시,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며 진짜 자신을 찾아가는 기쁨을 맛보게 됐다.
“비록 할머니지만 나이 들수록 '나'와 잘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로 태어났으니 나답게 인생을 사는 게 맞다 싶어요. 가족이 있을 땐 그들의 삶을 돌보느라 나에게 집중하지 못했어요. 가족이 있어 행복한 삶이었지만 정작 나에게 많이 소홀하게 되더라고요. 가족에게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 혼자여도 즐거운 삶이에요.”
자신에게 몰두하면서 하나둘씩 좋아하는 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손으로 하는 것을 좋아하고 잘 했다. 결혼하고 나서는 아이들 옷을 만들어 입히고 간식까지 손수 만들어 먹였다. 손으로 만지고 가꾸고 그리는 것. 그것이 고정자 씨를 기쁘게 하는 것들이었다. 요리를 하고, 식물을 가꾸고, 그림도 배웠다. 유튜브가 선생님이었다. 유튜브를 즐겨 보다 보니 스스로의 삶도 기록하고 싶어졌다.
“평소 유튜브를 즐겨 보다가 나의 삶을 기록하고 싶어졌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혼자도 잘 지내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내다 보니 저도 모르고 있었던 저의 모습이 보여서 영상제작이 재미있게 느껴져요. 올해 76세가 됐지만 그런데도 나에게 당당한 삶을 살아내고 싶어서 '싱글라이프'라는 콘텐츠를 생각하게 됐어요.”
크리에이터 ‘지고메’로서의 삶
유튜브는 고정자 씨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모습을 꾸준히 담으니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응원해줬다. 지고메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오히려 잃어버린 ‘나’를 찾고 몰입하게 됐다.
“유튜브 채널에 제가 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것들을 소개하고 있어요. 저도 유튜브 채널에 그려진 제가 새롭지만 진짜 '나'를 발견한 것 같아 더욱 애착이 가요. 매일 유튜브 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관심으로 봐주고 응원해주셔 살아가는데 활력소가 되고 있어요. 영상을 완성할 때마다 성장했다는 기쁨도 있어요. 제 삶은 유튜버 지고메가 되기 전과 후가 정말 달라졌어요.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고 몰입하는 시간이 행복합니다. 쉽지 않지만 도전하고 나면 오늘도 잘 살아낸 것 같아 만족감이 커요.”
크리에이터를 전업으로 삼는 이들은 남모를 고충을 겪기도 한다. 과도한 관심을 받아 신분이 노출되기도 하고, 때로는 콘텐츠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하지만 고정자 씨는 크리에이터로서 삶에 만족하는 중이다. 구독자나 조회 수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튜버 지고메는 구독자 몇 명 달성이나 조회 수 몇 회 달성 등 여느 크리에이터 같은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 그저 좋아하는 일로 자신을 돌보고, 때로는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자신의 모습을 반갑게 맞이하며 즐겁게 지낼 뿐이다.
“제가 진심이니 사람들도 그걸 알아보는 듯해요. 시작도 하기 전에 걱정이 앞선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예요. 인생은 소중하잖아요. 저에겐 다 좋은 경험이에요. 저는 지금, 이 순간을 잘 느끼고 싶어요. 뒤돌아볼 때 '나에게 미안하지 않게'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그냥 매일 꾸준히 나답게 살려고 합니다. 다만 영상에서 보이는 제 모습이 그렇듯 영상을 시청하는 분들도 좋은 시간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