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조를 처음 만난 것은 군복무시절이었다. TV커녕 라디오조차 제대로 듣기 어려웠던 그 시절, 편지교제 중이던 지금의 아내가 ‘국군의 방송’에 희망가요를 신청하였다. 그때 방송에 갓 데뷔한 정미조의 감미로운 노래가 나왔다고 기억한다. 방송에서 나와 신청자의 이름을 부르고 노래가 나오자 부대원들의 함성으로 생활관이 발칵 뒤집혔다.
음치인 필자는 너무나 소란스러워 무슨 노래였는지 기억을 못한다. 부대원들과 박수치면서 즐거워했던 일만 생각났다. 아내도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정미조가 동갑내기 동갑내기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더욱 그를 정겹게 느꼈다. 그의 은퇴를 아쉽게 생각하고 속절없이 세월만 흘렀다.
그는 어느 날 홀연히 프랑스로 미술유학 가서 박사가 되고 미술교수가 되었다. 헌데 37년 만에 ‘젊은 날의 영혼’으로 정미조가 돌아왔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반세기 가까운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12월 10일 마포아트센터는 바깥 차가운 날씨를 아랑곳하지 않고 열기로 가득 찼다. 포스터에 눈길이 멈췄다. 세월은 피할 수 없다.
공연이 시작되자 자리를 가득 메운 관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그때 그 노래를 들을 수 있을까?’ 아내도 무척 궁금한 눈치다. 정미조의 얼굴은 처음 본다. 데뷔곡 ‘개여울’이 가슴을 울렸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 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첫사랑, 휘파람을 부세요’ 등 귀에 익은 노래가 이어졌다. 새 앨범에 수록한 신곡도 발표하였다. 작사, 작고도 하였다. 청아한 목소리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음악의 열정은 젊은 날과 똑 같았다. 그는 결코 녹록치 않았던 프랑스 유학 생활을 털어놓았다. 인간의 땀 냄새가 짙게 베였을 터이다. 가수 은퇴 후 37년이 지난 후에도 복귀를 간절히 바랐던 지인들, 가수 복귀의 조력자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관중은 중, 장년층이 대부분이었다. 반세기 가까운 옛날을 되새기고 싶은 세대들이다. ‘격조 높은 공연’은 두 시간에 걸쳐 차분하게 진행 되었다. 아내와 함께 듣고 싶었던 노래는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다. 매번 열심히 박수를 치던 아내도 못내 아쉬움을 달랬다.