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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가 준비한 도시락

기사입력 2018-06-25 10:33

도시락의 추억은 초등학교 시절로 되돌아가게 한다. 저학년 때는 오전반, 오후반 이부제로 나누어 등교했지만 고학년(4학년 이상)은 도시락을 싸들고 등교를 했다.

지금은 어느 곳을 가도 음식점이 많아 끼니를 건너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젊었을 때는 도시락을 싸들고 학교나 직장을 다녔다. 일반인이 매일 식사를 식당에서 해결하는 일은 경제적으로 많은 부담이 되었다.

시간이 촉박하거나 도시락 준비가 어려울 때를 은근히 바란 적도 있다. 어머니가 점심 값을 주시면 비싼 것은 아니어도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잘사는 학생들은 계란말이, 소시지, 소고기장조림 등 맛있는 반찬을 싸오지만 가난한 학생들은 김치, 장아찌 등의 반찬이 대부분이었다. 맛있는 반찬 하나라도 더 얻어먹으려고 점심시간은 북새통을 이루었다.

도시락 챙기기는 직장생활을 할 때도 계속되었다. 그래도 직원들과 도시락을 펴놓고 함께하는 시간이 늘 즐거웠다. 직원들 중 한두 명씩은 도시락 싸오기가 귀찮았는지 점심시간 되면 밖에 나가 먹고 들어오거나 배달을 시켜 먹기도 했다.

그러나 배달 음식은 금세 싫어졌다. 점심시간만 되면 ‘오늘은 뭘 먹지?’ 하고 고민을 했지만 선택은 전날과 동일했다. 심지어 밖에 나가서 메뉴를 찾다가 그냥 들어온 경우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직원들하고 식사 후 차 한잔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다시 도시락을 싸오자는 의견이 나와 다시 도시락을 부활시켰다.

귀가해서 “어머니, 내일부터는 도시락 싸주셔요” 하자 어머니는 “그동안 도시락 안 싸가서 편했는데 나는 언제나 이 신세 면하고 며느리가 해주는 밥 먹어보냐?” 하셨다. 결혼을 빨리 하라는 은근한 압력이었다.

“어머니 내일은 빈 도시락 하나 더 넣어주셔요.” 어머니는 느닷없는 아들의 요구에 궁금하셨는지 “아니, 빈 도시락은 뭘 하려고?” 하고 물었다. 필자가 “며느리가 해주는 밥 드시고 싶다고 하니 도시락에 좀 싸오려고 합니다” 하자 “야 웃기지 마라. 네 주제에 여자가 있기나 하냐?” 하셨다.

사실은 대학 축제 때 만난, 의상 디자인을 전공한 아가씨가 있었다. 당시 필자는 공부 열심히 했다. 과에서 1등을 하고 탄 장학금으로 함께 덕적도를 다녀왔다. 그 당시 필자의 집은 작은 신발공장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아가씨를 집으로 데리고 갔다. “어머니, 며느리가 해주는 밥 먹고 싶다고 해서 밥할 사람 데리고 왔습니다.”

“야 이 녀석아, 미리 말이라도 해줬어야지 이렇게 갑자기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하냐?” 아가씨는 대담하게 미싱사에게 재봉틀을 사용하겠다 양해를 구하고 가져온 천을 가위로 잘라 5분 만에 예쁜 앞치마를 만들어 입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당황하셨고 공장은 발칵 뒤집혔다. “아니 이집 큰아들이 며느릿감 데리고 왔다며?” 모두들 하던 일을 내려놓고 다들 부엌으로 몰려왔다.

그러고는 다들 한마디씩 했다. “예쁘네”, “일도 거침없이 잘하네”, “잘 데려왔네” 등등 다들 칭찬을 한마디씩 하셨다. 어머니도 싱글벙글하셨다. 그날 예비 며느리가 준비한 메뉴는 두부 된장찌개였다. 그리고 때 이른 저녁 밥상 위에 예쁜 도시락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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