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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산천을 창작의 모태로 삼아

기사입력 2021-09-05 14:00

[감성 솔솔! 미술관 여기] 미술작품 기증한 김병종 화백

(브라보 마이 라이프 DB)
(브라보 마이 라이프 DB)

한국화가 김병종(69)은 남원시에 그림 400여 점을 기증해 미술관을 출범시켰다. 어떤 뜻이 있었을까?

“내 고향 남원은 소리의 성지이자 문예적으로도 명성을 날린 고장이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문화예술의 빛이 퇴색했다. 작은 미술관 하나쯤 필요하다는 생각이었고, 일조하고 싶었다. 그림에 재능 있는 학생들에게 미술관이 멘토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도 컸다. 여건이 좋으면 남원에서도 피카소 같은 화가가 나올 수 있는 거다.”

김병종은 전통 수묵의 기법과 정신에 서양의 미학을 수용한 회화로 할 말 다하는 작가다.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개방적인 작풍이 거둔 성과 역시 돌올하다. 무엇보다 그는 안주하지 않는 정신을 창작의 무기로 삼았다. 작품 경향의 변주가 잦은 걸 보면 그걸 알 수 있다. ‘바보 예수’ 연작에서 ‘생명의 노래’로, ‘송화분분’(松花紛紛)으로, ‘풍죽’(風竹)으로, 그의 테마는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변전했다.

“요즘 미술계엔 단일한 주제나 소재를 지속해야 살아남는다는 불문율이 있다. 여기엔 미술 시장의 자본 논리가 가장 큰 배경으로 작용한다. 하나를 평생 파는 화가의 작품이어야 컬렉션의 투자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다. 이건 기이한 풍조다. 작가는 창조적 자기파괴를 하는 존재여야 한다. 피카소는 아홉 번이나 경향을 바꾸었다. 괜히 피카소가 아니다.”

‘바보 예수’ 이후 선생의 그림은 하나같이 밝고 따뜻하다. 삶에 붙게 마련인 고독이나 고통의 기미가 없다. 천성이 낙천적인가?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가족의 생계를 도맡다시피 하셨지만 푸념이나 원망이 전혀 없었던 어머니의 긍정적인 눈길, 낙천적인 DNA를 물려받은 것 같다.”

작품의 테마와 소재가 주로 자연이다.

“고향의 산천이 창작의 모태이지. 만산홍엽, 강물, 들판, 보랏빛 자운영 등 가난했지만 풍성한 자연 안에서 행복했던 유소년기의 체험이 기억의 창고 안에 가득하다. 그걸 하나하나 꺼내 풀어놓은 게 작품이다.”

송홧가루의 노란 미립자를 형상화한 ‘송화분분’에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세상의 저 너머까지 보이는 것 같아 아득하고 아찔하다.

“어릴 적 봄날, 노란 뭉게구름처럼 바람에 실려가는 송홧가루에서 받은 감동을 되살린 작품으로 생명의 섭리를 그렸다. 이어령 선생께선 ‘송화분분’에 대해 ‘생명의 바깥에서 생명을 그리던 김병종이 마침내 생명의 안에서 생명을 그렸다’고 과분한 평을 하시더라. 난 여전히 미흡한 작가인데….”

피부처럼 정착한 겸양이 느껴진다. 그림엔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가 자욱하다. 다독의 힘이 반영됐다. 김병종은 빼어난 에세이스트이기도 하다. 매달 보름은 그림을, 보름은 글을 쓴단다. 이런 그에게 눈총을 쏘는 이들이 많다.

“은사님조차 왜 잡문으로 어지럽히느냐 질책하셨다.(웃음) 완전한 성공을 위해 그림만 하라는 식의 조언과 비난을 자주 들었다. 그러나 그리기만 하면 지적 공허감이 생긴다. 글을 읽고 써야 가슴에 차오르는 게 있다. 글은 내게 그림을 퍼내게 하는 수원지다.”

그에게 글과 그림은 한 몸이다. 글 쓰는 본새로 굶주린 듯 그리는 것!

<이 기사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BRAVO My Life) 2021년 9월호(VOL.81)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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