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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식구도 챙기자

기사입력 2018-02-09 12:09

작년 호텔 디너파티 행사에서 필자는 출입관리 봉사를 맡았다. 1인당 20만 원짜리 티켓이 있는 사람들만 입장할 수 있는 행사여서 출입 통제는 중요한 임무였다. 참석자들은 모두 앉아서 우아하게 스테이크를 먹었다. 필자와 입구 접수 봉사요원들은 그날 저녁을 굶었다. 주최 측에 여러 번 저녁식사에 대해 문의를 했는데도 서로 우물쭈물 답변을 미뤘다. 정작 봉사 요원들은 디너 티켓이 없으니 저녁을 굶을 수밖에 없었다. 매우 섭섭하고 화도 났다. 고픈 배를 참고 뒷마무리까지 끝낸 후 늦은 밤 뒤풀이 자리에서 주최 측에 불만을 토로했다. 주최 측에서는 적자 나는 행사여서 비용을 아끼느라 그랬다는 말을 했다. 미리 얘기해줬으면 김밥이라도 준비해가거나 교대로 밖으로 나가 저녁을 사먹었을 것이다.

해가 바뀌고 비슷한 행사가 또 있었다. 이번엔 점심만 해결하면 되는 행사였으므로 인근 음식점에서 대충 식사를 했다. 뒤풀이 자리에서 행사 식사 얘기가 나오자 작년 행사 때 섭섭했던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그 말에 대한 주최 측에서 한 얘기를 듣고 가치관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주최 측은 수백 명이 모이는 행사를 주관하기에도 바쁘니 봉사 요원들은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얘기였다. 알아서 할 일이고 봉사 요원들은 그야말로 봉사하는 사람들이니 다른 참석자들처럼 우아하게 스테이크 먹으면서 칼질할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봉사 요원들은 아침식사도 못 먹고 눈 비비며 새벽에 행사장에 도착한다. 그리고 모든 준비를 마친다. 점심은 김밥으로 때운다 해도 명색이 디너파티인데 저녁식사까지 김밥으로 때우라는 것은 너무 심하다 생각되었다.

주최 측의 생각은 손님 치르는 행사이니 우리 식구는 모든 것을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식구들 같은 봉사 요원들을 먼저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어려운 일도 아니다. 밖에 나가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하는데 제 식구에게 혹독한 사람들이 있다. 못난 아버지 중에 그런 사람이 많다. 주최 측이 그런 셈이다. 바깥사람들은 볼일이 끝나면 그만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식구들은 영원히 같이 갈 사람들이다. 식구들이니 이해해줄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그렇지 않다. 식구들이 정을 떼고 돌아설 수도 있다.

이 대목에서 필자의 어린 시절 생각이 났다. 아버지가 문구점을 운영할 때였다. 필자가 플라스틱 필통을 갖고 싶어서 사용하던 양철 필통 속 연필들을 진열대에 있는 플라스틱 필통에 옮겨 담았다. 양철 필통은 걸을 때마다 소리가 나고 연필도 자주 부러졌기 때문에 싫었다. 플라스틱 필통은 정말 갖고 싶은 물건이었다. 아버지는 파는 물건이라 안 된다며 플라스틱 필통을 다시 가져갔다. 이 일은 두고두고 아버지를 원망하게 된 원인 중 하나였다.

‘먹는 데서 정 난다’는 말이 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도 있다. 사람은 하루 세끼를 먹는다. 매일 겪는 일이지만, 중요한 일이다. 한 끼라도 굶게 되면 서럽고 섭섭한 생각을 하게 된다. 먹을 때는 콩 한 조각이라도 나눠 먹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자기네들만 먹고 곁에 있는 사람을 모른 척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두고두고 원망을 들을 일이다. 백 번 잘하다가 한 번 실수를 하면 그동안 잘한 것이 소용없어지는 것이 먹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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