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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잇값을 해야 나이대접받는다

기사입력 2018-08-16 09:33

경로석에서 나이 드신 분들이 서로 옥신각신하는 볼꼴 사나운 광경을 심심찮게 목격한다. 내가 나이를 더 먹었으니 경로석에 앉을 우선권이 있다는 논리가 싸움의 시작이다. 경로석은 정확히 말하면 노약자석이다. 임신을 한 아녀자나 나이는 젊지만 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사람도 앉을 권한이 있다. 경로석이 아니고 노약자석인데도 더러는 경로석으로만 알고 있다.

우리사회는 대화나 논쟁을 하다가 이론적으로 수세에 몰리면 ‘너 몇 살이야.’ 한술 더 떠서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어따 대고 두 눈 부릅뜨고 대들어.’ 라고 한다. 심한 말로는 너는 애비 어미도 없냐!’ 까지 나간다. 원래 언쟁의 본질은 사라지고 나이타령으로 넘어가면 아주 강한 심장을 가진 젊은이가 아니면 피하게 된다. 주위 많은 사람들이 우선은 보이지 않는 나이라는 벼슬을 인정하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젊은이에게 눈총을 쏴대기 때문이다.

원래 동물의 세계는 나이가 아니고 힘이 지배한다. 늙은 수사자는 새로운 젊은 사자를 힘으로 제압하지 못하면 대장이라는 자리에서 내려온다. 힘이 벼슬이지 오래 살아 늙었다는 것이 동물의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사람만이 부모를 공경하고 웃어른을 배려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나이가 통한다.

증자가 말하길 ‘朝廷莫如爵 조정막여작, 鄕黨莫如齒 향당막여치,輔世長民莫如德, 보세장민막여덕’ 이라고 했다. 이 말은 ‘조정에는 벼슬만한 것이 없고 시골 마을에서는 나이만한 것이 없고 세상을 돕고 백성을 잘 살게 하는 데는 덕(德)만한 것이 없다’라는 말이다. 나이도 벼슬처럼 인정받는 근거다. 수평적 평등사회가 아닌 나이를 매개로 하는 수직적 상하구조를 만드는데 나이가 힘을 발휘하였다.

우리는 처음 만나 통성명을 하고 나이를 물어 ‘그럼 선배님으로 모시겠습니다’하면 위계질서가 만들어진다. 삼강오륜에 장유유서(長幼有序)가 있는데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차례와 서열이 있다는 말이다. 이런 서열이 빨리 정해지면 오히려 펀하다.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은데 옥신각신 할 때 제일 연장자가 ‘그럼 이렇게 하지!’하고 정해주면 승복하는 근거로 아주 편하다.

자랄 때 형제간에 싸움을 하면 부모는 힘이 약한 동생 편을 드는데 이것이 잘못이란다. 형이 부모의 위력에 눌려 잠시 승복하는 것이지 속마음으로는 불만을 품고 승복하지 않는다. 부모가 없을 때 동생을 때린다. 형에게 우선권을 주어야 가정의 위계질서가 선다. 먹을 때도 형이 먼저고 좋은 것도 형이 먼저라는 것을 심어주면 자연히 형제간 분쟁은 없어지고 동생은 자신이 후순위라는 권력을 인정하고 기다린다. 대접을 받는 형은 승자의 아량으로 자기 먹을 것을 동생에게 스스로 양보하는 미덕을 보인다. 이것은 아직 미 성숙된 아이 때의 질서법이다.

이제는 민주주의 시대다. 모두가 성인이 되면 수직문화에서 수평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손자뻘 같은 놈을 교육측면에서 한 대 때리기라도 하면 폭행범인으로 바로 입건이 되는 세상이다. 나이라는 벼슬은 없어졌으니 덕으로 더 젊은 사람을 대해야 한다. 어느 모임에서도 저 사람은 나이가 많으니 우리의 리더인 회장으로 뽑아야 한다는 말은 점점 설득력이 없어져 가고 있다. 나잇값을 해야 나이대접을 받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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