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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무대 위로 돌아온 전설의 디바, 정미조

기사입력 2017-11-19 12:40

웅숭깊은 목소리로 12월 10일 콘서트 연다

▲사진 박규민 parkkyumin@gmail.com
▲사진 박규민 parkkyumin@gmail.com
1972년부터 1979년까지 대한민국을 흔들었던 디바 정미조가 오랜 우회로를 거쳐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다. ‘개여울’과 ‘휘파람을 부세요’와 같은 다양한 히트곡들이 가수 정미조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떠오르겠지만, 사실 그녀는 가수로서의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화가로서의 인생 2막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인생의 제3막에서 가수로 돌아온 그녀는 그동안 쌓은 세월의 깊이를 유감없이 선보이고 있다. 웅숭깊고 밀도감 있는 호흡을 가지게 된 그녀의 노래와 함께 삶의 궤적을 들여다봤다.

글 김영순 기자kys0701@etoday.co.kr

1972년, ‘개여울’로 데뷔한 정미조는 그 후 7년 동안 대한민국을 휘어잡았던 시대의 디바였다. ‘휘파람을 부세요’, ‘그리운 생각’, ‘아! 사랑아’와 같은 히트곡들로 차트의 정점에서 활동하던 그녀는 1979년이 되자 돌연 가수생활을 접고 프랑스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미술을 공부해 박사 학위까지 받은 그녀는 1993년 한국으로 돌아와 화가이자 미대 교수로서의 삶을 살며 인생 2막을 열었다. 그리고 이제 인생 3막. 다시 가수로 복귀한 그녀가 기자 앞에 앉아 있다. 브라운관에서 볼 수 있었던 젊은 시절의 에너지 넘치던 모습은 이제 온화한 무게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38년 만에 나에게 맞는 옷을 찾았다”

“2015년에 23년간 일했던 교수직에서 은퇴했죠. 마음이 홀가분했어요. 은퇴한 사람들은 흔히 ‘저녁에 집에 가면 뭘 하지?’ 하는데 난 행복했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됐으니까요.”

37년. 정미조가 수원대학교 조형예술학부 서양화과 교수로 있다가 다시 무대로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이다. 그 시간 그대로, 그녀는 ‘37년’이라는 제목으로 2016년 자신의 앨범을 내놨다.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싶어 걱정됐죠. 그리고 CD로 앨범을 만들어 내놔야 하니 부담감과 책임감이 컸죠. 그런데 이주엽 JNH뮤직 대표님이 정말로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목소리였다고 응원해주셨고 제가 부르게 될 노래들의 가사도 너무 마음에 들었고요.”

그리고 지난 11월 17일, 그녀는 앨범을 또 발표했다. 이번 앨범의 제목은 ‘젊은 날의 영혼’. 라틴 음악, 팝 재즈, 모던 포크 등 수록된 14곡에는 다양한 음악적 시도가 들어 있다. 그녀는 ‘38년 만에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았다’고 표현했다. 마침 올해는 그녀의 가수 데뷔 45주년이기도 하다.

“이번 앨범에서는 젊은 친구들과 함께했어요. 음악감독은 재즈 기타리스트 정수욱씨가 맡았습니다. 그리고 집시 기타리스트 박주원 씨가 작곡한 노래가 있고요. 박주원씨 어머니가 제 팬인데, 박주원씨가 그런 어머니를 위해서 작곡한 곡이에요. 편곡이 얼마나 좋은지, 기타와 다른 악기 연주자들과의 합이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Mnet의 오디션 프로그램 <위키드>에서 나왔던 제주소년 오연준과는 듀엣으로 손자와 대화하듯 노래를 불렀죠.”

▲사진 박규민 parkkyumin@gmail.com
▲사진 박규민 parkkyumin@gmail.com

대한민국이 사랑한 목소리

오래전 얘기다. 가수로 데뷔하기 전 정미조는 이화여대 안에서 노래 잘 부르기로 유명한 스타였다. 그러나 학교 안에서만 노래를 부르는 것은 그녀로선 갑갑한 일이었다. 그런데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 레코드 회사 사장이 직접 그녀를 찾아왔다. 당연히 그녀의 이름을 건 앨범을 내고 싶다는 제안이었고, 서양화과에서 4년 동안 과 대표를 내리 맡을 정도로 성실한 학생이었던 그녀는 본격적으로 ‘가수를 하느냐, 마느냐’라는 갈림길에서 고민에 빠졌다. 그런 그녀의 고민을 해결한 것은 그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학과장이자 지도교수인 은사의 한마디였다.

“해봐라, 내 나이 되어 그때 한번 해볼걸 하며 후회하지 말고. 너는 공부 잘하니까 일단 가수로 활동하다가 나중에라도 대학원 가서 다시 공부하면 된다.”

지도교수의 한마디, 그리고 그녀의 결심은 적중했다. 세상 밖으로 나온 그녀의 목소리에 대한민국이 사랑에 빠진 것이다.

▲다시 무대 위로 돌아온 전설의 디바, 정미조의 20대 전성기의 모습 (사진제공 JNH뮤직 )
▲다시 무대 위로 돌아온 전설의 디바, 정미조의 20대 전성기의 모습 (사진제공 JNH뮤직 )

화가로서 자리매김한 인생 2막

“유학을 떠나서 몽마르트 언덕 8층 건물 꼭대기에서 살았어요. 한국에서 매니저, 운전기사 등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다가 혼자 지내며 밥까지 스스로 지어 먹어야 해서 너무 힘들었어요. 막 울기도 했고.”

그러나 힘들다고 돌아올 수는 없었다. 한국을 떠날 때 은퇴를 공언했고, 당시 최고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TBC(옛 동양방송) 예능 프로그램 <쇼쇼쇼>에서 신인가수로 막 데뷔한 최백호 한 명만을 초대가수로 초청한 고별 특집까지 했었다.

“최백호 선생은 거기서 처음 만났어요. 정민섭 선생이 그때 나를 위해 ‘나 여기 있어요’를 써줬는데 그 노래를 중간쯤 불렀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거예요. 내 의지로 떠나는 거라 눈물이 안 나올 줄 알았어요.”

그렇게 했는데 파리까지 가서 다시 돌아올 수는 없었다. 그녀는 물방울 그림으로 유명한 김창렬 작가의 추천으로 파리에 있는 두 개의 국립학교 중 아르데코에 입학했다. 그리고 그 후는 가수가 아닌 재불 화가로서의 삶이었다. 6년 3개월 동안의 박사과정을 완료했고 모나코 전시회에서 상까지 받으면서 성공적인 서양화가로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1993년부터 수원대학교 교수로 지내면서 화가이자 교육자로서의 인생 2막의 삶을 살았다.

▲다시 무대 위로 돌아온 전설의 디바, 정미조의 20대 전성기의 모습 (사진제공 JNH뮤직 )
▲다시 무대 위로 돌아온 전설의 디바, 정미조의 20대 전성기의 모습 (사진제공 JNH뮤직 )

최백호, 손성제, 이주엽과의 인연

“어떤 전시회에 갔을 때 보니 최백호 선생이 자신의 그림 3점을 출품했더라고요. 그 그림들을 보니 너무 좋았어요. 미술계에서는 내가 중견이었으니까, 그림에 대해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죠. 그때부터 다시 최백호 선생과의 교류가 다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교수생활을 한 20년쯤 했을 때, 최백호 선생이 점심을 먹자는 거예요.”

최백호가 정미조를 만난 이유는 간단했다. 다시 가요계로 돌아와 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녀는 최백호를 통해 앨범 ‘37년’의 음악감독을 맡은 색소포니스트 손성제, 제작을 맡은 이주엽 JNH뮤직 대표 등 그녀와 함께 작업하게 될 음악계 인사들과도 만날 수 있었다. 그녀의 음악적 성과를 알고 다시 시작될 가능성을 확신했던 그들의 조력을 통해 그녀는 가요계를 떠난 1970년대와는 너무도 다른 환경 속에서 오래 닫혀 있었던 자신의 문을 다시 열었다.

“저는 37년 만의 녹음이라 잠도 못 이뤘죠. 그런데 손성제 교수가 굉장히 속도감 있게 작업을 잘했어요. 어떤 노래는 녹음하자마자 오케이 사인을 했어요. 첫 곡이 가장 좋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죠.”

▲다시 무대 위로 돌아온 전설의 디바, 정미조의 20대 전성기의 모습 (사진제공 JNH뮤직 )
▲다시 무대 위로 돌아온 전설의 디바, 정미조의 20대 전성기의 모습 (사진제공 JNH뮤직 )

어렸을 때는 정말 신나게 불렀었구나 싶었다

마침 얼마 전에 나온 아이유의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 둘’에는 정미조의 대표곡인 ‘개여울’이 리메이크되어 실려 있다. 아이유 특유의 여리고 애조가 깃든 곡 해석은 비슷한 나이대의 정미조가 보여줬던 목소리의 힘과 비교하면 묘한 재미가 있다. 아이유가 구사하는 창법은 ‘37년’ 앨범에 실린, 리뉴얼된 ‘개여울’에 더 가깝다. 그런데 막상 정미조는 자신의 인생 1막을 채웠던 가수로서의 엄청난 인기와 삶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다고 술회했다.

“제 인생 1막은 20대였는데, 한국에 돌아와 그 시절의 모습을 다시 보니 ‘아, 내가 정말 신나게 불렀구나, 젊음의 설익은 패기로 마구 전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많은 경험이 인생에 녹아들면 그 경험이 바로 소리가 되죠. 옛날의 제 소리가 시원시원해서 듣기 좋았다면 지금은 삶의 서러움, 슬픔이 배어든 소리가 됐어요.”

그녀의 말대로, 지금 그녀의 목소리는 젊었을 적 목소리와는 사뭇 다르다. 깊은 호흡, 긴 감성, 나이 든 이의 여백과 회한이 묻어나는 그녀의 창법은 한때 전설이었으나 오랜 시간을 돌아 다시 무대에 선 그녀의 모습에서 저 저명한 아프로 쿠반 밴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여성 보컬인 오마라 포르투온도가 떠오르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어른의 음악이 사라진 시대, 전설이 돌아오다

인터뷰에 함께 동석했던 이주엽 JNH뮤직 대표의 말대로 지금 한국은 ‘어른의 음악’을 들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어른의 음악에는 인생의 끝자락에 이른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정서가 담겨 있기 마련이다. 7년 동안 우리나라 가요계를 뒤흔들고 사라졌다가 37년 만에 다시 나타난 정미조의 노래에는 그런 마법 같은 순간들이 담겨 있었다.

“이번 앨범은 곡들을 너무 잘 만났고 덕분에 제대로 만들었어요. 그러나 우여곡절이 유난히 많은 앨범이기도 했죠. 예를 들어 믹싱과 마스터링까지 다 됐는데, 들어보니 너무 화려해서 제가 가진 오리지널함이 줄어든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그 시점에서 완전히 새로 고치기도 했어요. 듀엣을 하기로 한 제주 소년 오연준군은 목소리는 아이인데 아이 같지 않은 성숙한 느낌이 있었죠. 그런데 막상 함께 불러보니 처음에는 음역대가 안 맞아서 노래가 제대로 안 나오기도 했어요. 하지만 마지막에 극적으로 노래가 완성됐죠.”

이번 앨범 ‘젊은 날의 영혼’에는 정미조가 작곡한 노래들도 세 곡 들어갔다. ‘오해였어’는 작사와 작곡을, ‘난 가야지’와 ‘비 오는 오후’는 공동 작사·작곡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녀가 이번 앨범에 갖고 있는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 열정은 그녀의 인생 3막이 금방 끝날 것 같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듯했다.

“인생을 살아보니 때가 있어요. 수십 년 동안 이 노래들을 위해 시간을 보낸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들지 않았던 감정이죠. ‘지금이 내 때가 온 건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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