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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의 의미

기사입력 2018-04-21 16:06

‘시원섭섭하다’는 표현이 이처럼 절묘할 수 있을까! 지난주 토요일에 아들의 결혼식이 있었다. 그토록 경사(慶事)임에도 불구하고 꼭두새벽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때문에 불순한 일기(日氣)로 말미암아 하객들의 발걸음이 막히는 건 아닐까 싶어 걱정이 먹구름으로 자욱했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끊임없는 하객들의 방문과 잇따른 축하인사, 그리고 가득한 축의금과 꽃보다 고운 신랑 신부의 아름다움까지 뭐 하나 빠질 게 없는 결혼식을 마칠 수 있었기에. 그렇게 혼례를 잘 치르고 돌아온 이튿날이었다.

장인 어르신께서 입원해 계신 병원에서 급보가 왔다. 황망(慌忙)에 창졸(倉卒)까지 하여 달려갔으나 얼마 되지 않아 운명하셨다. 가족들의 오열 속에 S병원 장례식장으로 고인을 모셨다. 불과 하루 전날 아들의 예식을 치른 터였기에 감히 부고(訃告)를 낼 수 없었다.

죽으란 법은 없는지 동서 형님의 문상객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장례 이틀째가 되자 장례식장 측에선 왼쪽 팔에 완장(팔띠)을 채워주었다. 누런 삼베에 검은 띠가 한 줄 들어가 있는 완장이었다.

장례식장에선 고인의 상주(喪主)와 그 가족들에게 완장을 구분해준다. 그런데 줄의 개수가 달라서 이따금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장례식장 완장의 경우는 고인과의 관계를 의미해주는 표시다. 그래서 완장 두 줄은 상주를 뜻하는 표시이며, 완장 한 줄은 상주 이외의 형제자매를 표시한다고 한다. 또한 무(無)줄은 상주 이외의 8촌 이내를 표시한다고 알려져 있다. 아무튼 완장을 차고 문상객을 받노라니 새삼 ‘완장의 의미’를 곱씹게 되었다.

아내와 열애하던 중 그 감도가 더욱 깊어져 결혼을 약속했다. 이어 처음으로 처가를 찾았던 건 지난 1980년대 초반이다. “우리 아버지는 말주변이 없으셔서 다소 무뚝뚝한 분이니 오해는 하지 마”라던 아내의 말처럼 딱히 질문도 안 하셨던 장인 어르신이셨다.

하지만 결혼식을 올리던 날 혼주석에 앉으셔서 연방 웃음꽃을 피우셨던 모습은 잊을 수 없다. 술을 물처럼 즐기셨으나 10년 이상 병원에 입원하시면서 그마저도 못 드셨던 어르신이다.

누군가 이르길 눈물은 인간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한다고 했던가. 연방 흐르는 눈물을 닦노라니 그 말이 틀린 게 아님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또한 ‘왕관을 쓰고자 하는 자는 그 무게를 견뎌라’는 말처럼 나 자신, 사위가 되었기에 사흘장 내내 상주 입장에서 어떤 악전고투까지를 감내하는 자격까지 부여된 것이라 여겨졌다. 어제 마침내 3일장을 마쳤다. 삼가 장인 어르신의 극락왕생을 발원(發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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