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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람 PART1] 책에서, 그리고 책 읽기에서 놓여나기

기사입력 2016-09-26 14:04

책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

<글> 정진홍 서울대 명예교수 mute93@daum.net


‘책의 역사에 대한 현학적인 진술’은 삼가겠습니다. 그러면서 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 형편에서 보면 책은 아무 데나 있습니다. 너한테도 있고 나한테도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책은 낯설지 않습니다. 지천으로 아주 흔한 것이 책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책을 대체로 그리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벼운 발언입니다. 하지만 드물지 않은 것이 책이라는 뜻에서도 그러하거니와 책의 품격이 다른 사물들보다 당연히 높게 평가되어야 할 까닭이 별로 없다는 뜻에서도 그러합니다. 필요하면 찾고, 더 이상 간직할 까닭이 없게 되면 언제나 버릴 수 있는 것이 책입니다.

아무튼 아무 데나 있고 아주 많은 것이 책입니다. 얼마 전에 저는 책이 없으면 존립이 불가능하다고 일컫는 대학 도서관에서 ‘철 지난 책’들을 버리는 ‘작업’을 본 일이 있습니다. ‘교체’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파기’되는 책들을 보면서 “책이 많았구나. 아니 정말 많았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찍이 책에 관해 익힌 것들은 이렇게 묘사하는 ‘풍경’과는 전혀 다릅니다. 책은 귀한 것, 드물게 귀한 것, 아주 귀한 것이라는 거의 ‘절대적인 선언’이 책과 관련하여 하나의 풍경을 이룹니다. 책에 관한 이러한 태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아득한 때부터 그래 왔습니다. 이 주장만큼은 변하지 않는 이른바 ‘규범적 당위’도 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책이란 ‘사람을 사람답게 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그 당위를 뒷받침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면 책을 읽어야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성숙을 기해야 합니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되고, 잘못 안 것을 고치게 되고, 꿈도 꾸지 못했던 것을 상상하게 되면 삶이 얼마나 넓어지고 깊어지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책에 대한 규범적 당위는 ‘독서의 필연성’을 절대화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책-풍경은 이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책은 책이되 모든 책이 책은 아니다’라는 데서부터 그 당위는 심한 소용돌이를 짓습니다. 읽어야 할 책과 읽어서는 안 될 책들이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한 판단 준거를 마련합니다. 그리고 이를 실제로 실천하는 자리에는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힘’이 행세를 합니다. 금서목록이 만들어지는가 하면 필독도서목록도 등장합니다. 게다가 그 목록은 힘의 바뀜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이 책을 읽고 이런 감동을 경험하지 못한다면’이라든지 ‘여기 기술된 분노에 공감하지 않는다면’이라든지 하는 규범조차 그 힘은 당위로 요구합니다. 책읽기는 때로 힘에의 ‘예속’과 다르지 않다는 묘사를 하게 합니다.

이런 ‘커다란 풍경’ 아니고도 자디잔 모습들에 대한 묘사도 곁들일 수 있습니다. “무엇이 쓰여 있나 하는 것을 아는 것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왜 그것을 저자가 썼을까를 알기 위해 행간을 읽어야 그것이 책을 읽는 것이다”하는 ‘잔 말씀’에는 아직 겸손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꼼꼼하게 읽어야’라든지 ‘듬성듬성 읽어도’라든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것만’이라든지 ‘흥미조차 없어도 읽어 마땅한 것이라면’이라든지 ‘재미가 있는 것을 읽어야’라든지 ‘무릇 쉽고 단순해야 그것이 좋은 것’이라든지 ‘삼매경에 이르지 못하면’이라든지 하는 데 이르면 이어 겸손하기가 꽤 어려워집니다. 그러다 ‘새벽독서를 하는 것이’라든지 ‘여행 가방에 책 몇 권 넣는 것이야말로’라든지 ‘한 달에 도서 구매비가 얼마는 되어야’라든지 ‘국민 1인당 독서가 연간 몇 권도 안 되는 우리는’ 하는 데 닿으면 ‘폭발하는 질식’을 묘사할 수도 있게 될지 모르는 풍경이 그려집니다.

뿐만 아니라 ‘책을 위한 책 간직하기’에서 비롯하여 ‘책을 위한 책 읽기’에 이르는 책-풍경조차 묘사할 수 있습니다. 책을 기리는 책에 대한 당위적 규범은 마침내 ‘책-종교’를 낳고 있다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아득한 때부터 이렇듯 책-종교의 신도로 책을 만나고 읽고 간직해 왔습니다. 종교인들이 경전을 모시듯 그렇게 책을 모셔 온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흔히 아주 못된 전제라고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책은 지천입니다. 책이 아니고도 책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매체가 얼마나 다양해졌는지 모릅니다. 실제로 우리는 그러한 문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책을 안 읽어도 사람 구실을 할 수 있고,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책 없으면 더 쉽고 편하게 그렇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조차 하고 싶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책을 다 버릴 필요도 없고, 책을 가볍게 볼 까닭도 없습니다. 여전히 책은 책다움을 지니고 지금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하지만 책-종교의 신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내 삶을 위해 아무런 ‘적합성’을 갖지 못합니다. 허황한 환상을 좇게도 하기 때문입니다. 바야흐로 사람들은 ‘책으로부터 벗어나 책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내가 나 스스로 책이나 책 읽기의 주인이 되는 일입니다. 마구 말씀드린다면 이 일에 누구의 어떤 조언도 거절하는 태도를 지닐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내 책과 책 읽기의 태도에 책임 주체가 되어 기존의 책-문화에서 놓여나기를 기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조금도 어렵지 않습니다. 당장 내 옆에 있는 책을 집어 읽기 시작하면 됩니다. 읽으면 알게 되고, 읽으면 스스로 책과 책 읽음의 주인이 됩니다. 이보다 더 쉬울 수가 없습니다. 책을 읽지 않는 한 책의 굴레에서 벗어날 길은 없습니다. 단 하나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터득한 감격을 다른 사람들에게 ‘책과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이를 읽어야 할 것인가’ 하는 거창한 주제로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기를 아울러 다짐하는 일입니다. 어차피 ‘책 없이도 살 수 있는 책 많은 세상’인데 조금만 겸손해도 그것이 훌륭한 미덕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정진홍(鄭鎭弘) 서울대 명예교수

1937년 충남 공주 출생. 서울대 종교학과 졸. 서울대 대학원 석사, 미국 유나이티드 신학대학원 석사,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원 박사. 명지대. 서울대. 한림대. 이화여대 교수. 아산나눔재단 이사장, 울산대 철학과 석좌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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