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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냄새가 아프다

기사입력 2019-07-22 08:41

PART 07 인생의 내음

엄마는 냄새를 맡지 못하셨다. 다른 데는 아무 문제가 없는 건강 체질인데 후각기능만 떨어졌다. 아주 진하거나 강한 향 중에서 좋은 냄새, 이상한 냄새 두 종류로만 희미하게 구분했다. 그래서인지 가끔 “내 몸에서 혹시 이상한 냄새 나지 않니?”라고 물으셨다. 그때마다 난 별 생각 없이 단답형으로 답하곤 했다. 성인이 돼서도 엄마에 대한 내 무관심은 여전했다. 어쩌다 엄마의 후각이 그렇게 됐는지, 생활하면서 얼마나 불편한지 전혀 궁금하지 않았고 따라서 묻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 2003년 어느 날 남편이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뇌를 다쳐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는데 머리 부분이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다. 처음 며칠은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의사는 뇌의 부종이 빠져봐야 좀 더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다고 했다.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얼마 후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수술도 하지 않고 서서히 기억과 건강을 되찾으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회복 중에 뇌 속의 후각과 미각 신경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알게 됐다. 한 번 죽은 신경세포는 되살아나지 않는다고 했다. 다행히 주변의 다른 신경들이 더 예민해지면서 역할을 대신할 가능성도 있다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지만 우리 가족은 안심할 수 없었다. 그 후 꽤 오랫동안 ‘남편이 밖에서 설렁탕이라도 먹게 되면 맛을 몰라 소금을 너무 많이 넣으면 어쩌지?’, ‘냄새 나는 걸 옷에 묻히고 다니다가 여직원 인상을 쓰게 하는 일이 발생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으로 전전긍긍했다. 그러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도 냄새를 제대로 못 맡으셨는데 내가 이렇게 안타까워한 적이 있었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몇십 년을 불편하게 살아오셨을 엄마의 심정이 헤아려졌다. 남편을 통해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다니… 사는 게 참 아이러니했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남편의 상태는 의사의 조언대로 큰 문제는 없는 듯하다. 밥상머리에서 “짜네”, “싱겁네”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이번 주말에는 엄마 집에 가서 베란다의 냄새나는 화분은 치웠는지 살펴봐야겠다. 화초 잘 자라라고 이런저런 거름을 자꾸 줘서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화초 영양제 몇 개 사가지고 가서 화분에 꽂아주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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