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또 연탄가스로 도배집 아저씨가 돌아가셨다.
꽃무늬(花文) 벽지 위 손때들이 화투처럼 반질거리고, 아랫목 때때이불도 꽃밭처럼 무성한 겨울 아침
"두부 한 모랑 콩나물 50원어치 사 와. 돈은 나중에 드린다고 하고"
구멍가게 철문을 떼기 무섭게 외상 같은 하루는 고만고만한 크기로 시작됐고, 철 지난 신문 속 각하의 구겨진 얼굴에 콩나물은 덤처럼 실린다.
모퉁이 턱 빠진 앉은뱅이 밥상 위로 묵은지 곁들인 콩나물국 오르면서 겨울잠의 본능도 비로소 꿈틀거린다.
빛 바랜 젓가락과 목 비틀어진 숟가락이 분주해지면서 식구(食口)들 말수도 적어진다.
왼쪽 가슴 손수건으로 연신 흐르는 콧물 닦던 동구로국민학교 1학년 때, 콩나물 머릿수만큼 많았던 한숨과 투정, 치레들
북풍(北風)에 풀풀거리는 비포장 흙먼지보다 먼저 꿈틀거리는 동네, 찌그러진 냄비 뚜껑 사이로 콩나물 비린내가 살비듬처럼 일어서는 구호주택들
구로동(九老洞) 겨울은 살겹도록 비렸다.
△이태문
1965년 서울 구로동 출생. 동구로 초등학교, 구로중학교, 관악고등학교 졸업
1999년 <시세계>와 2000년 <시문학>으로 데뷔. <문학마을> <시와 창작>에도 작품활동
연세대 국문과 졸.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일본문부성 국비장학생으로 1997년 도일
도쿄외국어 대학 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동대학원 외국인연구자, 일본여행문화연구소 공동연구원을 거쳐 게이오대학, 와세다대학, 니혼대학, 무사시노대학, 오츠마여자대학 등에서 한국문화와 한국어 강의
번역서는 '백화점' '박람회' '운동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