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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30초를 고수해야 하는 이유

기사입력 2018-08-01 08:43

▲엘리베이터 대기줄(손웅익 동년기자)
▲엘리베이터 대기줄(손웅익 동년기자)

장애인이나 노약자를 위해 지하철 역사마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한 개 역사에 엘리베이터가 한 대밖에 없다. 장애인 시설 기준에 맞춰서 최소한으로 설치한 것 같다. 장애인 엘리베이터의 평소 이용자는 대부분 노인이다. 요즘엔 걷기 싫어하는 젊은 층도 많이 이용한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는 젊은 사람들이 긴 줄을 만들고 있다. 젊은 사람들 중간중간 노인들이 서 있는 모습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작 장애인들은 이용이 더 불편해졌다.


장애인 엘리베이터 앞을 지나가면서 안내문을 보니 ‘출입문이 닫히는 시간을 조정하여 운행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서 엘리베이터를 타 보았다. 궁금증은 곧 해소되었다. 엘리베이터 안쪽 조작 버튼 위에 ‘문 닫힘 시간 30초 후’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그제야 엘리베이터 문을 임의로 여닫을 수 없게 되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즉, 문이 열린 후 30초 동안 기다렸다가 문이 닫히도록 강제로 조정해 둔 것이었다. 달리 말하면 30초 동안 무조건 기다려야 한다. 우려하던 문제가 곧 발생했다. 거의 30초가 다 되어갈 때 어떤 할머니가 급히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문열림 버튼을 터치한 것이었다. 그때 안쪽에 서 있던 할아버지가 지나가는 말로 불만이 묻어나는 말을 내뱉으셨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에 문열림 버튼을 터치하면 또 30초 동안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30초 동안은 절대 열림 버튼에 손을 대면 안 되는 거였고 특히 조금 전의 할머니처럼 문이 닫히기 직전에 문열림 버튼을 누른 사람은 여러 사람들의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냥 기다리기에도 지루한데 급한 일이 있는 사람은 짜증이 날 수밖에 없도록 되어있는 것이다.

▲엘리베이터 준수사항(손웅익 동년기자)
▲엘리베이터 준수사항(손웅익 동년기자)

장애인 엘리베이터 벽을 둘러보면 더 갑갑해진다. 엘리베이터 이용자 준수사항, 엘리베이터 이용자 안전수칙, 안내문, 알림 등이 작고 빽빽한 글씨로 벽을 온통 도배하고 있다. 안전수칙 한 장을 읽는데도 최소한 5분은 소요될 것 같은데 한 두 장도 아니고 여러 장을 붙여두었다. 엘리베이터 타고 한 층 오르내리는데 무슨 준수사항, 안전수칙이 그렇게 많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들어차니 벽에 붙어있는 안내문이 보이지도 않는다. 이것은 혹시라도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면 이용자에게 모든 문제를 뒤집어 씌우기 위한 엘리베이터 관리주체의 면피용 이라는 생각이 들자 화가 치밀었다. 도데체 무슨 내용인지 훓어보다가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안전 수칙 가운데는 ‘지정된 용도 이외에는 사용하지 마십시오’ 라는 문구가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것 이외에 다른 용도가 뭐가 있을 까 한참 생각해 보았으나 도저히 다른 용도를 찾아낼 수 없었다. 혹시 화장실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하니 웃음이 터져나왔다. 또 하나의 안내 문구에는 ‘교통약자가 우선 이용할 수 있도록 시민 여러분의 아름다운 배려가 필요’하다고 되어 있다. 아름답지 않은 배려는 뭐가 있을 까 생각하다가 갑자기 머리가 아파졌다.

그래서 승강기를 관리하는 부서에 연락해서 30초 설정이 왜 필요한지, 30초 동안 문을 닫지 못하도록 설정해 둔 이유를 물어보았다. 답변은 교통약자를 위한 조치이고 휠체어를 탄 사람이 엘리베이터에 들어가려 할 때 문이 빨리 닫히면 안 되기 때문에 설정해 둔 것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면 일반 엘리베이터처럼 문닫힘 기능은 살리되 기본대기 시간을 30초로 설정하고 그 시간 안에라도 닫힘 버튼을 누르면 닫힐 수 있도록 하면 두 가지 다 해결되는 것 아니냐고 건의해도 도무지 들으려 하지 않는다. 노약자를 위한 시설이라 무조건 30초를 고수해야 한다는 답변만 반복한다. 정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건의서를 공문으로 접수하라고 한다.

▲엘리베이터 사용 안내문(손웅익 동년기자)
▲엘리베이터 사용 안내문(손웅익 동년기자)

폭염이 지속되는 날씨에 이런 일로 앞뒤 꽉 막힌 엘리베이터 관리자와 통화하는 것이 힘들다. 필자와 비슷한 건의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장애인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노인들 간에 문 열림 버튼 문제로 다툼이 있는 것을 그 관리자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 시급히 개선하면 될 일을 공문으로 접수하라고 한다. 다시 한번 이런 문제를 확인하기 위해서 장애인 엘리베이터를 타 보았다. 30초를 기다리면서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문이 닫히지 직전에 한 할머니가 급히 엘리베이터로 다가오셨다. 문이 닫힐까 불안했지만 열림 버튼을 눌러드리지 못했다. 내 옆에 험악한 인상의 할아버지가 급히 다가오는 할머니를 노려보고 계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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